이영희 민자당 여의도연구소장 “총선 전 정계 개편 있다”
  • 徐明淑 정치부 차장대우 ()
  • 승인 1995.12.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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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전에 과연 정계 개편이 이뤄질 것인가에 대해서 대부분 회의적입니다. 하지만 5·18에 대한 조처는 정치가 새로워질 만한 극적인 조건을 만들어냈습니다. 개혁적인 야권이 민자당에 더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
누구보다도 정부에 비판적인 관점을 유지해온 진보적 소장 학자 이영희 교수. 그는 더 이상 교수가 아니다. 민자당 산하 여의도연구소장으로 변신한 그는 현 정부의 과거 청산 작업과 개혁 노선이 지니는 정당성을 설파하는 대표적인 이론가로 등장했다. 현 정권에게는 다시 없는 보배이지만, 민자당내 구여권 세력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11월 28일 국민대 정치대학원 특강에서 수구 세력에 대해 맹공을 펼친 이소장을 만나보았다.

국민대 특강에서 3당 합당을 ‘트로이의 목마’ 전술에 비유하고, 민주 세력이 분열된 당시 상황에서는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결국은 권력을 잡기 위해선 방법론은 문제가 안된다는 말 아닙니까.

물론 민주화 세력이 결집해서 권력 교체를 이루는 최선의 길을 택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은 남지요. 그러나 당시 분열된 민주 세력 중 어느 한쪽이 단독으로 집권하기는 사실상 어려웠습니다. 문민 정부가 출범한 뒤 아무것도 하지 않았더라면, 구 세력과 결탁해 민주 세력을 배신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김대통령은 취임 즉시 구 시대를 청산하는 대대적인 개혁을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국민대 특강에서 수구 세력이 재결집을 시도했다고 주장했는데, 무슨 근거라도 있습니까?

물론 증거는 없습니다. 그러나 객관적인 정황에 비추어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습니다. . 수구 세력은 결코 자신을 수구 세력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보수화의 흐름을 틈타서 보수의 논리를 업고 나옵니다. 6·27 지방 선거 결과가 개혁에 대한 심판으로 잘못 받아들여지면서, 여권에는 ‘개혁후퇴론’이 공공연히 제기됐습니다. 그런 분위기를 업고 5·17 주도 세력을 중심으로 한 수구 세력이 대거 국회로 진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습니다.

이른바 5,6공 신당을 만들려고 했다는 말씀인가요?

아닙니다. 수구 세력들도 그렇게 어리석지 않아요. 일단 개별적으로 국회에 진출하고 난 뒤에 정치적 결집을 공개화하려고 했다고 봅니다. 그 배후에는 내각제 등도 함께 있었다고 봅니다. 노씨 비자금 사건은 더 뚜렷한 확증을 갖게 했습니다. 노씨가 단순히 개인적인 목적으로만 몇천억을 모아놓았겠습니까. 저는 이 막대한 돈이 정치 비자금이었다고 단정합니다. 비자금 사건이 터지지 않았더라면, 이번 총선에 엄청나게 유입되고 놀랄 만한 일이 전개됐을 것입니다.

이소장께선 수구 세력이 발호할 움직임을 보였다고 주장하시는 반면, 전두환씨 진영은 최근 김영삼 정부의 과거 청산 작업에 좌파의 음모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말도 안되는 이야기입니다. 그 사람들은 과거에도 무슨 문제가 있을 때마다 자기 생존을 위해서 ‘배후 세력’ 어쩌고 하며 진실을 호도해 왔습니다. 국민적 공분과 공감 속에서 이뤄지는 일을 좌파의 음모라고 몰아붙이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5·18과 관련한 김대통령의 역사 의식은 분명히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전두환씨는 담화문에서 구 여권 세력과 손잡은 YS 정권은 자기를 단죄할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는데요.

김대통령이 ‘역사의 평가에 맡기자’고 했던 것은 그 사람들이 민주화 과정에 순응하겠다고 약속했고, 타협의 민주화를 위해서는 그 사람들까지 포용해야 하는 측면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확실히 민주화의 길로 갔다면 문제는 다릅니다. 그러나 그들이 민주화 과정에 진정으로 순응했습니까? 노씨 비자금 사건에서 드러난 엄청난 실상을 목격하고 분노한 국민들 사이에는 5·18 세력을 단죄하라고 요구하는 여론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김대통령이 자신의 논리적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 옳습니까, 국민 여론을 받아들여 사고를 새롭게 전환하는 게 옳습니까?

