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아 내전 끝났지만 멀게만 느껴지는 중동 평화 [최준영의 글로벌 워치]
‘파죽지세’ 반군 진격에 러시아·이란·헤즈볼라 ‘무기력’ 영향력 확대하는 튀르키예·이스라엘…시리아 둘러싼 갈등 고조
50년 넘게 철권통치를 이어가던 시리아 아사드 정권이 붕괴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올해 11월말 시리아 북부 지역 이들립에 거점을 두고 있던 반군 세력이 인근 알레포에 대한 공세를 개시할 때만 하더라도 13년간 이어진 내전에서 반복되는 패턴으로 여겨졌다. 반군의 기습공격을 통한 일부 지역 점령, 그리고 이어지는 러시아의 항공 지원과 시리아 정부군의 탈환이 이어질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전망이었다. 하지만 알레포를 점령한 반군은 남부 지역으로 공세를 이어갔고 하마, 홈스 등 대도시를 연이어 점령했다. 국토는 넓지만 인구밀집지역 대부분이 서부의 단일한 축선을 따라 배치된 시리아의 특성상 대도시의 상실은 전황의 큰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반군들은 계속 공세를 이어가 결국 수도인 다마스쿠스에 진입했다. 바샤르 알 아사드 대통령은 혼란 속에서 항공기로 탈출해 러시아에 망명했다. 이 과정에서 시리아 정부군은 급속도로 붕괴했다. 일부 남아있던 부대 병력은 인근 이라크 등으로 탈출했다. 국영TV는 시리아 국민에게 아사드의 압제로부터 해방되었음을 발표했다. 군 사령부 역시 장교들에게 아사드 대통령의 통치가 끝났다고 통보함으로써 13년간의 내전은 일단락됐다.
반군의 공세는 최대 반군 세력 하야트 타흐리르 알샴(HTS)이 주도하고 기타 반군 세력이 결합하는 형태로 이뤄졌다. HTS는 시리아의 지하드 세력 가운데 하나인 알 누스라에서 갈라져 나온 세력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알카에다와도 연관이 있다. HTS를 이끌고 있는 아부 모하마드 알졸리니는 미국 등으로부터 테러리스트로 지목된 상태다. 이들에겐 최대 1000만 달러의 현상금이 걸려 있다. HTS는 시라아 북부 이들립 지역을 통치하면서 최대 3만 명의 병력을 거느린 무장집단으로 성장해 왔다. HTS는 자신들이 극단주의 세력과는 2016년 이후 결별했고 세속적인 가치를 존중하는 온건파라고 강조하고 있다. HTS는 그동안 튀르키예의 지원을 토대로 세력을 확장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며, 최근에는 드론부대 및 야간전 특수부대까지 운용하는 등 전력을 강화해 왔다.
HTS가 세력을 강화했더라도 수도 다마스쿠스를 점령할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정부군 세력도 만만찮았을 뿐만 아니라 아사드 정권을 지원해온 러시아와 이란, 그리고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여러 차례 반군을 제압해 왔기 때문이었다.
아사드 지원 세력 약해진 틈 노린 튀르키예
2024년 상황은 달라져 있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해 병력 및 전력이 약화된 상황이었다. 헤즈볼라 역시 이스라엘의 잇단 공격으로 인해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면서 올해 10월 대부분의 병력을 레바논으로 철수시킨 상태였다. 이란 역시 이스라엘과의 대립을 거치면서 대규모 파병을 할 수 없었다. 다급해진 이란은 이라크의 시아파 민병대를 동원해 시리아 정부군을 지원하고자 했지만, 이들이 도착하기 전에 상황은 이미 종료됐다.
아사드 정권의 몰락 배경에는 튀르키예가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 튀르키예는 시리아 내전으로 인해 발생한 300만 명 이상의 난민을 떠안고 있어 시리아에 개입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시작된 시리아 내전 초기에는 서방국가들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국가들이 반군들을 지원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부분 지원을 중단하거나 축소시켰다. 하지만 튀르키예는 반군들을 계속 지원했다. 마지막 반군 거점이던 이들립 지역을 러시아의 공세로부터 지켜내면서 아사드 정권과 대립각을 세웠다.
튀르키예가 아사드 정부에 맞서게 된 것은 쿠르드족 때문이다. 쿠르드족은 시리아, 이란, 이라크, 튀르키예에 걸쳐 광범위하게 거주하고 있다. 시리아 쿠르드족은 내전을 계기로 유프라테스강 동쪽을 기반으로 하는 자치정부를 수립했다.
자국 내 쿠르드족의 분리독립 시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던 튀르키예는 자국에 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최근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 대통령은 아사드 대통령에게 쿠르드족에 대한 합동 공세를 제안했다. 아사드 대통령이 이를 거부하자 반군의 공세를 허용하고 지원함으로써 시리아 정부를 전복시킨 것이다. 이를 통해 튀르키예는 당분간 시리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됐다.
시리아 정부가 급속히 붕괴하자 골란고원을 통해 시리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스라엘도 행동에 나섰다. 유엔이 설정한 완충지대를 넘어 시리아 영내에 진입한 이스라엘군은 여러 전략적 요충지를 점령하고 자국 영토에 편입시키려는 시도를 이어가고 있다. 시리아가 약화된 틈을 타서 충분한 전략적 완충지대를 확보하겠다는 의도다. 이에 그치지 않고 공군력을 동원해 시리아군 탄약고와 무기고에 대한 공격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무기와 탄약이 반군에 넘어가는 것을 막겠다는 명분이지만 실제로는 시리아군이 오랫동안 전력을 회복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하고 있는 것이다.
‘영향력’ 놓고 주판알 튀기는 주변국들
러시아의 경우 아사드 정부의 붕괴를 뼈아픈 전략적 패배로 받아들이고 있다. 소련 시절부터 러시아는 시리아 타르투스 항구를 거점으로 지중해는 물론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시리아를 거점으로 리비아, 수단으로 이어지는 해상 보급로를 확보해 홍해와 인도양으로 이어지는 해양 세력을 확대해 왔는데 아사드 정부의 붕괴로 인해 이런 전략이 근본부터 흔들리게 됐다. 러시아는 아사드 정부 붕괴 이후에도 타르투스를 비롯한 시리아 영내 기지 유지를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HTS를 비롯한 반군 세력들은 그동안 러시아의 공군력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봐왔기 때문에 러시아의 기지 유지 요청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있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시리아에 주둔하고 있던 병력을 전면 철수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아사드 정부는 붕괴했지만 시리아는 계속 혼란스러운 상태에 놓일 가능성이 높다. HTS를 비롯한 반군 세력들의 권력배분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더해 자치정부를 수립한 쿠르드족과 튀르키예 간 갈등도 점점 심화되고 있다. 튀르키예는 권력배분 협상에서 쿠르드족을 배제시킬 것을 HTS에 요구했지만 HTS는 이를 거부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쿠르드 자치정부 역시 튀르키예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이스라엘과의 협력을 모색하고 있어 시리아를 둘러싼 주변 국가들과 다양한 세력의 이합집산과 갈등은 언제라도 다시 무력충돌로 비화할 수 있다.
중동의 전통적인 강호였던 시리아의 몰락은 지난 10여 년 동안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해 오던 러시아와 이란에 큰 타격을 주었고, 이는 당분간 회복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상황에서 튀르키예와 이스라엘의 영향력 확대가 과연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많은 국가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내전은 끝났지만 중동의 평화는 아직 멀게만 느껴지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