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 경제관료 최상목의 배수진, ‘尹 탄핵의 문’ 열다
‘계엄 반대’에서 ‘헌재 8인’ 구성까지…최 대행, 항상 사직서 품고 다녀 ‘불확실성 해소’에 강한 소신…‘박근혜 특검 수사 트라우마’도 작용 빨라진 이재명 대선 시계…與도 격앙 대신 조기 대선 준비 본격화 기류
“2025년은 푸른 뱀의 해입니다. 뱀은 어려움을 극복하는 ‘유연함’과 ‘통찰력’, 그리고 ‘새로운 시작’을 위한 ‘변화’를 상징합니다.”(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신년사 중)
탄핵 정국이 새 국면을 맞았다. 새 국면이라는 변화의 길은 최상목 대행이 열었다. 그는 ‘새로운 시작’을 위해 ‘유연한 승부수’를 던졌다. 탄핵 국면 속 초유의 권한대행의 대행 체제와 항공기 참사로 극대화된 국정 불확실성 속에 ‘헌법재판관 임명’이라는 첫 번째 난제를 최 대행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수로 풀어냈다.
‘뱀의 유연함’을 강조한 최 대행은 헌법재판관 ‘임명 숫자’에서 그 해답을 찾았다. 그는 국회 몫 헌법재판관 2명을 임명해 최소한의 헌정질서는 회복시켰지만,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운명을 판가름할 마지막 한 자리를 남겨뒀다. “전부 충원하라”는 야권의 요구와 “임명은 위헌”이라는 여권의 압박을 모두 불식하며 ‘태풍’은 피하고 ‘역풍’은 감수하겠다는 승부수다. 헌법재판관 임명을 두고 극한 대치를 벌이던 정국에 미묘한 지각변동이 생기면서 최 대행은 여야 모두에 가장 중요한 변수로 떠올랐다.
최상목은 대체 누구일까. “전형적인 관료” “균형 있는 사고방식” “선공후사”. 최 대행을 오래 알고 지낸 복수의 정부 고위 관계자는 그를 시사저널에 이렇게 표현했다. 원칙주의자로 평가받는 최 대행은 윤 대통령의 지난해 12월3일 비상계엄 선포 당시 가장 적극적으로 반대 목소리를 낸 인물로 알려져 있다. 윤 대통령과 인연도 깊다. 박근혜 정부 당시 경제금융비서관을 지낸 최 대행은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고, 수사를 맡은 윤 대통령이 그를 눈여겨본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서울대 법대 3년 후배인 그를 상당히 아꼈다고 한다. 이에 정부 관계자는 “(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결정에 대해) 인간적으로 윤 대통령이 배신감을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계엄의 밤’ 때 사표 내자 끝까지 말린 한덕수
단 5일. 최 대행이 윤 대통령과 거리두기를 결심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최 대행은 작년 12월31일 국무회의를 열고 정계선(야당 추천)·조한창(여당 추천) 2명의 헌법재판관을 전격 임명했다. 그는 “하루라도 빨리 정치적 불확실성과 사회 갈등을 종식시켜 민생 위기 가능성을 차단하는 게 필요하다고 보고 헌법재판관을 임명하기로 결정했다”면서도 마은혁 후보자(야당 추천)에 대해선 여야 합의가 필요하다며 임명을 유보했다. 한 총리가 헌법재판관 임명을 사실상 거부해 야당의 ‘줄탄핵’으로 직무가 정지된 지 일주일도 안 돼 결과가 뒤집힌 것이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최 대행의 결단에는 ①계엄의 위헌성과 관련한 강한 문제의식 ②국정농단 트라우마 ③불확실성을 해소해야 한다는 소신 등이 크게 작용했다. 끝까지 고심했지만, 일찍 마음을 굳혀 신속한 결정이 가능했다. 1월1일 안에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 여부를 밝혀야 하는 쌍특검법(내란·김건희 특검법)과 달리, 헌법재판관 임명엔 법정 시한이 없다. 일각에서 최 대행이 한 총리처럼 재판관 임명을 유보 혹은 거부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던 이유다. 더불어민주당도 항공 참사의 여파로 최 대행에 대한 탄핵 카드를 함부로 거론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런데도 ‘여야가 추천한 헌법재판관을 1명씩 임명한다’는 예상 밖의 결정엔 여러 메시지가 담겨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최 대행 “불확실성 해소 위해 재판관 임명 불가피”
그는 왜 이런 승부수를 던졌을까. 먼저 비상계엄 사태 자체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최 대행은 12월3일 밤 비상계엄 선포 때 열린 국무회의가 끝난 뒤 곧바로 사퇴 의사를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헌법재판관 임명을 발표했던 국무회의에서도 최 대행은 “안 그래도 무안 항공 사고만 아니었으면 사직하려고 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비상계엄이 선포된 밤부터 윤 대통령의 판단에 반발해 줄곧 사직서를 품고 있었던 셈이다.
