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말>이 걸어온 10년
  • 許匡畯 기자 ()
  • 승인 1995.05.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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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부르는 “내 사랑 민주”
칙칙한 어둠이 사회를 짓누르던 80년대에 대학가 술집에서는 다음과 같은 노래가 곧잘 불리곤 했다. ‘말하라 / 두 눈이 가리우고 / 귀마저 막혀버려도 / 혀는 잘리워서 / 입은 말 못해도 / 몸뚱이로 말하라….’ 85년 6월 창간한 <말>을 쓰고 만들던 사람들의 일이란 바로 몸으로 말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었다. 낮에는 신문과 방송이 외면하는 현장을 찾아 달리고, 밤에는 정보기관의 추적을 피해 ‘비밀 편집실’에서 기사를 썼다. 책이 나오면 직접 배포해야 했다. 말이 막힌 시대에 비합법 출판물로 출발한 <말>의 첫걸음은 코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어둠을 겨우겨우 헤쳐나가는 것이었다.

‘참다운 언론 운동을 향한 디딤돌’을 내걸고 나온 월간 <말>은 올 6월로 창간 10주년을 맞는다. 10년 동안 <말>이 겪은 변화는 컸다. 표지까지 96쪽이던 지면은 2백50여쪽으로 늘었으며 대기업 광고도 싣게 되었다. 89년에는 정기 간행물로 등록해 합법 신분을 얻었으며, 발행처도 민주언론운동협의회(언협)에서 (주)월간 말로 바뀌었다. 수시로 옮겨다니던 지하 비밀 사무실은 편집국과 업무국이 분리된 널찍한 사무실로 바뀌었다. 물론 <말>을 둘러싼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그러나 <말>을 만들고 배포하는 사람들의 견고한 소명 의식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 김승국 편집국장은 “<말>의 원칙은 오로지 민주화와 민족 통일 두 가지이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라고 말한다.

84년 12월 서울 장충동 베네딕트 수도원에서는 민주언론운동협의회 창립 총회가 열렸다. 70명 가량 모인 사람들은 75년·80년 일간 신문에서 해직된 기자들을 중심으로 한 언론·출판인이었다. 그들은 이 자리에서 정부의 통제 아래 놓인 언론을 정신적 폭력이라고 규정하며,‘민중적·민족적 요구에 따르는 참다운 민주 언론을 창조하겠다’고 선언했다. 여섯 달 뒤에 나온 <말> 창간호는 그 선언의 실천인 셈이었다.

보도 지침 사건으로 ‘뉴스’가 되기도

창간호 표지에는 85년 5월 세상을 놀라게 한 미국문화원 농성 사진을 올렸다. 정치·국제·노동·농민·환경·여성 등 중병을 앓고 있는 사회 구석구석의 소식이 지면에 올라 왔다. <말>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많았다. 광고가 한 쪽도 없는 창간호는 앞표지와 뒷표지에까지 빽빽하게 기사를 실었다. 창간호 8천 부는 운동 단체와 대학가 서점으로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창간호가 나온 지 며칠 뒤 성유보 편집인(당시 언협 사무국장)이 마포경찰서에 연행되어 열흘 구류되었다. 죄목은 유언비어 날조·유포였다. 언협 간부들은 <말>이 나올 때마다 제작진이 연행되고 처벌을 받을 것이 뻔하므로 아예 돌아가면서‘구류 담당’을 맡기로 했다. 편집인이 2대 신홍범씨(당시 언협 실행위원), 3대 성유보씨, 4대 최장학씨(당시 언협 공동대표), 5대 김태홍씨(언협 공동대표), 6대에 다시 성유보씨 등으로 계속 바뀐 것도 그 때문이다. 그 뒤에도 책이 나올 때마다 제작진은 수시로 연행되어 처벌을 받았다.
책을 만든 사람만 문제가 된 것이 아니었다. 도심 한복판에서 수시로 이루어지던 불심 검문중 가방에서 <말>이 나오기라도 하면 누구든 ‘닭장차’로 끌려가 곤욕을 치렀다. 경찰은 이 잡지의 소지·탐독 여부를 ‘불순 세력’을 가려내는 기준으로 삼았다. 한 대학생은 <말> 기사를 재편집해 학과가 발행하는 신문을 만들다 연행되기도 했다. 경찰이 연행한 이유는 물론 저작권 침해 혐의가 아니었다. 이처럼 책을 만드는 사람이나 읽는 사람이나 모두 위험을 감수해야 했다.

창간 초기에 <말> 기자들이 받은 월급은 15만원이었다(당시 도시 근로자 가구당 월평균 소득은 41만8백원). 그나마도 건너뛰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기사는 지하 비밀 편집실에서 사과 궤짝을 책상으로 삼아 쓰였다. 당시 기자들의 주요 점심 메뉴는 ‘자장밥’이었다. 자장면을 한 그릇 시켜서 맨밥을 비벼 넣고 여럿이 나눠 먹는 것이었다.

