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물리적 충돌까지 일어난 계엄날 밤의 국회
윤석열 대통령 비상계엄 선포 2시간 이후 아수라장 된 국회…일부는 전두환 정권 때 시위 구호인 “호헌철폐” 외치기도
아수라. 4일 새벽 0시30분경 국회의사당 앞 정문 앞의 풍경은 세 글자로 축약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두 시간 전인 전날 밤 10시30분경 비상계엄을 선포하자 국회 앞에는 족히 수백 명의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시민들 중 일부는 계엄령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갈등을 빚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이날 밤 국회 200m 바깥에서부터 차량들이 정체를 빚으며 극심한 혼잡 상황이 이어졌다. 택시기사 A씨는 “국회 근처로 데려달라는 승객들이 여럿 있었는데 아예 가까이 진입을 못 했다”며 기자에게 “걸어가는 게 빠를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윤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한 3일 밤 10시30분부터 경찰이 국회로 통하는 모든 입구를 봉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국회 보좌진 B씨는 “한밤중에 소집령이 떨어져서 신분증을 보여주며 들여보내 달라고 했지만 경찰이 전혀 말을 듣지 않았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일부 국회 직원은 국회 울타리 안쪽에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며 “저 사람들은 어떻게 들어간 거냐”라고 외쳤지만 경찰은 요지부동이었다.
국회 정문으로부터 약 100m 떨어져 있는 수소충전소 앞에서는 물리적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시민들 수십 명이 국회 진입을 시도하자 경찰이 막아섰다. 충돌 현장으로 방패를 든 경찰이 뛰어오기도 했다. 한 시민은 “민주경찰 협조하라”는 구호를 수십 차례 목놓아 외쳤다.
국회 정문 근처에서는 계엄령의 정당성을 놓고 일부 시민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언쟁을 벌이기도 했다. 계엄령에 지지 목소리를 내던 한 젊은 남성은 “때리지는 마세요”라며 이곳저곳 뛰어 다녔다. 본인을 시민단체 촛불행동 소속이라고 밝힌 여성 C씨는 확성기를 들고 “윤석열은 물러나라” “계엄 선포 웬말이냐”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 밖에 일부 시민들은 “계엄해제”와 함께 “호헌철폐”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호헌철폐는 전두환 정권 때 대통령 간선제를 규정한 헌법을 고쳐 직선제를 도입하자는 야당과 시민들이 외친 구호다.
한편 이날 새벽 0시 50분 쯤에는 국회 상공으로 헬기가 지나가기도 했다. 비슷한 시각 서울 도심에서는 장갑차가 달리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달아오르던 국회 앞 시위 분위기는 오전 1시경 국회가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켰다는 소식이 들려오자 잠시 가라앉기도 했다. 이 시각 국회는 재석 의원 190명이 모인 자리에서 긴급 본회의를 열어 전원 찬성으로 해당 요구안을 가결했다. 가결 투표에는 국민의힘 소속 친한계 의원 18명과 야당 의원 172명이 참여했다. 국회 앞에 모인 시민들은 “비상계엄 해제됐대”라며 수군거렸고, 일각에선 환호성이 튀어나오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