계엄 선포 당일 한 총리가 최 대행의 사퇴를 만류했던 정황도 드러났다. 최 대행을 잘 아는 또 다른 지인은 “(최 대행 입장에선) 계엄을 선포한다는 대통령 말에 ‘그만두겠다’면서 반대했으니 당연히 사의를 표명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며 “최 대행이 (회의 후) 계엄 선포를 반대한다며 사퇴하겠다고 하니까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한덕수 총리도 (그의 사퇴를) 강하게 말렸다”고 했다.
최 대행의 이번 선택에는 박근혜 정부 당시의 ‘탄핵 트라우마’가 영향을 미쳤다는 관측도 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 비서관으로 국정농단 수사를 받았던 쓰라린 경험을 토대로 불필요한 의혹을 원천 차단하겠다는 속내가 드러났다는 해석이다. 또 탄핵 정국이라는 정치적 격변 시기에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를 냉정하게 판단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최 대행을 잘 아는 지인은 시사저널에 “(최 대행은) 항상 반대 세력이 도처에 암초처럼 나타나도 잘 극복하는 사람”이라며 “국가 위기 상황에서 정치인으로서 정책을 미리 설계하는 리더의 역할보단, 나라를 안정시키고 방향을 찾는 데 최적의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최 대행의 사직을 제일 강하게 만류했던 한 총리지만, 둘은 이후 ‘헌법재판관 임명’을 두고 전혀 다른 길을 걷게 됐다. 앞서 한 총리는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 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않았다. 반면 최 대행은 헌법재판관 임명 당시 권한과 관련해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최 대행과 오랫동안 같이 일해온 그의 한 지인은 “임명을 결정할 때 아무리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도 (지금의 불확실성에 대해) ‘아닌 건 아니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최 대행은 한 총리가 12월27일 탄핵소추되기 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셔야 한다. 대행이 탄핵소추 당하면 불확실성만 커진다”고 설득했다는 관계자의 증언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그만큼 지금의 국정 공백이 장기화할수록 불확실성이 커지는 것에 대한 문제의식이 컸던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목은 최 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을 발표한 국무회의 당일 보도되면서 최 대행의 결정을 암시하기도 했다.
최 대행의 결정은 곧바로 윤 대통령의 위기로 이어졌다. ‘8인 헌재’가 구성되면서 그동안 “6인 체제는 불완전하다”며 심리의 정당성 문제를 제기한 윤 대통령 측 주장이 타당성을 잃게 됐다. 탄핵이 인용될 가능성도 높아졌다는 분석이 많다. 대통령의 탄핵 결정은 6인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기에 기존 6인 체제에선 1명만 반대해도 탄핵이 기각된다. 하지만 재판관 2명이 더 채워지면서 3명 이상의 반대 의견이 나와야 탄핵을 막을 수 있다. 아울러 거대 야권의 탄핵 남발과 재판관 인력 부족으로 쌓여 있는 10건의 탄핵 사건에 대한 처리에도 숨통이 트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용산 반발했지만 ‘마이웨이’ 선언한 최상목
최 대행은 ‘탄핵길’을 열었다는 점에서 그야말로 배수진을 쳤다. 현재 제1야당의 유력한 대권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사건’ 2심 판결이 나올 때까지 윤 대통령의 탄핵을 지연시키려는 여권 일각의 전략에 제동을 건 셈이 됐기 때문이다. 이에 최 대행은 ‘배신자’라는 뭇매는 물론 자신의 사퇴도 각오했지만, 동시에 무조건적으로 야당의 편을 들지 않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야당이 추천한 마은혁 후보자에 대해 “여야 합의를 확인한 뒤 임명하겠다”고 버티는 모습도 보인 것이다.
진영논리를 떠나 관료로서의 소신도 드러냈다. 앞선 ‘계엄 반대’와 ‘탄핵 트라우마’는 최 대행의 개인적 요인으로 작용했다면, 헌법재판관을 임명한 대외적 명분은 ‘불확실성 해소’다. 그동안 국민의힘은 권한대행 체제에서 헌법재판관 임명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했고, 민주당은 3명 모두 즉시 임명해야 한다고 맞섰다. 그 결과, 한 총리의 탄핵 가결로 헌정사상 초유의 ‘대행의 대행 체제’가 들어섰고 정국은 혼란으로 치달았다. 이에 최 대행은 재판관 2명을 임명하며 불확실성을 축소하고자 했다.