때로는 격월간으로, 때로는 격주간으로 나오던 <말>은 88년 4월부터 월간으로 발간되기 시작했다. <말>을 만들던 언협이 <한겨레신문> 창간을 주도했기 때문이었다. 신문 창간을 계기로 진로를 고민하던 <말>은, 소외된 현장의 목소리를 시시각각 전하는 역할을 신문에게 넘기고 ‘진보적인 시사 종합지’로 좌표를 수정했다.

<말>은 10년 역사 속에서 그 자신이 뉴스의 가운데 서기도 했다. 정부의 언론 보도 통제를 폭로한 ‘보도 지침’사건이 대표적이다. 현직 신문 기자를 통해 입수한 보도 지침 원본을 그대로 실은 <말> 86년 9월 특집호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기사의 내용에서 크기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정부의 입맛에 맞게 세심하게 조정되고 통제된다는 사실이 입증되자 언론과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치솟았다. 이 특집호 제작비는 한 현직 기자가 촌지를 모아 건넨 2백만원으로 충당했다. 그 해 12월 김태홍 사무국장과 신홍범 실행위원, <한국일보> 김주언 기자가 모두 체포됐다. 국가보안법의 외교상 기밀 누설·이적 표현물 제작, 국가 모독, 집회와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이 죄목이었다. 이들은 87년 6월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모두 풀려났지만, 법적인 최종 판단은 94년에야 내려졌다. 법원은 사건이 벌어진 지 8년 만에 무죄를 선고했다.

시국 어려울수록 판매 부수 늘어

90년 8월에는 7월호에 실린 월남전 기사와 관련하여 월남 참전자 단체 회원들이 사무실 앞에 진을 치고 농성을 벌인 사건이 벌어졌다. <말>은 곤욕을 치렀지만, 오히려 이 사건은 <말>이 대중에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

<말>의 특징 중 하나는 시국 상황이 어려울 때일수록 판매 부수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정부의 강권으로 말길이 막히면 막힐수록 진실을 찾는 독자의 욕구가 몰린 탓이다. 가장 많이 팔렸던 때는 92년 대통령 선거 직전으로, 최고 4만3천부까지 나갔다. 김영삼 민자당 후보의 도덕성에 문제를 제기하는 기사들이 연이어 실릴 때였다. 현재 판매 부수는 3만∼3만5천부 정도이다. <말> 관계자들은 판매 부수의 정체에 대해, 시사 월간지 시장 축소와 진보 언론 시장 축소 등 두 요소가 동시에 작용하는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해직 기자들이 원고지를 메우던 <말>의 편집국에는 30대 초·중반인 젊은 기자들이 새로 들어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학생운동권이나 사회운동권 출신이다. 한 기자는 “편집국 안의 ‘별’을 모으면 여남은 개는 될 것이다”라고 말한다. 시국 사건이나 조직 사건으로 기자들이 대개 한번씩 투옥된 경험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편집국 안에서의 선후배도 일반 언론사처럼 입사 기수로 가름하지 않고 대학이나 운동 단체에서의 관계로 가름한다. <말>은 이같은 시국 관련 투옥 기간이나 사회단체 활동 기간을 사원의 경력에 포함해 호봉을 책정하기도 한다.

어렵고 힘든 길을 선택한 <말>의 사람들은 여전히 가난하다. 입사한 지 3∼4년 되는 기자가 받는 월급은 세세한 항목까지 합쳐 백만원 안팎. 여기에 상여금이 연 3백%이다. 기자들은 경비 절감을 위해 남은 출장비를 반납하는 것을 관행으로 삼고 있다. 회사가 어느 개인 소유가 아니라 공동 소유라는 의식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승국 편집국장은 “<말> 기자들의 의식을 채우고 있는 것은 절반이 기자 의식이고 절반이 운동가 의식이다”라고 말한다.

<말>의 주요 독자는 2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80년대 세대’이다. <말>이 창간될 때의 시대 상황을 함께 겪으며 살아온 이들이 후견인 노릇을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독자층을 넓히고 많은 사람에게 읽히고자 하는 것은 책을 만드는 사람의 기본적인 욕심이자 고민이다. 잡지 대부분이 독자의 실용적 필요에 응하는 경향으로 나아가는 시대에 <말>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어떤 것일까.

창간 10년을 맞은 <말>이 내리고 있는 잠정적 결론은 창간 때 표방한 원칙을 고수하는 것이다. 노향기 사장은 “변화의 필요성도 결국 창간 정신을 되짚는 차원에서 가능한 것이다”라고 말한다. 재미와 흥미가 잡지의 중요한 두 요소인 것은 <말>도 마찬가지이지만, <말>의 독자는 ‘의미’가 없으면 재미도 없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말>을 만드는 사람들이 느끼는 가장 큰 고민은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정보를 모두 소화하고 고급 정보를 확보해 지면을 꾸며 나가기에는 아직 <말>의 살림살이가 버겁다는 점이다.

어렵게 10년을 이끌어 온 이들이 기대하는 것은 결국 정권과 사회 전체의 민주화이다. <말>을 한 단계 뛰어오르게 만드는 도약대는 흥미성 강화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민주적 토양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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