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김수미 사망에 ‘고혈당 쇼크’, 국민 건강 핫이슈로
당뇨 인구 600만 ‘고혈당 쇼크’ 주의보 급속한 고령화와 1인 가구 증가, 대처 어렵게 해
‘고혈당 쇼크’가 국민 건강의 핫이슈로 떠올랐다. 10월25일 탤런트 김수미씨(본명 김영옥, 1949년생)의 갑작스러운 사망 원인이 ‘고혈당 쇼크’로 알려지면서다. 유가족 측은 “사인을 조사한 경찰이 고혈당 쇼크가 최종 사인이라고 알렸다”면서 “혈당 수치가 500mg/dL 넘게 나왔다”고 전했다. 아직은 더 활동할 나이에 대중 곁을 떠난 ‘국민엄마’이자 ‘수미누나’에 대한 각계의 추모가 이어지는 한편으로, ‘국민병’이 돼버린 당뇨병 관리 및 치료에 대한 경각심도 높아지고 있다.
대한당뇨병학회와 관련 전문가들에 따르면, 고혈당이란 혈액 속 포도당 농도가 급격하게 상승해 신체 기능에 문제를 일으키는 증상이다. 기본적으로 당뇨병에 의해 유발되며 과로나 스트레스, 과음, 감염 등 비당뇨병적 원인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혈당 쇼크 오기 전에 빨리 응급실 가야”
삼성서울병원 당뇨교육실 자료를 보면, 당뇨병 환자에서 고혈당이 유발되는 원인은 △평소보다 식사량이 많거나 탄수화물이 많은 간식을 자주 먹은 경우 △평소보다 활동량이 적은 경우 △처방된 약을 정확한 시간에 복용하지 않은 경우 △인슐린 보관이 잘못되었거나 유효기간이 지난 경우 △심한 스트레스를 받은 경우 △질병·상처·염증이 있는 경우 등 다양하다.
당뇨의 급성합병증 중 고혈당을 보이는 대표적인 질환(일명 고혈당 쇼크)으로는 당뇨병성 케톤산증(DKA)과 고삼투압성 고혈당 상태(HHS) 두 가지가 꼽힌다. 개인차가 있지만 보통 혈당이 180~200mg/dL 이상으로 높아지면 혈관에서 체내 수분을 흡수하고 서서히 당이 소변으로 빠지기 시작하면서 피로감, 잦은 소변, 극심한 공복감, 피부 및 구강 건조, 시야 흐려짐 등 고혈당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250mg/dL 이상의 극심한 고혈당 지속은 ‘케톤산혈증’이라는 급성합병증을 유발하게 된다. 혈당이 에너지로 이용되지 못하면 축적된 지방을 에너지로 사용하게 되며, 이때 몸에 해로운 케톤산이 발생한다.
케톤산이 혈액 내에 과다한 경우 오심·구토·복통·설사·호흡곤란·의식혼수 등 위급한 증상이 발생하며 신체기능의 극심한 저하가 나타나고, 다른 질병 요인과 결합할 경우 쇼크에 빠질 수도 있다. 당뇨병성 케톤산증은 주로 1형 당뇨(소아형 당뇨)에서 발생한다. 체내가 산성으로 바뀌면서 이에 따른 전해질 불균형으로 인해 소중한 목숨을 잃을 수 있다. 이러한 산증을 보상하기 위해 호흡이 빨라지고, 복통 등을 호소하는 것이다.
“점점 늘고 있는 저혈당 쇼크도 주의 필요”
고삼투성 고혈당 상태는 제2형 당뇨병을 앓는 고령자에서 흔한데, 감염이나 과로·과음 등 신체 스트레스가 동반된 상태에서 당뇨병약 투여가 안 되고 충분한 수분 섭취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심각한 고혈당과 탈수가 생길 때 발생한다. 혈당은 500~600mg/dL 이상으로 측정된다. 갈증·다뇨 같은 당뇨의 전형적인 증상이 심해지고 계속 방치하면 착란·의식저하 등 신경학적 증상을 보인다.
