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최상목, 불확실성과 싸워 이기는 자
불확실한 내일을 위해 오늘을 바치지 않는 게 인간 심리다. 암울한 미래가 닥칠수록 순간의 행복을 추구하곤 한다. 그런 사람이 다수인 나라의 지속 가능성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그래서 좋은 정치 지도자는 국민에게 앞날의 희망을 주고 불확실성(Uncertainty)과 싸워 이기는 자다. 신년에 좋은 정치 지도자 역할을 하는 사람은 의외로 정치인이 아니라 경제 관료다. 대통령 및 국무총리 권한대행을 하면서 무안 참사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일까지 도맡은 1인 4역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얘기다.
윤석열과 이재명의 저질 정치로 난파선 된 나라
최상목 대행은 윤석열과 이재명이 저지른 저질 패싸움 정치의 결과로 나라가 침몰하기 직전 임시 선장으로 난파선 키를 잡았다. 그는 정치를 해본 적이 없는데 절묘한 선택으로 정치 불확실성의 일부를 걷어냈다. 한 묶음으로 인식되던 ‘헌법재판관 3인 임명’ 난제를 1인씩 개별적으로 쪼개는 콜럼버스의 달걀 같은 발상 전환으로 2인만 승인하는 방식을 취했다. 거의 아무도 예상치 못한 해법이었다. 이해 당사자들은 허를 찔렸다. 최상목에게 배신감을 느낀 윤석열 대통령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고, 국회의장과 여야 모두 불만을 터트렸지만 노골적으로 판을 깨는 행동으로 가진 않았다. 탄핵 중독당이란 소리를 듣는 민주당조차 일단 지켜보기로 했으니까. 야구로 치면 영리하게 텍사스 안타를 쳤다고 할까.
최 대행은 국민의 선택을 직접 받지 않아 이른바 민주적 정당성이 미흡하다는 약점을 안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12월31일 헌법재판관 문제를 논의하는 국무회의에서 동료 장관들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았다. 비서실장·안보실장 등 대통령실 고위급들이 전원 항의 사표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최 대행은 국무회의를 마친 뒤 눈물을 흘렸다는데 아마 1년 전까지 윤 대통령의 경제수석으로서 “상목아”라고 불릴 만큼 친밀했던 대통령이 생각나서였는지 모르겠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최 대행이 고대 로마의 카이사르를 배반한 브루투스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하지만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국민만 바라본다”를 입에 달고 살았던 사람이 누군가. 윤 대통령은 그동안 말만 하고 실천하지 못했던 이 얘기를 이제 최상목에게 해줬으면 한다. 그래야 그의 어깨가 가벼워져 선공후사에 더욱 매진할 수 있을 것이다. 최상목도 작은 의리에 얽매이지 말고 스스로 밝힌바, 권한대행의 국가적·국민적 의무인 “정치적 불확실성을 털어내고 민생 안정을 위해 여·야·정이 힘을 모아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
비상대권 수임자로서 가장 큰 장점, 야심이 없다는 것
1963년생인 최상목 대행은 이헌재(1944년생)·윤증현(1946년생)·진동수(1949년생)·김석동(1953년생) 등 경제부처의 전설적인 위기 해결사 선배들 밑에서 단련됐다. 그는 경제가 가장 싫어하는 불확실성과 싸워 이긴 경험들을 축적했다. 이 생생한 경험을 정치 분야에 적용해 성과를 내도록 국민이 도와줄 필요가 있다. 국가 비상사태를 헤쳐갈 싹수와 실력은 있어 보이는데 그를 밀어줄 정당도 없고, 민주적 정당성마저 취약하니 이를 국민이 보완해 주자는 얘기다.
비상대권 수임자로서 최상목의 가장 큰 장점은 야심이 없다는 것. 대권 욕심이 없다. 정치 세력이 제로인 기술관료일 뿐이다. 한덕수 국무총리와도 다르다. 최 대행은 윤 대통령과 눈물을 머금고 헤어질 결심을 했다. 따라서 차기 대권을 놓치면 감옥에 갈지 모른다는 조급함에 탄핵만 29차례, 권력의 자제는 없고 입법 폭주를 일삼는 이재명 대표가 경쟁자로 신경 쓸 상대가 아니다. 최상목은 위기가 수습되면 바로 자리에서 내려올 사람이다. 그러니 실전 경험 풍부하고 사심이 없으며 어떤 정치 집단과도 이해관계가 적은 최 대행이 불확실성과의 싸움에만 전념할 수 있게 여건이 마련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