실제 최 대행은 12월31일 국무회의에서 발표한 모두발언 전문에서 ‘불확실성’을 총 세 차례나 거론하며 불확실성 해소를 강조했다. 특히 기재부 장관직을 겸하는 만큼 경제 지표 하락 등 국내 경제 상황과 관련해 정치적 불확실성에 따른 경제 상황을 심각하게 인식했다. 그는 “계엄으로 촉발된 경제의 변동성은 헌법재판관 임명 보류와 권한대행 탄핵소추 이후 급격히 확대됐다”며 “2024년 말 환율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역대 최고 수준인 1470원까지 상승했고, 해외투자자들은 정치적 불확실성 지속 시 대규모 자본 유출과 신용 등급 하락을 경고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통화에서 “한 총리의 권한대행 체제가 유지됐더라도 헌법재판관 충원은 언젠가는 해결됐어야 할 난제”라며 “최 부총리가 얼어붙은 탄핵 정국에 물꼬를 터준 셈이다. 한 총리보다 훨씬 더 전형적인 관료인 최 부총리도 (여야 비판에 따라) 감당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걸 알지만, 그만큼 고심한 게 본인의 소신과 여론이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역풍은 컸다. 정부와 여당은 최 대행의 선택을 곧바로 독단적·위헌적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최 대행 역시 책임론과 후폭풍을 고려한 듯 ‘헌법재판관 2명 임명’을 발표한 국무회의를 시작하기 직전까지 여러 유형의 원고를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오전으로 예정된 회의 시간도 오후로 미루는 등 그가 고심한 흔적이 속속 드러났다. 단, 판단을 내리는 데까지 다른 국무위원, 내각, 여권과의 협의 과정은 거의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무회의에 참석한 국무위원들은 회의 전까지도 별다른 메시지를 전달받지 못해 반발이 일었다. 최 대행은 회의 시작 후 모두발언을 통해서야 쌍특검에 대해선 거부권 행사 입장을 나타내고 재판관에 대해선 2명을 즉시 임명하겠다고 밝혔다.
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되자마자 참석자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이에 최 대행은 끝내 울먹이며 눈시울을 붉혔다고 한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정치적으로 중차대한 사안인데, 여야와 어떤 사전 협의가 있었느냐”고 묻자, 최 대행은 “혼자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김태규 방통위원장 대행이 “이처럼 중요한 결정을 국무위원들 의견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진행하는 것은 민주적 정당성을 결여한 처사”라고 지적하자, 최 대행은 “내가 월권한 거 맞다. 내가 사직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규 대행은 최 대행의 결정에 반발해 사직서를 제출했다.
당시 회의장에선 “한 총리도 내리지 못한 결정을 최 대행이 내릴 수 있느냐” “한 총리가 탄핵심판에서 승소해 돌아올 수 있다”는 의견도 나왔다고 한다. 최 대행은 고성이 나오며 논쟁이 격화되자 국무회의 종결을 선언하며 회의장을 떠났고, 이후 일부 국무위원과 만난 자리에서 눈물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도 마찬가지로 격분했다. ‘8인 헌재’ 가동으로 윤 대통령의 탄핵 시계가 빨라지면서 대통령실 참모진은 최 대행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사표를 낸 이들은 정진석 비서실장, 성태윤 정책실장, 신원식 국가안보실장, 장호진 외교안보특보와 수석비서관 전원으로, 헌법재판관 임명에 대한 항의의 뜻으로 해석된다. 이에 최 대행은 “지금 민생과 국정 안정에 모두 힘을 모아 매진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사표를 수리할 계획은 없다”고 맞섰다.
‘8인 체제’로 조기 대선 가능성 커져…4월 전에 결과 나올까
최 대행의 결단에 여야 반응도 심상치 않다. 양측 모두 겉으로는 최 대행에게 강하게 반발했지만 물밑에선 조기 대선 작업이 빨라진 분위기다. 헌법재판소가 8인 체제를 갖추고 탄핵심판 속도전에 나서면서 이르면 4월, 늦어도 6월 안엔 조기 대선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윤 대통령이 탄핵당할 경우, 차기 대선 판세를 휘어잡게 될 이재명 대표의 시간은 빨라지게 된다. 이에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탄핵 정국’을 벗어나 서둘러 ‘대선 정국’으로 들어서야 한다는 기류가 흐른다.
최 대행을 ‘배신자’로 몰고 있는 정부와 달리 국민의힘이 ‘최상목 흔들기’를 자중하는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해석된다. 최 대행을 비판했던 권성동 원내대표는 “(헌법재판관 임명은) 이미 결정 난 사안”이라며 “추가 대응할 계획이 전혀 없다”고 밝혔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도 최 대행의 결정에 대한 취재진 질문에 “경제도 안보도 힘든 상황에서 국정 안정에 최우선을 둘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내에선 대통령실의 집단 사의 표명을 두고 “무책임하게 비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민주당은 최 대행이 거부한 쌍특검에 대한 재의결을 추진하고, 헌재 ‘9인 완전체’ 확립을 위해 압박 수위를 높일 전망이다. 특히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임기가 오는 4월18일 만료되는 점이 변수다. 만약 이날까지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마무리되지 않고, 야당 추천 몫인 마은혁 후보자 임명도 불발되면 헌재는 다시 6인 체제로 돌아가게 된다. 이에 본회의 의사일정의 열쇠를 쥔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이목이 쏠리고 있다. 우 의장은 최 대행의 결정이 국회 고유의 헌법재판관 선출권을 침해했다고 보고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