전개 과정도 문제입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을 앞지른 전격 발표에 이어 소 취하와 개헌 소동으로 이어지면서,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고 법조계를 무력하게 하지 않았습니까. 그 때문에 국면 전환용 깜짝쇼라는 비난도 일고 있습니다.

통치자로서 국민을 자주 놀라게 만드는 건 분명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측근들에게 이 사실을 미리 귀띔하고 법률적 검토를 다 마쳤더라면, 개헌 논의 같은 일 없이 매끄럽게 진행됐을 것입니다. 그러나 5·18 특별법의 성격상 금융실명제처럼 전격적으로 발표할 수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여당은 야당과 달리 국면을 주도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니 새로운 국면이 조성된 것일 뿐 비자금 정국의 초점이 흐려진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 두 국면이 동시에 진행되는 것입니다.

5·18 카드에는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의 시대적 역할을 종식시키려는 또 다른 배경도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김총재에게는 큰 타격이 될 것입니다. 김총재는 정치를 재개하는 가장 큰 명분으로 5·18을 들고 나왔습니다. 모든 야당 세력이 YS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다른 건 몰라도 5·18 문제는 풀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해 왔습니다. 하지만 김대통령이 상상을 뛰어넘는 결단을 감행함으로써, 김총재는 목표를 상실했습니다. 그러나 김총재가 진정한 역사 의식을 갖고 있다면, 개인적으로 허탈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그 일이 이뤄졌다는 점에 위안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92년 대선 자금 의혹을 해소하지 않는 한, 김대통령의 개혁과 과거 청산이 완전한 설득력을 갖기는 매우 어려울 것 같은데요.

노씨 비자금과 관련해 한 사람은 ‘20억만 받았다’고 했고, 다른 한 사람은 ‘받은 적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다 밝혀져야 하고, 노씨가 민자당에 지원한 대선 자금도 밝혀져야 합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노씨가 먼저 입을 열어야 합니다. 하지만 김대통령도 국민들의 의혹에 대해 적절한 시점에 어떤 형태로건 자신의 심경과 진상을 밝힐 것으로 봅니다. 노씨의 대선 지원금을 대선 자금 전반으로 확대하는 것은 논리의 비약입니다. 그렇다면 야당도 대선 자금을 다 밝혀야 합니다.

이소장은 대대적인 물갈이를 주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문민 정부가 5,6공과 단절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5,6공 세력 전체와의 단절이 아니라는 점도 분명합니다. 우리 사회에 사람이 적지 않습니까. 5,6공을 적극 주도한 핵심 인사가 아니고 문민 정부의 개혁에 적극 동참할 자세가 돼 있다면 포용해야 합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대를 이끌 주역들이 전면에 나서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또 5,6공을 주도했던 인물이 당을 이끌 수는 없을 것입니다. 주연과 조연의 역할이 바뀌는 것이라고 보면 됩니다.

새로 흘러드는 물도 있지 않겠습니까?

우리 정치가 다른 어떤 분야보다 낙후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입니다. 구태의연한 정치 관행과 불합리한 선거 제도가 새로운 인물이 참여하는 길을 사실상 차단해 왔습니다. 제도 개선도 필요하고, 새 인물 유입도 필요합니다. 그렇다고 사회 경험이 전혀 없는 20,30대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사회 각 분야에서 지도력이 검증된 40,50대가 정치에 대거 참여할 때, 국민들이 정치권을 신뢰하게 됩니다.

총선 후 정계 개편론이 대세를 이루고 있습니다만, 급격히 전개되는 상황 변화를 감안할 때 총선 전에 정계 개편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는 것 아닙니까?

총선 전에 과연 정계 개편이 이뤄질 것인가에 대해서 대부분 회의적입니다. 야당도 그럴 가능성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5·18에 대한 조처는 정치가 완전히 새로워질 만한 극적인 조건을 만들어냈습니다. 개혁적이라는 야당 인사들도 더 이상 여당을 비판할 논리를 찾기 어렵게 됐습니다. 김대통령이 앞이 안 보이는 어려운 상황에서 과감히 3당 합당 결단을 내렸듯이, 야권에서도 발상의 전환이 있어야 합니다. 개혁적인 야권이 민자당에 더 강도 높은 개혁을 요구하고, 그 요구가 충족되면 민자당에 합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지기를 기대합니다. 불안정한 게 좋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 정국은 그 어떤 가능성도 다 배제할 수 없는 매우 유동적인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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