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과 충동 조절 능력 부족한 사이코패스에 희생된 두 사람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택시기사, 접촉사고 합의금 받으러 집에 동행했다 참변 노래방 도우미 여성, 돈 뜯기고 피살까지
우연히 두 건의 살인이 한꺼번에 드러났다. 2022년 12월25일 오전 11시21분쯤 112에 A씨의 다급한 신고 전화가 걸려온다. 그는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남자친구 집 옷장 안에 죽은 사람이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A씨가 말한 경기도 파주시의 한 아파트로 출동했다. 옷장 안에는 한 중년 남성이 참혹한 모습으로 숨져 있었다. 신원조회 결과 당일 실종신고가 접수돼 있던 택시기사 B씨(60)였다. 경찰은 아파트 인근을 수색해 1km 정도 떨어진 곳에서 피해자의 택시를 발견했다. 신고자인 A씨는 경찰에 “고양이 사료를 찾기 위해 집을 뒤지다 문고리가 쇼핑백 끈으로 묶인 옷장을 열었더니 그 안에 시신이 있었다”고 말했다.
피해자 시신 옷장에 넣고 가족과 문자 대화
경찰은 A씨의 남자친구인 이기영(31)을 유력한 살인용의자로 특정했다. 이씨는 모르는 사람들에게 시비를 걸다 손을 다쳐 병원에서 치료받다가 12월26일 오후에 체포됐다.
경찰에 따르면 이씨는 그해 12월20일 경기도 고양시 소재 음식점에서 A씨와 그의 부모를 만나 술을 마셨다. 주변의 만류에도 이씨는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음주운전을 하다 오후 10시5분쯤 택시와 접촉사고를 낸다. 택시기사 B씨가 보험사에 연락하려고 하자 이씨는 합의금과 수리비를 많이 줄 테니 자신의 집으로 가자고 유인했다.
그가 사는 아파트 엘리베이터에는 이기영과 택시기사가 함께 있는 모습이 찍혀 있었다. B씨가 아파트 안으로 들어오자 이씨는 “합의금을 줄 수 없다”며 태도를 돌변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놀란 B씨가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자 이씨는 B씨를 넘어뜨린 뒤 집에 있던 둔기로 내리쳐 살해했다. 이씨는 시신 처리가 여의치 않자 자신의 옷장 속에 넣고 이불로 덮어 은폐한다. B씨를 살해한 후 이씨는 택시를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시킨 후 블랙박스 메모리카드를 삭제하는 등 증거인멸을 시도했다.
범행 후 B씨 가족이 피해자의 휴대전화로 연락해 오자 마치 B씨가 살아있는 것처럼 행동했다. 목소리가 탄로 날 것을 우려해 전화에는 응답하지 않았다. 대신 문자메시지가 오면 피해자인 척 “교통사고 처리 중이니 연락하지 마라” 등 무려 132회에 걸쳐 거짓 문자를 보냈다. 평상시 쓰던 말투가 아닌 데다 전화를 받지 않는 것을 수상히 여긴 B씨의 가족은 12월25일 새벽 경찰서를 찾아가 “아버지가 6일째 집에 들어오지 않고, 이상한 문자만 보낸다”며 신고했다.
이기영은 경찰에서 “합의금 관련 대화를 하다가 시비가 붙어 홧김에 살해했다”고 진술했지만 정황상 계획범행에 무게가 실렸다. 당시 이씨의 전재산은 현금 45만원과 통장 잔액 17만원을 포함해 62만원이 전부였다. B씨를 살해한 후에는 그의 신용카드를 이용해 636만원에 달하는 커플링을 사고, 고급 술집과 호텔 등을 드나들며 769만원을 사용했다. 또 B씨의 수첩에 그려져 있던 휴대전화 패턴으로 휴대전화 잠금장치를 풀어 비대면 방식으로 수천만원의 대출도 받았다. 불과 5일 사이에 B씨에게서 편취한 금액이 5557만원이었다.
이씨는 처음부터 합의금이 없었지만 돈을 줄 것처럼 B씨를 집으로 유인했던 것이다. 또한 이씨는 여러 번의 음주운전으로 이미 면허가 취소된 상태였다. 경찰은 이씨가 음주운전 사실을 감추고 피해자의 돈을 편취하기 위해 계획적으로 살해한 것으로 판단했다.
이기영의 범행은 이것뿐만이 아니었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이씨가 살고 있던 아파트가 다른 사람 명의인 것으로 드러난다. 실제 소유자는 이기영보다 19세 연상인 전 여자친구이자 동거녀였던 우아무개씨(50)였다.
불륜녀 시신 유기 후 집 차지하고 재산 탕진
그런데 우씨는 같은 해 8월3일부터 행방불명 상태였고, 생활반응이 없었다. 반면 우씨가 사라진 후 이기영이 그의 신용카드를 사용한 흔적이 나왔다. 우씨가 몇 달째 연락이 끊겼어도 실종신고가 되지 않았던 것은 연락하고 지내는 가족이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은 우씨도 이기영이 살해했을 것으로 판단하고 그를 추궁해 자백을 받아냈다. 시신은 캠핑용 루프백에 담아 파주시 교하동 일대 하천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이씨를 현장으로 데려가 매장 위치를 확인하고 그가 말한 지점을 집중적으로 수색했다. 잠수부를 동원해 한강 하구까지 수색범위를 넓혀가며 찾았지만 시신은 나오지 않았다. 얼마 후 이기영은 “경찰에게 주는 마지막 선물”이라며 기존의 진술을 바꿔 시신을 하천이 아닌 파주 공릉천변에 묻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굴삭기까지 동원했으나 끝내 시신을 찾지 못했다.
