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정주의 경제터치] 가업상속세, 혁신의 날개인가 족쇄인가
상속세 인하는 일자리와 혁신 늘리지만 업종 변경 규제는 그 효과를 크게 잠식
[라정주 (재)파이터치연구원장] 비상계엄사태로 온 나라가 어수선한 상황 하에서 지난해말 국회 본회에서 상속세 및 증여세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부결됐다. 개정안은 과세표준이 30억원을 초과할 때 적용하던 최고세율 50%를 40%로 낮추고, 최대주주 주식할증제도 폐지를 골자로 하는 내용이었다. 최대주주 주식할증제도는 매출액이 5000억원을 초과하는 중견기업과 대기업의 최대주주가 보유하는 주식에 대해 20%를 할증해 평가하는 제도를 말한다.
당시 개정안이 부결된 이유는 야당에서 이를 ‘부자감세’로 규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업상속세를 인하할때 일자리가 증가한다는 긍정적 연구결과가 있다. 재단법인 파이터치연구원이 2023년 세계적인 학술지인 ‘퍼시픽 이코노믹 리뷰(Pacific Economic Review)’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가업상속세율 50% 인하 시 일자리가 0.13% 증가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일자리는 각 개인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로 ‘부자감세’와 같은 이념적 문제보다 절실한 사안이다.
가업상속세 감면에 대한 찬반을 논할 때 중요하게 고려할 사항이 있다. 바로 혁신이다. 직관적으로 생각하기에 가업상속세와 혁신은 별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가업상속세와 혁신은 반비례 관계를 갖는다. 즉, 가업상속세를 인하하면, 혁신기업 또는 혁신투자가 증가한다. 가업상속세를 줄여주면 자본 한 단위를 자식에게 더 물려줌으로써 얻는 한계효용이 증가하기 때문에 비혁신기업은 자본을 더 늘릴 유인이 생기게 마련이다. 비혁신기업의 자본이 증가하면, 생산량이 늘어 이윤이 증가하고 비혁신기업의 이윤이 늘면, 혁신기업이 되기 위한 진입장벽을 넘는 비혁신기업수도 증가하게 된다. 즉, 혁신기업수가 늘어나는 셈이다. 혁신기업은 비혁신기업과 달리 혁신투자를 많이 하기 때문에 총혁신투자도 증가하는 법이다.
가업상속세와 혁신 간의 이런 관계는 국제학술지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공인됐다. 파이터치 연구원이 올해 초 세계적인 학술지인 ‘이머징 마켓 파이낸스 및 트레이드(Emerging Markets Finance and Trade)’에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을 경우 혁신기업은 2.67%, 총혁신투자는 2.58%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가업상속공제 혜택이란 기업을 경영하던 부모의 사망으로 자식이 해당기업을 승계할 때 일정요건을 충족하면 경영기간에 따라 상속세를 인하해주는 제도를 말한다.
문제는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으면, 후계자가 업종을 변경할 수 없는 규제에 봉착하게 된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 15조 11항에 따르면,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을 경우 후계자는 한국표준산업분류의 대분류 간 업종변경을 할 수 없다. 예를 들면,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제조업 회사를 정보통신업 회사로 변경할 수 없는 것이다. 이 규제로 인해 가업상속세 인하의 긍정적 효과가 크게 희석될 것으로 분석된다. 전술한 학술지 ‘이머징 마켓 파이낸스 및 트레이드’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가업상속공제 혜택을 받으면서 업종변경제한규제가 추가될 경우 일자리 증가율은 27.5%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혁신기업이 오히려 1.66% 감소하고, 총혁신투자는 증가율이 대폭 감소해 0.13% 밖에 늘지 않는다. 정책적 시사점이 어디에 모아져야 할지 주목되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