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적 한계 드러낸 공수처, ‘기회’를 ‘위기’로?
尹 내란죄 수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수사기관 혼선 文 정부의 졸속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출범’이 원인이란 지적도
12·3 비상계엄 사태로 탄핵소추 된 윤석열 대통령의 체포영장 집행에 나섰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1차 집행에 실패한 이후 비난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수사 의지 부족과 안일한 대응으로 혼란을 자초했다는 것이다. 뒤늦게 경찰의 협조를 받아 2차 집행에 나섰지만 벌써부터 “경찰에 사건 전체를 이첩하라” “특검이 수사를 맡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비등하고 있다.
윤 대통령 내란죄 수사를 놓고 검찰과 경찰, 그리고 공수처까지 세 기관의 대립과 반목이 계속되면서 국민은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수사 본질보다 오히려 수사기관 간 혼선이 더 부각되는 모습이다. 그 직접적 배경은 졸속으로 만들어진 수사권 조정의 여파라는 법조계 견해가 나온다. 내란죄 직접 수사권을 가진 경찰은 현행법상 검사의 지휘를 따르지 않게 됐는데, 일부 규정에서는 여전히 ‘지휘’라는 문구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옥상옥(屋上屋) 논란 속에서 출범한 공수처의 한정된 수사 인력 등 ‘약체’로 출발할 수밖에 없었던 태생적 한계도 한몫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강행했던 검경 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출범이 오히려 지금 더불어민주당의 발목을 잡는 형국이 된 셈이다.
검경 관계, ‘협력’과 ‘지휘’가 여전히 혼재
검경 수사권 조정의 핵심은 두 권력기관 간 관계성이다. 민주당은 2020년 검찰청법·형사소송법을 고치면서 검사와 사법경찰관(경무관·총경·경정·경감·경위)을 ‘협력하는 관계’로 못 박았다. 수사·공소 제기(기소)뿐 아니라 공소 유지에서도 두 기관은 협력해야 한다고 형사소송법에 명시했다. 경찰이 검사의 지휘를 따르는 하부기관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 때문에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 등 관련 법에서는 ‘지휘’라는 단어가 대부분 삭제됐다.
그러나 여전히 남아있는 규정도 있다. 구속영장 집행과 관련한 형사소송법 제81조 제1항이다. ‘구속영장은 검사의 지휘에 의해 사법경찰관리(사법경찰관과 경사·경장·순경과 같은 사법경찰리를 포함)가 집행한다”는 대목이다. 공수처가 경찰 국수본을 상대로 영장 집행을 위임하면서 ‘지휘’라는 표현을 쓴 것도 그래서다.
여기에 공수처는 형사소송법을 따를 수 있다는 공수처법까지 고려해 경찰 측에 영장 집행을 위임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수색영장 집행 만료일 하루 전인 1월5일의 일이다. 하지만 경찰 측의 거부로 6일 영장 집행은 결국 무산됐다. 법적 문제가 있는 공수처의 공문을 따를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검경 수사권 조정 당시 수사준칙에서 ‘검사의 구체적인 영장 지휘’ 규정이 삭제됐기 때문에 공수처의 영장 집행 지휘를 받을 수 없다는 취지였다. 형사소송법 제81조 제1항의 내용과 모순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공수처 수사검사는 처·차장을 포함해 25명 이내로 현행법상 제한됐다. 40명 이내로 한정되는 수사관까지 셈해도 100명을 넘지 못한다. 그나마 공수처가 정원을 채운 전례도 없다. 이재승 공수처 차장은 1월6일 브리핑에서 영장 집행 위임 문제와 관련해 “공수처 검사와 수사관 인력을 다 끌어모아 봐야 50명이고, 현장에 갈 수 있는 건 30명”이라며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고위공직자의 범죄를 수사하는 공수처가 내란죄 직접 수사권이 없다는 점도 난제다. 검찰 역시 수사권 조정 국면에서 직접 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대상이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서 2대 범죄(부패·경제)로 좁혀졌다. 다만 윤석열 정부 들어 시행령(대통령령)을 통해 직접 수사 범위가 일부 조정됐다. 그러나 검찰은 여전히 내란죄를 직접 수사할 수 없다.