오상훈 서울성모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당뇨병성 케톤산증과 고삼투압성 고혈당 상태에 이를 경우 빠른 시간 내에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심각한 장기 부전과 부정맥에 의한 심정지(심장마비), 뇌손상이 생기게 된다”면서 “응급실에서 수액 치료를 받고 인슐린을 혈관으로 급히 투입하면 대개 호전되므로 고혈당으로 인한 쇼크가 오기 전에 빨리 응급실로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기정 서울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의식이 없어 응급실에 내원하는 환자들은 기본적으로 혈당 검사를 해서 고혈당이든 저혈당이든 집중적인 응급치료를 한다”면서 “고혈당 자체로 심정지가 생기기보다는 심한 전해질 불균형이나 콩팥 기능 저하, 다른 감염 문제 등과 겹쳐 심장마비가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올해 7월에 국내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지난 3월에 국내 1인 가구는 점유율 41.8%, 1002만1413가구로 사상 처음 1000만 가구를 돌파했다. 2022년 11월 기준으로 65세 이상 중 1인 가구에 속하는 인원은 197만3000명으로 전체 1인 가구의 21.8%를 차지한다. 75∼84세는 24.6%, 85세 이상은 26.8%로 높아진다.
국내의 급속한 인구 고령화와 이로 인한 당뇨병 환자 증가 추세, 그리고 1인 가구 증가는 당뇨병으로 인한 고혈당 문제 대처를 어렵게 만드는 주요인이다. 사례를 하나 들어보자. 70대 여성 A 환자가 의식저하 상태로 발견되어 서울의 대학병원 응급실에 실려왔다. 이 환자는 평소 고혈압과 당뇨를 앓고 있어 집 근처 병원에서 두 질환에 대한 약물을 복용 중이었다. 최근 며칠 동안 감기몸살·코로나19 증상과 전신쇠약을 호소했다. 그런데 아침에 전화를 받지 않아 방문한 아들에 의해 방 안에서 의식 없이 대소변을 지린 상태로 발견됐다. 응급실에서 검사해 보니 혈압은 정상보다 약간 낮았지만 혈당 수치가 무려 700mg/dL으로 고삼투압성 고혈당 상태 진단을 받고, 대량의 수액 공급과 인슐린 투여로 혈당을 조절한 뒤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한국은 A씨 같은 사례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인구학적·사회구조적 취약성을 갖고 있다. 당뇨병학회가 국민건강영양조사(2012~22년)와 국민건강보험공단(2010~21년) 등의 자료를 기반으로 최근 내놓은 ‘당뇨병 팩트시트 2024’에는 2022년 기준 30세 이상 성인 7명 중 1명(14.8%)이 당뇨병 유병자로 나와 있다. 약 533만 명인데, 2024년으로 환산하면 6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학계는 추산한다.
김대중 아주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교수는 “흔히 저혈당 쇼크가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것과 달리, 고혈당 쇼크까지 가는 데는 상당한 기간(며칠에서 몇 달까지)이 걸릴 수 있다”면서 “혼수상태가 왔더라도 응급조치를 하면 젊은 사람의 경우 회복이 잘되지만 고령자는 신장(콩팥)이나 다른 장기의 기능이 같이 떨어지면서 부정맥이 유발되고, 10명에 1∼2명은 사망에 이를 수도 있는 위험한 상태”라고 경고했다.
유형준 한림대 의대 명예교수(내분비대사내과)는 “1980~90년대에는 성인들이 고혈당 쇼크로 응급실로 실려오는 일이 흔히 있었지만 요즘은 많이 줄어들었다”면서 “당뇨 환자에게 좋은 치료제가 나오고, 평소 당뇨 관리가 수월한 의료기기가 보편적으로 사용되면서 점점 늘어나고 있는 저혈당 쇼크에 더 큰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