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국’ 고려아연, 어디로] ② 5년 만에 부채 35배로…최윤범 회장의 수상한 투자

완전자본잠식 빠진 이그니오홀딩스 5819억원에 인수 중학교 동창 설립한 회사에 5600억원 ‘묻지마 투자’

2024-12-17     송응철 기자
왼쪽부터 장형진 영풍 고문,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김병주 MBK파트너스 회장 ⓒ연합뉴스·시사저널 최준필·뉴스뱅크

올해 재계의 가장 큰 화두는 경영권 분쟁이었다. 이 중에서도 고려아연이 연중 이목을 끌고 있다. 고려아연은 영풍그룹을 공동 창업한 장씨 가문과 최씨 가문이 함께 운영해온 알짜 회사였다. 하지만 2~3년 전부터 경영권 분쟁의 불씨가 타오르다 지난 3월 주주총회를 앞두고 ‘75년 동업’ 파국의 서막이 오르기 시작했다.

이후 사모펀드 MBK파트너스의 참전으로 ‘공개매수 전쟁’이 시작됐다. 현재 MBK·영풍의 지분율이 다소 앞선 가운데, 내년 1월 임시 주주총회에서 최후의 승자가 가려질 전망이다. 조용하던 고려아연은 왜 분열을 시작했고, 그 배경엔 어떤 얘기가 숨겨져 있으며, 분쟁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장면과 현재 진행 상황 등을 종합적으로 조망한다. [편집자주]

고려아연 분쟁의 서막을 올린 장영진 영풍 고문 측의 이유는 명확하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에게 경영권을 맡겨놨다가 ‘트로이카 드라이브’라는 신사업 전략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투자를 단행해 고려아연에 막대한 손실을 입혔다는 입장이다.

폐전자제품 재활용업체 이그니오홀딩스 인수가 대표적인 사례다. 고려아연은 2022년 최 회장의 주도로 이그니오홀딩스 지분 100%를 5819억원에 인수했다. 문제는 이그니오홀딩스의 재무 상황이다. 그해 11월 이그니오홀딩스가 공시한 재무제표에는 자본금과 자본총계가 각각 1100만원과 –18억원, 매출액과 당기순이익이 각각 28억원과 –47억원으로 기재됐다.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기업 인수을 수천억원을 들여 사들인 셈이다.

물론 사업에 중요한 특허기술이나 인허가권, 인프라 등을 보유한 기업의 경우는 실제 기업 가치보다 높은 가격에 인수하기도 한다. 그러나 게다가 이그니오홀딩스는 미국 내 보유한 특허기술이나 독자적인 자원 유통 네트워크를 보유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이그니오홀딩스 인수 목적은 달성되지 않았다. 고려아연은 이그니오홀딩스를 인수하면서 이 회사 전자폐기물 공급망을 통해 동박 생산 원료 수급과 이차전지 폐배터리 자원 확보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그니오홀딩스도 피인수 직전 미국 조지아주 사바나에 전자폐기물 재활용 공장 설립에 8500만 달러(한화 약 1140억원)를 투자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계획은 지난해 6월 돌연 철회됐다.

그 결과 이그니오홀딩스의 재무 상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실제 이그니오홀딩스와 자회사의 연결기준 당기순손실 규모는 2022년 말 282억원에서 지난해 말 530억원으로 계속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고려아연이 이그니오홀딩스 인수 과정에서 제대로 된 실사를 거치지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원아시아파트너스에 대한 투자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을 받는다. 최 회장은 중학교 동창인 지창배 회장이 설립한 사모펀드 운용사(PEF) 원아시아파트너스에 약 5600억원을 투자했다. 대규모 투자 결정이었지만 이사회 결의도 거치지 않았다.

원아시아파트너스 운용 자금의 80~90%는 고려아연 출자금이었다. 실제 고려아연은 원아시아파트너스가 운용하는 코리아그로스제1호 자금의 94.64%(1616억원), 저스티스제1호의 99.2%(482억원), 탠저린제1호의 99.4%(940억원), 그레이제1호의 99.6%(1096억원) 등을 출자했다.

사실상 고려아연 자금으로 운영되는 PEF인 셈이다. 뿐만 아니라 고려아연의 출자금은 비철금속 제련 등 본업과 전혀 무관한 부문에 투자됐다. 그 결과 고려아연은 지난 6월 말 현재 약 1378억원의 손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 투자금의 24.8%에 해당하는 규모다.

특히 고려아연이 99%를 출자한 원아시아파트너스의 펀드 하바나1호는 카카오와 하이브의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경쟁 과정에서 벌어진 시세조종 사건에 연루되기도 했다. 원아시아파트너스는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카카오와 공모, SM엔터테인먼트 주식을 고가에 대거 매입해 주가를 끌어올린 혐의를 받는다. 이 일로 지창배 회장은 기소돼 재판에 넘겨진 상태다.

영풍·MBK는 최 회장이 주도한 투자처 38곳 중 30여 곳에서 손실이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때문에 고려아연의 재무제표에는 암운이 드리우고 있다. 실제 2019년 410억원이던 고려아연의 부채 규모는 올해 상반기 1조4110억원으로 약 35배 증가했다.

영풍은 일련의 투자에 ‘의도’가 있다고 보고 있다. 신사업 투자 명목이었지만, 실상은 경영권 분쟁을 앞두고 우호지분 확보를 위한 자금 유출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의혹은 검찰 수사에서 밝혀질 전망이다. 앞서 장 고문 측은 이그니오홀딩스 인수, 원아시아파트너스에 대한 투자 결정 등과 관련해 최 회장과 노진수 전 고려아연 대표이사를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 고소했다.

이에 대해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 측은 장씨 일가의 경영 능력 부재를 문제 삼고 있다. 그동안 장씨 가문이 운영하는 영풍이 환경법과 중대재해처벌법을 위반해 왔고, 대규모 적자로 인원 감축을 진행하는 등 경영에 실패했다는 주장이다. 또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고 MBK파트너스와 결탁해 고려아연 경영권 확보에만 몰두하고 있다고도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