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 곧은소리] ‘대통령 권한대행’을 또 탄핵?…국회, 다른 견제 수단 써야

우리 헌법은 국회가 거부권을 무력화할 수 있도록 ‘재의결 장치’ 마련해 놔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권한대행은 현상유지 이상의 국정행위를 자제해야

2024-12-27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우리 76년 헌정사상 세 번째로 국회의 탄핵소추로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는 불행한 사태를 맞고 있다. 대통령에 대한 직무정지는 2004년과 2016년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다. 모두 2000년대 들어서 일어난 일이다.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선진국에서는 그 예를 찾아볼 수 없는 비정상적인 현상이다. 우리 헌법이 추구하는 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 및 대의민주주의가 아직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증거다. 대의민주주의 나라에서 대의기관인 대통령과 국회가 국정을 주도하지 않고 사법부가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기이한 사태가 반복되고 있다. 이러한 사법국가 현상은 우리가 지향하는 삼권분립의 기본원리에도 어긋나는 후진적인 헌정 현상이다.

이제 이번의 직무정지 상태를 헌법과 법률에 따라 공정하게 해결하는 것만이 그나마 우리의 헌정질서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길이다. 우선 직무정지 상태에서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의 직무 범위에 대한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헌법에 명문 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헌법 정신에 따라 해답을 찾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지금 논의되고 있는 갑론을박은 다분히 정치성향에 따른 주관적 주장이어서 헌법에 근거한 주장이라고 보기 어렵다.

헌법은 단순한 기술법이 아니라 우리 법체계에서 유일하게 헌법철학에 기초한 이념법이다. 따라서 헌법의 이러한 이념법적 본질에 맞게 그 해답을 찾아야 한다.

대통령의 권한을 대행하는 국무총리의 권한 범위는 우리 헌법이 채택한 통치구조의 기본원리에 따라 해결해야 할 헌법철학적인 문제다. 우리 헌법은 국민주권의 대의민주주의를 채택하면서 통치권의 민주적 정당성, 통치권 행사의 절차적 정당성, 통치권 행사의 기본권 기속성의 세 가지를 구현하기 위한 통치구조를 마련하고 있다. 권력 간 견제와 균형을 위한 삼권분립의 원칙, 대의제도, 법치주의 등이 바로 그러한 수단이다. 따라서 대통령 권한대행의 직무 범위를 따질 때도 이 세 가지 기본원리의 정신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2024년 12월2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대국민 담화 발표 후 이동하고 있다. ⓒ시사저널 임준선

통치기관 간 견제와 균형이 헌법 정신

이런 관점에서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한 권한대행은 현상유지적인 관리작용의 범위를 벗어난 국정행위는 자제해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래서 현재의 법질서와 헌법기관의 구성에 영향을 미치는 형성적 행위는 자제해야 한다. 국회가 법을 제정·개정하는 것은 현재의 법질서를 변경하는 것이다. 그러한 법률안을 공포해 법질서를 변경하는 행위는 권한대행의 직무 범위를 벗어난 일이다. 따라서 대통령 권한대행은 현재의 법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이들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수밖에 없다.

그에 더해 헌법이론적으로도 대통령의 법률안 공포권은 단순한 형식적 권한이 아니라 법률안이 내용적·절차적으로 헌법 정신에 맞는지를 심사해야 하는 실질적인 권한이다. 예컨대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법률안을 공포하는 것은 통치권의 기본권 기속성을 어기는 일이기 때문이다. 통치기관 간 견제와 균형을 위해 헌법은 국회가 재의결로 거부권을 무력화할 수 있는 헌법상의 견제 장치도 마련했다. 국회가 이 견제 수단을 외면하고 탄핵으로 맞서려는 것은 거부권의 본질을 무시한 반헌법적·탈헌법적인 발상이다.

또 현안이 되고 있는 헌법재판관 3인의 임명도 헌법기관의 구성을 바꾸는 일이어서 권한대행의 직무 범위를 벗어난다. 또 권한대행이 공무원 임면권을 갖는다 해도 임명하는 공직자의 직위에 따라 달리 평가해야 한다. 행정업무의 현상유지를 위한 행정부 공무원 임명은 불가피하다. 반면에 다른 헌법기관의 구성원 임명은 그 기관의 구성에 변화를 주는 것이어서 현상유지의 범위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헌법기관 구성원의 임명도 헌법기관에 따라 그 의미와 성질이 다르다. 사법부는 정해진 법의 테두리 내에서 무엇이 합당한가의 합법성만을 따지는 기능을 한다. 중앙선관위는 선거법의 테두리 내에서 선거관리 업무를 수행하는 기능적인 집행기관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는 합법성뿐 아니라 합목적성의 판단을 포함해 헌법 정신에 맞게 정치형성을 하는 창설적인 권한을 갖는 헌법 수호 기관이다. 따라서 권한대행은 이러한 헌재의 창설적인 기능을 감안해 재판관 임명 여부를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지금은 현직 대통령의 탄핵심판 사건이 계류된 상태다.

 

헌재, 시간 쫓기듯 졸속재판은 안 돼

그래서 여야 협의 없이 추천된 3명의 재판관을 임명하는 것은 그 심판 결과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므로 헌법이론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한다. 박근혜 탄핵 사태 때 황교안 권한대행은 당시 야당의 강력한 반대로 대법원장이 추천한 한 명의 재판관을 박근혜 탄핵파면 후에 비로소 임명한 선례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이 갖는 엄중한 의미를 잊지 말고 공정한 결정을 해야 한다. 헌재의 나머지 기능과 달리 대통령 탄핵심판은 통치권의 민주적 정당성과 직결되는 형성적 기능이다. 대통령 직무정지 상태는 가능한 한 빨리 수습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졸속재판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

우리 통치질서에서 가장 강력한 민주적 정당성을 갖는 대통령 탄핵 사건은 시한을 정해 놓고 졸속으로 처리할 일이 결코 아니다. 특히 소송절차법도 어기면서 사건서류 송달도 하지 않고 미리 공판기일부터 정한 것은 명백한 위법행위다. 중대한 위법행위가 없음에도 방통위원장, 감사원장, 중앙지검장을 비롯한 수사검사들이 무더기로 탄핵소추된 상태다. 그 결과 중요한 국정업무가 부분적으로 마비 상태다. 그런데도 사건 심리를 서둘지 않았던 헌재가 이 사건들의 심리를 뒤로 미루고 대통령 탄핵 사건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헌재의 이념적인 편향성을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 최근에 헌재는 민감한 정치적인 사건의 처리에서는 이념적인 편향성을 보여온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검수완박법에 대한 권한쟁의심판 사건이다. 입법의 절차적 정당성을 어겨 청구인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했다고 인정하면서도 그 법률안은 무효가 아니라는 해괴한 결정을 했다. 그러나 헌재는 대통령 탄핵 사건을 계기로 시류에 편승하지 말고 냉정한 자세로 돌아가 이런 잘못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한다. 이번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내란죄를 이유로 했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 때와는 상황이 다르다. 따라서 심판 절차를 정지하는 문제도 헌재법의 입법취지에 맞게 신중하게 판단해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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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