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인연→악연…尹 대통령과 崔 대행의 기구한 운명

야인 생활 구해준 尹과 끈끈한 관계…비상계엄으로 뒤틀려

2025-01-03     정윤성 기자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의 운명은 윤석열 대통령과 기구하게 얽혀 있다. 둘의 첫 만남은 악연에 가깝다. 2017년 5월 기획재정부 1차관으로 근무하던 최 대행은 돌연 공직을 떠났다. 박근혜 정부 시절 벌어진 국정농단 사건 때문이었다. 당시 그는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으로 있으면서 국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로 기소된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의 지시로 미르재단 설립을 지휘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검찰의 국정농단 특별수사본부를 이끌던 사람이 윤 대통령이었다. 두 사람은 대통령과 경제부총리가 아닌 수사팀장과 참고인 관계로 서로를 알게 됐다.

최 대행은 기소되진 않았지만, 사건의 여파로 정권이 바뀌면서 하루아침에 야인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다. 30년간 걸어온 최 대행의 관직의 길을 끊은 장본인 중 한 명이 윤 대통령이었던 셈이다. 반대로 윤 대통령은 이 사건을 계기로 서울중앙지검장을 거쳐 검찰총장 자리까지 올랐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1월3일 대통령실 청사에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세일 키즈’로 사법고시 포기하고 행정고시 택한 ‘서울법대 수석’

이 사건 전까지만 해도 최 대행은 ‘미래의 경제부총리감’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던 엘리트 경제 관료였다. 그는 서울대 법학과를 수석 졸업한 인재였다. 당시 서울법대 수석 졸업생이 행정고시를 택한 것은 워낙 이례적이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대학 재학 시절 선배인 진동수 전 금융위원장, 오종남 전 통계청장, 박병원 전 경제수석비서관 등이 그를 찾아와 법조계 대신 행정부로 들어오라고 설득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수석을 지낸 고(故)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창립 이사장의 영향도 컸다. “법조계도 중요하지만 대한민국을 발전시키려면 행정부에서 일해야 한다”는 이들의 설득으로 최 대행은 결국 행정고시 29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최 대행에게 ‘박세일 키즈’라는 별명이 따라붙은 배경이다.

최 대행과 82학번 법대 동기인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조국 전 조국혁신당 대표 등은 법조인 생활을 하다 정계 핵심 인물로 자리 잡고 있다.

최 대행은 공직에 들어선 후에도 기재부 안팎에서 업무 능력을 인정받았다. 서기관 시절부터 정통 경제·금융 정책통으로 불렸다. 기재부 직원들이 뽑는 ‘닮고 싶은 상사’에 여러 차례 선정될 정도로 내부 평판 역시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을 앞둔 2007년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실무위원회를 맡고, 이후 기재부 미래전략정책관·정책조정국장·경제정책국장 등 핵심 요직을 거쳤다. ‘스타 관료’들이 거쳐 가는 것으로 알려진 금융위 공적자금관리위원회 사무국장 때는 우리금융지주 민영화를 주도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 시절에도 청와대 경제금융비서관, 기획재정부 1차관까지 지냈다. 국정농단 사건으로 윤 대통령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경제 관료로서 승승장구했던 것이다. 윤 대통령과 최 대행의 만남이 인연보다 악연에 가까웠던 이유다.

기재부를 떠난 최 대행은 문재인 정부 5년간 두문불출했다. 2020년 농협대학교 총장 자리에 오르며 다시 대외활동을 시작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그가 관직에 다시 오르긴 어렵다고 보기도 했다.

이런 최 대행의 운명을 또 한번 바꾼 사람은 다름 아닌 윤 대통령이었다. 최 대행은 2022년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경제1분과 간사로 발탁됐다. 검찰 수사 때 최 대행을 유심히 본 후배 검사들이 윤 대통령에게 그를 추천하면서 인수위에 합류할 수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역설적이게도, 악연 같던 윤 대통령과의 첫 만남 덕분에 최 대행이 공직에 화려하게 복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최 대행에 대한 윤 대통령의 신임은 각별했다. 그는 곧바로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으로 낙점되며 윤석열 정부 초대 경제팀의 중추적인 역할을 맡았다. 이후 최 대행은 2023년 12월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윤석열 정부 2기 경제팀을 이끌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자리를 찾은 최 대행은 큰 정치적 논란 없이 ‘엘리트 경제 관료’로 돌아왔다. 경제부총리로서 단기적인 경기·민생 대책이 아닌 중장기 경제 비전인 ‘역동경제 로드맵’을 발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그는 지명된 직후부터 역동경제를 향후 경제정책 방향의 주요 키워드로 제시하고, 이를 구체화하는 데 주력했다. 국정농단 사건에서 시작된 최 대행과 윤 대통령의 복잡한 관계도 이렇듯 각별한 인연으로 남는 듯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024년 1월2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증권ㆍ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창용 한은 총재와 함께 ‘경제 리스크’ 관리 최선봉

2024년 12월3일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다시 악연의 기운이 감돌게 됐다. 최 대행은 당시 비상계엄을 선포하기 위한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결정에 반대하고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밝혔다. 그 직후 긴급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F4회의)를 소집해 사퇴 의사를 밝혔지만 끝내 직을 유지했다. 당시 한덕수 국무총리와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등이 “경제 리스크 관리가 최우선”이라며 강하게 만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최 대행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탄핵안까지 가결되면서 자신을 가장 신임한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로 인해 대통령·국무총리의 권한대행이라는 사상 초유의 역할을 맡게 됐다. 그러나 공직 생활 역시 불명예로 마침표를 찍을 상황에 놓이면서 윤 대통령과의 인연도 악연으로 끝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그가 풀어야 할 숙제는 간단하지 않다. 대통령, 국무총리, 경제부총리, 기재부 장관까지 1인 4역을 맡아야 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자신이 사령탑으로 있는 경제팀의 업무 과부하가 불가피하게 됐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에게 일부 역할을 맡긴 것으로 보이지만, 여전히 그의 어깨는 무겁다. 비상계엄 사태 이후 1500원을 목전에 둔 환율을 비롯해, 내수 부진에 따른 성장률 둔화, 소비 침체 등 최 대행과 경제팀이 머리를 맞대고 풀어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최 대행의 멘토 역할을 하는 한 전직 고위 관료는 “최 대행은 굉장히 총명하고 균형 있는 사고방식을 소유하고 있다”며 “관료라는 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국난의 시기에 위기를 관리하고 방향을 제대로 찾도록 하는 데 최적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지금 큰 위기에 놓인 대한민국에 최상목이라는 인물이 주요 역할을 맡게 된 것은 큰 다행”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