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볼썽사나운 ‘법 기술 경연대회’

2025-01-10     김재태 편집위원

지난해 막바지에 우리는 세 개의 놀라운 통보를 받아들었다. 그중 하나는 희극이었고, 나머지 둘은 끔찍한 비극이었다. 희극의 주인공인 한강 작가는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한국민의 긍지를 한껏 끌어올렸고, 2년7개월간 군림하듯 존재하면서 ‘대한민국 리스크’ 자체가 되어왔던 대통령의 느닷없었던 비상계엄 선포, 그리고 179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는 엄청난 충격으로 국민의 마음을 무너뜨렸다. 

계엄 참극의 여진은 해가 바뀌어도 여전히 거세다. 헌법재판 심리와 내란죄 수사가 지체되는 사이, 그 불안과 분란을 틈타 기기묘묘한 ‘법 기술’까지 천방지축 활개를 치고 있다. 아무런 염치도 없이 적합성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국민들은 이해할 수 없는 법률 용어를 들먹이며 서로 법 지식 자랑하기에 바쁘다. 정치권에서는 국민의힘의 판검사 출신 원내대표와 의원들이 그 무대의 앞자리에 섰다. 그들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편파적이며 불공정하고, 공수처의 윤 대통령 체포영장 집행은 불법·무효”라고 주장하며 공방전에 적극 참여했다. 이쯤 되면 당대표의 사법 리스크 방어에 주력하는 더불어민주당이 ‘이재명 로펌’이란 평을 듣는 것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지키기에 보란 듯이 팔을 걷어붙인 국민의힘이 ‘윤석열 로펌’이라는 비판을 받는 게 전혀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탄핵소추된 윤석열 대통령(오른쪽)의 탄핵 여부를 결정할 헌법재판소 전경 ⓒ연합뉴스·시사저널 최준필

현란한 ‘법 기술 경연대회’를 벌이며 ‘법·잘·알’ 묘기를 뽐내는 이는 당 지도부가 법 전문가들로 채워진 여야의 정치인들만이 아니다. 국민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고도 태연자약 집요하게 역공을 펼치는 윤석열 대통령 측의 법 대응 또한 갈수록 태산이다. 윤 대통령의 변호인 측은 헌재의 서류 송달 자체가 부적법하다며 수십 차례 수령을 거부한 데 이어 헌재의 탄핵심판에 대해 “대통령의 통치행위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헌법 원칙에 어긋나기 때문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공수처의 체포·수색영장에 대해서도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의 영장은 불법”이라며 법원에 이의신청을 했다가 기각되자 ‘대법원 재항고’를 준비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 한술 더 떠 “체포영장이 아닌 구속영장에는 응하겠다”는 등 ‘영장 쇼핑’ 시도도 서슴지 않는다. 게다가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용현 전 국방장관까지 옥중에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이재명 민주당 대표 등을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고발하고, 헌법재판관마저 직권남용 등의 이유로 고발하는 등 적반하장 식의 릴레이 고발을 마구잡이로 시현하는 지경이다.

이 같은 법 기술 대결이 무차별적으로 펼쳐지는 데는 무엇보다 윤 대통령의 책임이 크다. 법치주의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던 그가 법질서를 앞장서서 교란하고, 되지도 않은 법을 방패 삼아 ‘닥치고 소송’으로 버티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고 대세가 달라지지도 않을 것이다. 자기네 멋대로 이름 붙인 ‘고립된 약자’가 아니라 ‘편협한 세계에 고립된 비겁자’가 된 윤 대통령의 행동은 독일 법학자 게오르크 옐리네크가 제시한 ‘법은 최소한의 도덕’이란 명제 속 도덕·도리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의 명령으로 계엄 사태에 가담했던 군 지휘관들이 하급자들은 다만 명령에 따랐을 뿐, 잘못이 없다며 선처를 부탁한 모습과도 크게 대비된다. 그는 자신의 지시를 따라 내란 범법자가 되어버린 수하들에 대해 한마디 사과나 배려의 말도 없이 나라와 국민이야 어찌 되든 막무가내 저항으로 일관할 뿐이다. 그가 그렇게 ‘오늘만 사는’ 무법자가 되어 버티는 그 하루는 국가와 국민에게 금쪽같은 1년 혹은 10년이 될 수 있는 시간인데도 말이다. 

김재태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