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공기 대형 참사의 최대 원인은 ‘조종사 실수’와 ‘기체 결함’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큰 충격과 슬픔에도 계속 반복되는 대형 항공기 사고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 27년 만의 ‘대형 참사’…국내에서 발생한 사고 중 최다 사망자 기록
1968년 대한항공이 영업을 시작하면서 국적 민항기가 세계를 누비게 됐다. 1988년 아시아나항공이 출범한 후 양대 항공사 체제가 되었다. 2000년 이후에는 제주항공 등 저비용 항공사(LCC)가 잇따라 설립되면서 국내 저가항공 시대를 열었다. 항공 서비스가 다변화되고 고객의 선택의 폭이 넓어졌지만 항공사들의 과열 경쟁으로 사고에 대한 위험성도 한층 높아졌다.
일각에서는 조종사의 안전불감증과 정비 부실, 항공기 노후화 등의 문제가 불거지며 경고등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이런 가운데 전남 무안국제공항에서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가 터지면서 위험이 현실화됐다.
지난 50년 동안 국내외에서 대한민국 국적 민항기의 크고 작은 사고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10명 이상의 사망자가 발생한 사고만 해도 7건에 이른다. 외국 국적 항공기가 국내에서 추락해 대형 인명 피해가 발생하기도 했다.
괌 참사, 조종사 판단 실수가 결정적 원인
항공기 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정부나 관계기관, 해당 항공사는 여러 가지 대책을 내놓았다.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같은 원인의 사고가 반복된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일어난 대형 항공 사고를 보면 알 수 있다.
1983년 8월31일 대한항공 007편(기종 747-23OB)이 미국 뉴욕 존 에프 케네디 국제공항을 출발해 알래스카 앵커리지 국제공항을 거쳐 김포국제공항으로 향했다. 9월1일 0시5분쯤 007편은 항로를 이탈해 당시 소련 영토인 캄차카반도 북동쪽 상공에 진입했다. 조종사는 오차범위 안쪽이라고 판단해 자신이 항로를 이탈한 사실을 알지 못했다.
소련 방공군은 미국 공군의 군용기로 판단하고 즉각 전투기를 출격시켰다. 전투기 조종사는 새벽 시간이라 어두웠기 때문에 민항기라는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다. 전투기는 007편의 300m까지 접근해 같은 고도로 날아가면서 전투기 날개 쪽에 달린 경고등을 깜박거리며 수차례 유도착륙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007편이 비행을 계속하자 4차례에 걸쳐 예광탄이 없는 경고사격을 했는데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오히려 고도를 높이자 공격적 행동으로 판단하고 공대공 미사일 두 발을 발사한다.
미사일 한 발은 빗나갔지만 나머지 한 발이 007편 기체 꼬리 부분에 맞으면서 폭발이 일어났다. 피격 직후 조종사들은 불안정한 기체를 제어하기 위해 랜딩기어를 내리려고 시도했지만, 정상적인 조종이 어려워지면서 사할린 모네론섬 부근 바다에 추락했다. 이 사고로 승무원과 승객 등 탑승자 269명 전원이 사망했다. 이것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악의 항공 사고로 기록됐다.
두 번째 대형 참사를 낸 항공기 사고는 1997년 8월6일 발생했다. 이날 오전 1시43분쯤 대한항공 801편이 서울 김포국제공항을 출발해 미국령 괌 아가냐 국제공항으로 향했다. 당시 괌 지역은 폭우와 짙은 구름이 끼어 시야가 좋지 않은 악천후 상황이었다. 801편은 공항 6번 활주로에 착륙하려고 시도했으나 착륙 유도 시스템인 글라이드 슬로프가 수리 중이라 사용할 수 없다는 안내를 받았다. 얼마 후 글라이드 슬로프 신호가 들어왔지만 조종사들은 폭우로 인해 시야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조종사들은 이 신호만 믿고 착륙을 시도한다. 이때 지면과 너무 가깝다는 대지 접근 경보 장치(GPWS) 신호가 들어왔지만 조종사들은 이를 무시했다. 결국 항공기는 공항에서 5km가량 떨어진 밀림에 추락한다. 탑승자 254명 중 228명이 사망하고, 26명만 기적적으로 생존했다.
이 사고는 태풍으로 인한 폭우로 조종사 시야가 가려지고 공항의 착륙 유도 장치인 글라이드 슬로프 문제도 있었지만, 조종사의 판단 실수가 결정적인 원인으로 지적됐다. 조종사들이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항공기를 너무 낮은 고도로 접근시켰고, 자동항법장치를 제대로 설정하지 않은 것이 착륙 시도에 실패한 원인으로 지적됐다. 조종사와 관제소 사이에 정보 교환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고, 기상 조건에 대한 경고도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해남 사고 대책 일환으로 개항한 무안공항
국내외에서 발생한 국적 항공기 사고 중 세 번째로 큰 인명 사고는 이번에 탑승자 181명 중 179명이 사망한 전남 무안국제공항 사고로 기록됐다. 특히 이번 사고는 국내에서 일어난 여객기 사고 가운데 최대 규모 참사로 기록됐으며, 국내 저비용 항공사의 첫 사망 사고다.
네 번째로 인명 피해가 컸던 국적 항공기 사고는 테러로 인한 폭발이었다. 1987년 11월29일 이라크 사담 국제공항을 이륙해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 국제공항을 거쳐 김포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858기는 중간 기착지인 방콕을 거쳐 비행하다 인도양의 미얀마 상공에서 폭파된다. 조사 결과 북한 지령에 의한 공중 폭발로 결론 났다. 북한 공작원인 김승일과 김현희가 액체 시한폭탄으로 비행기를 폭파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당시 858기에는 승객과 승무원 115명이 탑승하고 있었으나 전원 사망했다.