그래서 12·3 비상계엄 사태 초반 공수처와 검찰, 경찰 국수본 등의 수사 권한이 계속 논란이 됐다. 윤 대통령 측이 “내란죄 직접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의 수사에 응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배경도 그것이다. 수사권 논란이 윤 대통령에게 방어 논리를 제공한 것이다.
검찰 한 관계자는 “수사권 조정 이후 현행법 등에서 ‘지휘’라는 단어는 대부분 삭제됐을 뿐 아니라 실무상 현실적으로도 불가하다”며 “영장 집행만을 위임한다는 공수처의 논리 역시 경찰로서는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내란죄 수사권 논란부터 공수처의 수사 인력 등과 관련해서는 “충분한 고려 없이 입법을 강행한 결과가 헌정사상 첫 현직 대통령의 내란 혐의라는 사태에서 심각한 문제점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했다.
“공수처, 기관 취지 못 살린다면 폐지론 직면할 것”
이런 문제점으로 인한 비난의 화살은 현재 공수처가 다 맞고 있는 모양새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윤 대통령에 대한 1차 체포영장 집행이 실패한 때부터 공수처 내부는 사기가 크게 저하된 모습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만약 특검이 출범해 사건이 그냥 특검으로 가게 되면 ‘조직 필요성’에 의구심을 제기하는 분이 많아질 것으로 본다. (공수처가) 최선을 다해 수사하겠지만, ‘경찰 이첩’ ‘특검’에 대한 언급이 계속 나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 법률대리인단은 공수처의 약점을 문제 삼아 맹폭을 가하고 있다. 영장 집행을 경찰에 일임한 것을 ‘하청’이라고 표현하며 “불법행위”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관할이 없는 서울서부지법에 기소하거나 영장이 청구된 것은 수용할 수 없다”며 “서울중앙지법에 청구할 경우 응하겠다”고 했다.
윤 대통령 측은 공수처 체포영장 집행의 정당성 문제도 지적했다. 윤 대통령 측 윤갑근 변호사는 “대통령을 지금 체포하겠다는 목적은 조사를 위한 것인데, 제 검사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는 다른 증거가 다 확보가 된 후 마지막으로 피의자에게 확인하는 단계”라며 “그럴 바에야 기소 절차를 밟고, 재판에 응하겠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 대통령을 소환조사해 확보할 수 있는 증거는 없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 측이 사전구속영장과 기소에 대해선 직접 출석 의지를 내비침으로써, 추후에 있을 2차 체포영장도 거부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형사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서초동 한 로펌의 변호사는 “윤 대통령이 공수처장을 임명했기에 오동운 처장 입장에선 임명권자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법원으로부터 적법하게 영장을 발부받았는데도 집행을 못 한다는 것은 오 처장 본인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라며 “체포영장 집행뿐만 아니라, 향후 수사 과정 전반에서 주도권을 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공수처는 있으나 마나 한 수사기관으로 전락할 것”이라고 했다.
법조계에선 법률상 공수처에 체포영장 청구권을 준 이유는 사건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같이 부여한 것이라며, 1차 체포영장을 발부받았을 때 집행하는 일까지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남언호 법률사무소 빈센트 변호사는 “경찰에 영장 집행만 일임하려고 했던 것은 단편적인 생각을 한 것”이라며 “오 처장이 판사 출신이더라도, 수사기관장으로 임명됐다면 수사기관 특성에 맞게 지휘를 하고, 판단하는 것이 맞다”고 했다.
공수처가 기관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원칙상 내란죄 수사에 대한 수사권은 공수처가 갖고 있지 않기에 경찰이 진행하는 게 맞다는 것이다. 형사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한 변호사는 “수사에 자신이 없다면 지금이라도 경찰에 사건 전체를 이첩하는 것이 적절하다”며 ”수사권을 쥔 채 무능함을 드러낼 경우 공수처 폐지론에 대한 여론만 커질 것”이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