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의 무한 경쟁, 제2 라운드는 '전광판'
  • 金恩男 기자 ()
  • 승인 1995.08.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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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동아 등 앞다퉈 뉴스 전광판 설치…“영상 매체 준비” 시각도
서울 광화문 네거리가 더욱 화사해졌다. <조선일보>에 이어 <동아일보>가 초대형 최첨단 뉴스 전광판을 가동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선일보>가 코리아나호텔 벽면에 뉴스 전광판을 설치, 가동한 것은 창간 75주년 기념일인 지난 3월5일이다. 이보다 다섯 달 늦은 8월14일 <동아일보>가 광화문 사옥에 뉴스 전광판을 가동함으로써 광화문 네거리는 남북간 축을 <조선일보>, 동서간 축을 <동아일보> 전광판이 각각 포위한 형국이 되었다.

흔히 ‘풀컬러 동화상 전광판’이라 불리는 이들 뉴스 전광판은 이전에 보아온 전광판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한 화질에다 생생하고 입체적인 동화상을 보여주어 눈길을 끈다. 아침 6시에서 밤 12시까지 전광판에는 신문사가 자체 제작한 뉴스와 MBC·KBS·YTN 등이 제공하는 내외신 화면, 날씨·교통 따위 공익 광고와 기업 광고가 평균 20분 단위로 반복된다.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뉴스 전광판은 최고의 해상도를 자랑한다는 CRT(형광튜브) 방식과 FDT(형광방전판) 방식을 각각 채용한 것이다. 전광판은 흔히 소자의 양식에 따라 LED(발광다이오드)·CRT·FDT 방식으로 나뉜다. 이중 일본의 소니·미쓰비시가 개발한 CRT 방식과 마쓰시타가 개발한 FDT 방식은 현재로서는 가장 뛰어난 화질을 구현할 수 있는 전광판 기술로 평가되고 있다. 이에 <조선일보>는 대우전자와 손잡고 미쓰비시의 CRT 모델인 ‘다이아몬드 비전’을, <동아일보>는 LG그룹과 손잡고 마쓰시타의 FDT 모델인 ‘아스트로비전’을 각각 들여온 것이다.

흠이 있다면 값이 너무 비싸고 수명이 짧다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경우 전광판 가격만 45억원에다 설치비와 소자 교체비를 합쳐 백억원 이상을 투입한 것으로 알려진다. 한 신문사 관계자는 “<조선일보>가 1백30억원, <동아일보>가 1백70억원 가량 든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게다가 이들 모델은 8천시간 이상 수명을 유지하기가 어렵다. 지금처럼 하루 18시간씩 화면을 송출하면 길게 잡아도 2년반에 한번씩은 소자를 갈아주어야 한다. 소자 교체 비용은 30억원이 넘는다.

이처럼 막대한 비용에도 불구하고 언론사들이 속속 뉴스 전광판 설치에 뛰어들자 그 배경에 대한 추측이 무성하다. 현재 선두 주자인 <조선일보> <동아일보>는 본사 전광판을 거점 삼아 서울 각지, 주요 대도시, 나아가 해외에까지 전광판을 설치해 하나의 네트워크를 건설하겠다는 입장이고, <한국일보> <경향신문>도 전광판 설치를 검토 중이다. <중앙일보>는 오는 9월 옛 사옥 10층 옥상에 LED방식의 대형 뉴스 전광판을 설치해, 서소문 고가도로를 지나는 이들이 볼 수 있게 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중앙일보>는 일본의 아카미사와 수입 계약을 마친 상태이다.

일제 수입해 국내 기술 위축시켜

단순한 옥외 광고물 정도로 인식되던 전광판에 ‘뉴미디어’ 개념을 처음 부과한 것은 <조선일보>이다. <조선일보>는 “속보성에 한계가 있는 신문, 시각 자료가 없는 라디오, 이동중에 볼 수 없는 텔레비전과 달리 전광판 뉴스는 거리의 보행자나 운전자에게 뉴스를 화면과 함께 신속하게 전해줄 수 있다”면서 뉴스 전광판을 새로운 형태의 뉴미디어로 규정했다. <조선일보> 종합미디어본부 영상사업팀 김형모 차장은 “지방 네트워크가 구축돼 1일 5백만명 정도의 유동 인구를 고정 시청자로 끌어들이게 되면 여론 형성 매체로서의 구실도 충분히 할 수 있게 되리라 본다”고 전망한다.

그러나 이를 보는 국내 전광판 업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이들의 비판은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언론사와 대기업이 손잡고 값비싼 일제 전광판 수입에 앞장서는 바람에 국내 기술 발전을 위축시키고 말았다는 것이다. 특히 <조선일보> <동아일보>가 수입한 CRT·FDT 전광판은 수입선 다변화 품목으로 묶여 있던 것이어서 업계의 반발이 더욱 심했다. 통상산업부는 이들 기종의 경우 국내에서 생산되지 않기 때문에 수입을 허가했다고 밝히지만, “지난해부터 국산 LED 기종 풀컬러 동화상 전광판이 상용화되어 있고 CRT 기종도 1∼2년 안에 국내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되는 판국에 언론사들이 그처럼 수입을 서둘러야만 했느냐”는 것이 업계측의 지적이다.