이씨와 우씨는 2018년 2월 유흥업소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노래방 도우미였던 우씨는 할아버지가 건물 여러 채를 가진 건물주라거나 자전거 관련 매장을 운영하는 자산가라고 떠벌리는 이씨에게 속아 호감을 가졌다. 당시 유부남이었던 이씨는 3년 동안 우씨와 불륜을 이어오다 아내에게 들킨 후 집을 나온다. 마땅히 갈 곳이 없던 그는 2021년 12월 우씨 아파트에서 동거에 들어갔다.
두 달 후 아내와 이혼한 이씨는 이때부터 본색을 드러낸다. 우씨에게 3400만원 정도를 대출받게 하고, 그중 800만원을 이체받아 자신이 사용했다. 이 돈을 유흥비와 생활비로 쓰는 등 우씨에게 경제적으로 빌붙어 살았다. 이씨를 ‘돈 많은 남자’로 알았던 우씨는 변변한 직업이 없는 무일푼 신세라는 것을 알자 배신감을 느낀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자주 다툼을 벌였다. 이씨는 카드 연체대금 독촉으로 압박을 받자 우씨의 재산을 빼앗기 위해 살해 계획을 세운다. 인터넷에서 ‘농약’ ‘제초제 먹었을 때’ 등을 검색하기도 했다.
독극물 구입이 쉽지 않자 집 안방에서 둔기로 우씨의 머리와 몸을 10여 차례 내리쳐 살해한다. 시신 유기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파주 변사체’ ‘공릉천 물흐름 방향’ 등을 검색하고, 다음 날 시신을 유기했다. 범행 후 이기영은 우씨의 아파트에 그대로 살며 돈을 빼내 사용했다. 먼저 우씨의 휴대전화 유심을 빼 자신의 휴대전화에 끼워넣어 잠금장치를 해제했다.
인터넷 뱅킹에 접속해 4000여만원을 자신의 계좌로 이체하고, 우씨 신용카드로 4193만원을 사용했다. 우씨의 예금을 모두 탕진하고, 그의 신용카드를 한도 초과 때까지 사용한 후에는 아파트까지 처분하려고 시도했다. 우씨 명의의 매매계약서를 위조해 이를 담보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1000만원을 빌리기도 했다.
이씨는 우씨를 살해하고 한 달쯤 지나자 새 여자친구인 A씨를 만난다. 우씨의 옷과 화장품 등은 그대로 두고 생활했다. A씨가 “웬 여자 물건이 있느냐”고 따지자 자신의 딸 물건이라는 등 거짓으로 둘러댔다. A씨도 이씨의 먹잇감이 됐다. 이씨는 A씨 명의의 신용카드를 사용하면서 카드대금을 연체시켜 경제적인 손해를 끼쳤다.
자기중심성과 반사회성…신상 공개 결정
경찰은 두 사람을 잔혹하게 살해한 이기영에 대해 신상 공개를 결정했다. 이씨에 대한 사이코패스(반사회적 인격장애) 검사도 실시했다. 경찰에서는 ‘진단이 불가능하다’고 나왔으나 검찰 검사 결과 ‘사이코패스’로 분류됐다. 이기영은 자기중심성과 반사회성 특징을 보이고 자신의 이득 앞에선 감정과 충동 조절 능력이 부족한 성향을 지닌 것으로 나타났다.
검찰은 이기영을 강도살인 및 특정범죄가중처벌에 관한 법률상 보복살인 등의 혐의를 적용해 구속 기소했다. 1심은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해 이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하고,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전자발찌) 부착을 명령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은 살해 행위와 그 이후의 범행까지도 철저히 계획한 다음 스스럼없이 계획대로 했다”면서 “피해자들의 사체를 유기한 후 일말의 양심의 가책 없이 피해자의 돈을 이용해 자신의 경제적 욕구를 실현하며 아무렇지 않게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등 인면수심에 대단히 잔혹한 태도를 보였다”고 판시했다.
이씨는 항소를 포기했으나 검찰은 이씨에게 사형을 선고해야 한다며 항소했다. 2심에서 재판부는 “인간의 생명 자체를 박탈하는 사형 선고는 극히 예외적이어야 한다”며 검찰의 항소를 기각하고 원심 형량을 확정했다.
■허세 부리거나 과시욕 강하고 여성에게 빌붙어 생활
이기영은 경기도 파주에서 1남1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학창 시절에는 평범하게 지냈으나 성인이 된 이후에 엇나가기 시작했다. 대학에 입학했다가 학교생활 부적응으로 1년 만에 학업을 포기했다.
이씨는 이때부터 자신을 “집에 돈이 많은 파주 유지”라고 떠벌리고 다녔다. 전문하사(임기제부사관)로 지원해 군에서 복무했으나 음주운전을 하다 단속하던 경찰관을 매달고 2km를 도주하고, 이를 제지하는 경찰관의 손을 물어뜯어 상처를 입혔다. 이 사건으로 그는 징역 1년6개월을 선고받고 육군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이후에도 음주운전을 하다 적발되는 등 관련 전과가 네 번이나 있다.
군에서 불명예 전역한 이후에는 특별한 직업 없이 일용직을 전전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자신을 다수의 건물을 보유한 건물주의 손자, 건설업체 대표의 아들, 성공한 CEO 등으로 포장하는 등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했다. 허세 부리기를 좋아해 지인들에게 현금 다발을 건네거나, 고깃집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고기를 사주는 등 과시욕이 강했다.
2018년에는 한 여성과 결혼했다가 노래방 도우미였던 우씨와의 불륜을 들키면서 이혼했다. 자녀는 없다. 이후에도 계속해서 다른 여성을 만나면서 경제적인 숙주로 삼아 생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