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맥경화는 단순히 혈관이 굳은 것이 아니다 [오윤환의 느낌표 건강]
죽상경화와 구분해야 정확한 치료 가능해
‘동맥경화’라고 하면 혈관이 굳어진 것으로 이해하기 쉽다. 게다가 ‘죽상경화’와도 혼용된다. 이 두 가지는 조금 다른 개념이며 치료와 예후도 다르다. 동맥경화와 죽상경화를 혼동하면 진단과 치료에서 차질이 빚어진다.
동맥경화는 동맥벽 전체가 두꺼워지고 탄성을 잃어 경직되는 모든 과정을 의미하는 넓은 범주의 질환 개념이다. 이 동맥경화의 하위 형태 중 하나가 죽상경화다. 이는 주로 대형 또는 중형 동맥에 지질이 형성된 상태다.
죽상경화는 동맥 내막에 저밀도 지단백(LDL) 콜레스테롤과 면역세포가 축적돼 죽상의 플라크를 형성하는 과정이다. 죽상경화가 심해지면 관상동맥(심근경색, 협심증), 뇌혈관(뇌졸중), 말초동맥(간헐적 파행) 등의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어 치명률이 높다. 죽상경화는 동맥경화 중에서도 가장 광범위하게 발생한다. 따라서 동맥경화는 혈관이 두꺼워지고 딱딱해지는 큰 범주에 해당하고, 죽상경화는 그중에서도 혈관 내막에 지질 플라크가 생기는 대표적이고 위험도가 높은 형태다.
일반인이 이 두 가지를 구별해야 할 필요가 있을까? 구분하지 않고 혼동하면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지혈증만 조절하면 모든 동맥경화를 호전시킬 수 있다고 오인할 수 있다. 죽상경화는 LDL 콜레스테롤 조절이 매우 중요하지만, 세동맥경화(소형 동맥벽이 두꺼워짐)나 중막 석회화(동맥 내 중막에 칼슘이 침착됨)는 고혈압, 대사질환(당뇨), 칼슘·인 대사 이상 등 다른 요인이 더 큰 비중을 차지한다.
방심하다 치명적 합병증 초래할 수도
또한 ‘단순 동맥경화’라고 안심하고 정밀 검사를 미루다 실제로는 죽상경화가 빠르게 진행되어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같은 치명적 합병증을 초래할 가능성이 커질 수도 있다. 반대로, 비교적 예후가 경미한 세동맥경화나 중막 석회화 소견만으로도 ‘죽상경화가 심각하다’고 여겨 지나친 불안감을 느끼기도 한다. 이는 과도한 검사나 치료로 이어져 환자나 의료 시스템에 부담을 줄 수 있다.
병원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동맥경화나 죽상경화를 구분한다. ABI라는 검사는 발목과 팔의 혈압을 비교해 말초동맥질환 여부와 심각도를 파악한다. 동맥경직도는 보통 맥파전달속도(PWV) 검사로 확인한다. 혈관이 딱딱할수록 맥파의 전달 속도가 빨라진다. 또 수축기와 이완기 혈압 차이(맥압)가 벌어지면 동맥 탄성이 감소했다는 신호다. 경동맥 초음파 검사는 경동맥 내중막 두께를 측정해 동맥경화 진행 정도와 위험도를 예측한다. 죽상경화성 플라크가 관찰되면, 심뇌혈관질환 위험이 높아졌음을 시사한다. 그 밖에도 혈관조영술이나 CT(컴퓨터단층촬영), MRI(자기공명영상) 같은 영상 검사로 혈관 내강의 협착 정도, 플라크 분포와 특성, 석회화 유무 등을 확인하기도 한다.
동맥경화와 죽상경화는 이름이 비슷해 혼동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병리 기전과 합병증 유발 양상에 차이가 있다. 단순히 ‘동맥이 굳었다’라고만 인식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개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조기 진단과 개인 맞춤형 치료 및 예방이다. 고혈압·당뇨·고지혈증 같은 심혈관 위험인자를 가진 경우에는 정기검진을 통해 자신이 겪고 있는 동맥경화가 어떠한 형태인지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생활습관 교정 및 약물치료를 이어 나가야 한다. 또 죽상경화는 언제든 치명적 심혈관·뇌혈관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의심되면 적극적인 검사와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여기에는 특히 환자와 의료진 간 정확한 소통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