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년 만에 붕괴된 프랑스 정부, 하야 요구받는 마크롱…대체 왜?

예산안 강행으로 내각 붕괴, 정치적 고립 심화된 마크롱 ‘정치적 리더십’과 ‘무너진 경제 회복’이란 ‘이중 도전’ 직면

2024-12-14     이지온 프랑스 통신원

프랑스 정부가 62년 만에 내각 불신임으로 붕괴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번 사태는 미셸 바르니에 총리가 헌법 제49조 3항을 발동해 의회 승인 없이 2025년 예산안을 강행 처리하려 한 데서 비롯됐다. 프랑스 헌법 제49조 3항은 총리가 의회의 동의 없이 주요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강력한 수단이다. 과거에도 이 조항이 정치적 긴장을 불러온 사례는 있었지만, 이번처럼 내각 붕괴로 이어진 것은 드물다.

바르니에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은 공공지출 413억 유로(약 61조원)를 삭감하고, 증세로 193억 유로(약 28조원)의 추가 재원을 확보하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러나 야당은 이를 “서민 경제에 타격을 주는 비현실적 정책”으로 규정하며 반발했고, 좌파 연합과 극우 국민연합(RN)이 이례적으로 협력해 내각 불신임안을 발의했다. 불신임안은 331표의 찬성으로 통과되며 내각은 붕괴했다. 이는 1958년 제5공화국 창설 이래 프랑스에서 처음 발생한 사태로, 정치적 불안정성이 극대화된 상황을 반영한다.

12월7일 프랑스 파리에서 무너진 경제 등을 이유로 마크롱 대통령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리고 있다. ⓒEPA 연합

좌우는 물론 중도층도 마크롱에 등 돌려

이번 위기는 2022년 프랑스 총선 결과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당시 마크롱이 이끄는 집권당 르네상스당은 의석수 245석으로 제1당 자리를 유지했으나 과반(289석) 확보에는 실패했다. 극우 국민연합이 사상 최대 의석인 89석을 확보하며 존재감을 드러냈고, 좌파 정당들은 좌파연합(NUPES)을 구성하며 극우 세력의 성장을 견제하는 한편, 정부에 대한 압박을 강화했다.

그렇게 마크롱의 르네상스당은 ‘헝 의회(hung parliament)’ 상태에 빠졌다. 헝 의회는 의회에서 과반수를 차지한 정당이 없어, 정부가 주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야당과 협력하는 게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정치적 상태를 의미한다. 즉 정부의 정책 추진이 어려워지고, 정치적 불안정성이 커지게 되며, 결국 마크롱 정부의 리더십 약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주요 법안 통과에 야당의 협조가 절실한 상황에서 마크롱은 연금 개혁 등 주요 정책을 밀어붙이며 국민적 반발을 샀고, 이번 내각 붕괴 역시 그러한 리더십 약화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 헌법 제49조 3항의 잦은 사용(마크롱 정부는 2022년 총선 이후부터 이미 12차례 이를 발동했다)도 "정치적 소통 부재"라는 비판을 받는 주요 원인이다.

마크롱은 2017년 당선 당시 전통적인 좌우 정치에서 벗어나 새로운 중심 정치를 내세운 접근법 덕분에 ‘프랑스의 젊은 개혁가’로 주목받았으나, 최근 그의 정책들은 국민적 반발을 사고 있다. 2023년 강행된 연금 개혁은 대규모 시위를 촉발했고, 이번 예산안 논란 역시 "국민의 목소리를 무시한 처사"라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지난 3월 프랑스 여론연구소 IFOP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마크롱의 지지율은 28%로, 2022년 재선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또 다른 조사에서는 약 60%의 응답자가 그의 조기 퇴진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좌파와 극우 진영뿐 아니라 중도 성향 유권자들까지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며, 마크롱은 정치적 고립 상태에 처해 있다.

야당은 특히 마크롱이 책임을 내각에 떠넘기고 스스로는 비판을 회피하려 한다고 주장하며 그의 리더십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프랑스 언론 역시 이와 비슷한 시각을 보인다. 좌파 성향의 리베라시옹은 마크롱의 정책을 ‘엘리트 중심적’이라고 지적하며 사회적 대화를 강조했고, 우파 성향의 르피가로는 마크롱의 리더십 약화와 야당의 비현실적 요구를 동시에 문제 삼았다. 중도 언론인 르몽드는 이번 사태를 헌법 개혁의 필요성과 연관 지으며 프랑스 정치 체계의 구조적 문제를 지적했다.

정부 붕괴 이후 마크롱은 새로운 내각 구성을 예고하며 ‘혼란의 수습이 최우선’이라고 강조했다. 새 총리 후보로는 정치적 중립성을 가진 인물을 선임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번 사태로 약화된 정치적 지지를 회복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또한 마크롱은 2025년 예산안을 특별법 형태로 연말까지 통과시키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정부의 정책 추진을 위한 노력을 계속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시민들이 12월7일 파리에서 마크롱 대통령의 사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TASS 연합

‘조기 총선’ 승부수? 제1당 자신 못 하는 마크롱

조기 총선은 정국 돌파의 한 가지 가능성으로 언급되고 있다. 하지만 주요 여론조사 기관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르네상스당은 좌파연합과 국민연합에 밀려 의석수를 잃을 가능성이 높아 조기 총선은 마크롱에게 큰 리스크로 평가되고 있다.

정치적 혼란은 프랑스 경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정부 붕괴 이후 프랑스 국채 금리가 독일 대비 높아졌고, 프랑스 증시(CAC40)는 작년 최고치에서 10% 넘게 하락했다. 에너지 가격 상승과 맞물려 경제성장률은 둔화될 가능성이 높으며, 모건스탠리는 프랑스의 2025년 성장률을 0.5% 미만으로 전망했다.

마크롱의 퇴진 요구는 단순한 정치적 분노에 그치지 않는다. 프랑스 주요 도시에서는 수만 명이 참여한 시위가 열리고 있으며, 노동조합들은 추가 파업을 예고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의회와 정부 간 갈등이 아니라 프랑스 사회 전반에 걸친 불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결국 프랑스는 정치적 리더십과 경제 회복이라는 이중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마크롱이 새로운 내각을 통해 혼란을 수습할 수 있을지, 아니면 조기 총선이나 헌법 개혁 같은 대대적 변화를 강요받게 될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