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공간에 비치는 고대인의 마음”

건축 문명의 원류를 찾아가는 《빛나는 형태들의 노래》

2025-01-12     조철 북 칼럼니스트

“공부하고, 강의를 하고, 답사를 할수록 인류가 가진 보편 형태와 공간의 문화가 존재함을 느낀다. 끝없이 펼쳐진 수평 대지, 긴장감을 유발하는 경사판, 하늘 높이 오르는 고층 빌딩, 완전과 절대를 추구하는 구와 정육면체, 사람과 사회를 감싸안는 원과 타원, 꿈틀대는 생명 같은 비정형…. 이들은 인류의 건축과 공간 문화에서 무수히 반복해 나타난다.”

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에 재직 중인 김종진 교수는 깊고 아름다운 빛 속에서 삶과 공간과 자연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세월의 흔적이 자연스레 아로새겨지는 건축을 꿈꾼다. 그러한 건축이 내면을 울리고, 하나의 문화를 만들 수 있음을 믿으며 세계 곳곳의 문화권에서 공통으로 나타나는 형태를 추적했다. 자연현상과 종교, 현지 문화, 그로부터 영향받은 건축과 미술작품까지 탐구의 범주는 시공간과 분야를 넘나든다. 10년간의 답사와 치열한 연구, 상상과 연결 끝에 그는 자연현상으로부터 시작된 열 가지 원형의 단서를 찾았다. 그리고 김 교수는 이를 ‘빛나는형태’라 이름 붙였다.

빛나는 형태들의 노래│김종진 지음│효형출판 펴냄 338쪽│2만2000원

김 교수가 펴낸 《빛나는 형태들의 노래》는 고대인들이 자연현상으로부터 받은 영감을 통해 동서고금의 형태 문명으로 꽃피우는 과정을 하나의 흐름으로 엮어낸다. 강화도의 고인돌,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는 고대인이 웅장한 거대 구조물에 품었을 마음가짐을, 잭슨 폴록과 윌리엄 터너의 미술작품에서는 우주의 ‘기운생동’ 하는 에너지를 읽는다.

“먼 옛날의 인류는 자연에서 고유한 형태의 특성을 발견하고 영감을 얻었다. 그리고 원시 언어와 개념이 형성되었다. 이를 토대로 고대 형태 문화가 나타났다. 이후 중세, 근대를 거치며 새로운 문화가 쌓이고, 엮이고 다시 재탄생돼 현재의 형태 문명으로 발현했다.”

김 교수는 현대인들이 자연으로부터 시작된 형태의 특성을 간과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지적한다. 기술만능주의와 AI 시대가 만들어낸 눈앞의 이미지에 매몰돼 형태들의 서사를 등한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책의 주제 또한 형태의 실재 여부를 논하기보다는 우리가 감각하고, 지각하고, 경험하는 바로 우리 ‘안’의 형태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책을 덮으면 인류 문명이 만들어낸 건축과 예술, 사물, 가구, 미술을 떠올리게 되면서 이내 자연과 인류의 문명, 고대인과 지금의 우리가 형태의 흐름 속에 하나로 연결돼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예를 들어 눈앞에 하나의 기둥이 보인다고 치자. 이때 눈앞의 이미지는 핵심이 아니다. 김 교수는 자연현상 속에서 높이 치솟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위를 향한, 위가 주는 초월의 감정을 느끼고, 끝내 수직 기둥을 세워 올려낸 우리의 마음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인류가 동그란 자연 사물에서, 인체와 천체의 회전하고 순환하는 움직임에서 원의 원리와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