다섯 번째 인명 사고는 리비아에서 일어났다. 1989년 7월27일 서울 김포국제공항에서 출발한 대한항공 803편 여객기가 리비아 트리폴리 공항에 착륙하다가 활주로 끝에 있는 지상 장애물과 충돌한다. 당시 활주로에는 짙은 안개가 끼어 시정거리가 240m에 불과했다. 조종사가 악천후 속에서 무리하게 착륙을 시도한 것이 사고 원인으로 밝혀졌다. 이 사고로 탑승자 199명 중 76명과 지상에 있던 4명 등 80명이 사망했다. 한국인 희생자 대부분은 현지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었다.
1993년 전남 해남에서 추락한 아시아나 737편 여객기 추락 사고에서는 탑승자 68명이 사망하고 44명이 중상을 입었다. 국내외에서 발생한 대형 인명 피해 중 여섯 번째로 기록됐다.
같은 해 7월26일 오후 2시20분 김포국제공항을 출발한 737편은 영암 소재 목포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으나 태풍 오펠리아의 영향으로 집중호우가 내리면서 기상 상태가 좋지 않았다. 737편 조종사는 1차 착륙에 실패한 뒤 3차까지 시도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계속된 착륙 실패로 초조해진 조종사는 무리하게 4차 시도를 하다가 문제가 생긴다. 기체를 상승시키다가 산봉우리를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충돌하면서 관제탑과 교신이 끊긴다. 737편은 전남 해남군 화원면에 위치한 운거산 절골에서 추락한 채 발견됐고, 탑승자 110명 중 68명이 사망하고, 48명이 부상당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강한 폭우로 인해 항공기에 화재가 발생하지 않아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사고 원인은 조종사 과실로 드러났다. 해당 항공기가 정상 비행항로를 이탈하고 조종사가 거리 착각을 일으키며 무리한 착륙을 시도했다고 판단했다. 이 사고는 아시아나항공 설립 후 첫 번째 여객기 추락 사고이자 대형 인명 피해 사고다. 당시 교통부는 사고 대책의 일환으로 무안국제공항 건설 계획을 밝혔다. 그런데 그 대체 공항에서 31년 후에 국내 최대 인명 피해가 발생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전개된 셈이다.
국적 항공기의 대형 인명 피해 사고 중 일곱 번째는 대한항공 여객기 사고다. 1980년 11월19일에는 대한항공 B747기가 김포공항에 착륙하다가 뒷바퀴가 부러지면서 탑승자 226명 중 16명이 사망했다. 사고 원인은 시야 불량과 조종사 실수로 판단됐다.
외국 국적 항공기가 국내에서 추락해 대형 인명 피해를 발생시킨 사고도 있었다. 2002년 4월5일 오전 8시40분쯤 중국 베이징을 출발한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소속 CCA129편 여객기가 김해국제공항으로 향했다. 이날 김해 상공에는 짙은 안개가 끼고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람도 강하게 불었다.
CCA129편은 회항을 위해 인천국제공항으로 향하다 김해의 기상 상태가 완화되자 김해국제공항 착륙허가를 받는다. 하지만 당시 CCA129편의 기장과 부기장은 김해공항 선회 착륙 경험이 없었다. 여객기는 활주로를 끼고 남쪽에서 북쪽으로 선회해 들어와야 했지만 선회가 늦어지면서 김해시 돗대산과 충돌하고 만다. 당시 여객기 탑승자 166명 중 130명이 사망했다. 사고 원인은 조종사들의 선회 접근 절차에서의 오류와 늦은 복행으로 결론 났다. 국내에서 발생한 항공기 사고로는 두 번째로 많은 인명 피해를 냈으며, 국내외에서 발생한 한국인 인명 피해 사고로는 네 번째 규모였다.
항로나 공항 관리 문제도 주요 사고 원인
높은 고도에서 발생하는 항공기 사고의 특성상 대형 인명 피해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발생한 항공기 사고를 종합해 보면 사실상 모두 인재(人災)에 가깝다. 주요 원인으로는 조종사의 판단 오류와 조작 실수, 기상 악화, 정비 과실, 항공기 설계 결함, 장치 고장, 비행장 및 지상 항법시설 결함, 항공교통관제 착오, 기타 외부 요인 등이 꼽혔다. 이 중 가장 큰 원인은 조종사의 판단 오류와 조작 실수로 드러났다. 피로와 음주, 교육 미흡 등도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실제 항공기 사고 대부분은 이륙이나 착륙 과정에서 일어났는데, 조종사의 판단과 조작 실수가 사고로 이어졌다. 기장과 부기장의 권위주의적 관계로 인한 대처 미흡도 문제로 꼽히고 있다. 기계장치 결함도 주요 사고 원인 중 하나다. 엔진 고장이나 제동장치 결함 등은 비행기 성능과 안전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비행기 기체가 노후화됐거나 정비가 소홀할 경우 언제든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항로나 공항 관리 문제도 사고 원인이 될 수 있다. 악천후 상황에서는 조종사와 관제사의 소통이나 대처가 매우 중요한데 평소 숙달되지 않으면 비상 상황에서 대형 사고를 야기할 수 있다. 관제사의 잘못된 항로 지시나 착륙 과정에서의 정보 부족과 소통 오류 등도 사고 유발 요인이다.
또한 항공기 사고는 다양하고 복합적인 요소가 원인이 될 수 있기 때문에 가상의 상황에 대비한 훈련과 대비책 마련이 충분히 이뤄져야 한다. 이런 과정들이 미흡하거나 소홀하면 대형 사고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는 교훈을 이번 무안공항 참사에서 다시 한번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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