이에 대해 언론사들은 국내 생산이 가능하다 해도 당분간은 일본 제품 수준의 품질을 기대할 수 없지 않겠느냐는 반응을 보인다. 한 언론사 관계자는 “설치한 지 이틀 지난 운동장 전광판이 경기 도중 꺼져 버리는 마당에 국산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겠느냐”며 현실적인 고민을 토로한다. 그러나 업계뿐 아니라 일반 국민의 정서로도 옛 조선총독부 건물이 철거되는 한켠에서 미쓰비시·마쓰시타·아카미 등 일제 전광판이 속속 들어서는 현실은 받아들이기 어려울 듯하다. 특히 광복 50주년을 기해 전광판 점등식을 가졌던 <동아일보>의 경우 이같은 지적 때문에 상당한 부담을 가졌다는 후문이다.
업계가 지적하는 또 한 가지는 언론사들이 뉴미디어를 명분 삼아 중소업체들의 밥줄이던 옥외 광고판 시장까지 잠식하려 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언론사들의 반응은 대부분 시큰둥하다. 전광판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라면 현재 서울시 고시에 따라 40% 미만으로 비율이 지정돼 있는 상업 광고 수익이 전부인데, 그것으로는 ‘본전을 건지는’ 정도가 고작이라는 것이다. <중앙일보> 뉴미디어국 사업팀 최두헌 차장은 “같은 비용과 인원을 가지고 훨씬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사업이 얼마든지 있다. 우리가 전광판 사업을 하려는 것은 단지 독자에 대한 서비스 차원에서이다”라고 해명한다. 현재 신문사들이 받는 월 평균 전광판 광고료는 1억8천만∼3억원인 것으로 알려진다.

<조선일보>는 보다 적극적인 자세이다. 영상사업팀 김형모 차장은 “사업은 당연히 돈과 연결된다”고 잘라 말한다. 매체의 영향력이 커지면 광고 단가 또한 높아지게 돼 있다는 것이다. 가시 거리 30∼1백50m 사이의 하루 유동 인구 60만명 중 80% 이상이 <조선일보> 전광판의 광고 화면을 관심 있게 본 적이 있다는 <조선일보> 자체 조사 결과는 광고주에게도 그대로 먹혀들 수 있는 매력적인 제안이다.

<조선일보>는 9월1일 가동하게 될 신촌 그랜드백화점 뉴스 전광판을 비롯해 올해 안에 서울 시내와 전국 12개 지역에 전광판을 추가 설치하기로 확정한 상태이다. 현재 <조선일보>는 광화문 전광판 광고 수익만으로도 3년반이면 흑자로 돌아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여기에 전광판들이 추가로 설치되면 흑자 전환 시기는 더욱 앞당겨질 전망이다. 게다가 앞으로 설치할 전광판은 비용이 유지비를 합쳐 광화문의 일제 전광판보다 10분의 1밖에 안되는 국산 LED 제품을 쓸 계획이다.

달리는‘조선’, 쫓는‘동아’, 느긋한‘중앙’

<조선일보>의 적극적인 몸짓에도 불구하고 뉴스 전광판은 여전히 수익성이 불확실한 사업으로 꼽힌다. 그런데도 굳이 언론사들이 뉴스 전광판 사업에 서둘러 나서는 데는 숨은 이유가 있다는 것이 언론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영상 매체 진출을 위한 준비가 그것이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중앙일보> 등이 위성 방송에 눈독을 들여온 것은 오래 전부터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들 신문사가 전광판 뉴스를 위해 운영하고 있는 자체 제작팀은 눈길을 끈다. 현재 프로듀서·카메라맨·컴퓨터그래픽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조선일보> 30여명, <동아일보> 20여명의 뉴스 제작팀은 오전중 팀장이 본사 편집국의 편집회의에 참가해 아이템을 선정한 후 이를 직접 취재·편집해 송출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방송 초기 ‘전광판 뉴스와 위성 방송은 그 투자 규모나 미디어 성격이 판이하다’고 부인하던 <조선일보>는 최근 뉴스 제작팀을 편성팀과 영상매체팀으로 분리하면서 뉴스 제작을 편성팀에 일임하는 등 영상 매체 진출 의도를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인터네트 전자 잡지 창간, 데이터 베이스 구축 등 뉴미디어 사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오던 <중앙일보>가 전광판 사업에 뒤늦게 뛰어든 것도 이같은 배경에서 이해된다. 80년 언론 통폐합 이전 동양방송(TBC)을 운영한 경험이 있고 현재도 같은 삼성 계열사인 제일기획이 케이블TV ‘Q채널’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중앙일보>로서는 방송 경험에 관한 한 아쉬울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오는 9월 전광판을 세우기로 한 것도 <조선일보> <동아일보>를 의식한 사세 과시용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영상 매체 경험 축적과 전광판 수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으려는 <조선일보>, 이를 정신없이 뒤쫓는 <동아일보>, 두 신문을 따라가고 있는 <중앙일보>가 어울려 뉴스 전광판 경쟁은 한바탕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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