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 시리즈’ 장시원 PD “심심함 해결 위해 모르는 세계 탐한다”

넷플릭스 《최강럭비: 죽거나 승리하거나》로 돌아와

2025-01-19     하은정 우먼센스 대중문화 전문기자

《최강야구》 《강철부대》 《도시어부》 등 그동안 한국 예능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었던 소재를 다룬 장시원 PD가 돌아왔다. 신선한 소재에 진정성 있는 스토리를 더해 시청자들을 사로잡았던 그가 이번에는 럭비를 선택했다. 

넷플릭스 《최강럭비: 죽거나 승리하거나》는 승리의 영광을 위해 온몸을 던지며 필사의 전진을 이어가는 럭비 선수들의 진짜 승부를 보여주는 스포츠 서바이벌 예능이다. 대한민국 럭비 선수들의 치열하고 처절한 전투를 담아냈다. 장시원 PD는 “럭비는 정말 거친 스포츠”라면서 “전진해야만 이기는 스포츠이고 두려워도 정면승부를 해야 하는 스포츠, 그게 럭비만이 가진 매력이다. 항상 마지막인 것처럼 모든 걸 던지는 럭비라는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전했다.

이어 “현장에서 들리는 선수들의 뼈와 뼈가 부딪히는 소리, 100kg 거구의 선수들이 80분 동안 질주하며 내쉬는 거친 호흡들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싶어 새로운 장비를 만들고 새로운 촬영 시스템을 구축해야 했다”며 기획부터 제작까지 1년6개월이라는 긴 시간을 쏟아부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했다.

럭비의 내면까지 보여주는 사상 첫 럭비 예능을 만들기 위해 제작진은 경기용 카메라 40대, 거치용 카메라 100대 등 럭비 중계 사상 최다인 140대의 카메라를 투입했다. 또한 생생한 현장 오디오를 위해 초소형 고기능 특수 오디오를 제작했다. 무엇보다도 실제 참가한 7개 팀 약 200명 선수 체형에 맞게 각각 장비를 만들어 럭비라는 스포츠의 매력을 제대로 현장감 있게 전달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후문이다. 서울 종로의 한 카페에서 장시원 PD를 직접 만났다.

ⓒ넷플릭스 제공

《최강럭비》가 공개된 이후 주변 반응은 어떤가.

“밤에 문자메시지가 많이 온다. 이수근, 김준현씨가 재미있게 보고 있다고 연락해 왔다. 냉정한 지인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줘서 기분이 좋다.”

왜 럭비였나.

“《최강야구》 시즌1이 끝나고 우연히 3일 정도 시간이 비어 일본으로 여행을 떠났다. 설원 노천탕에 들어가는 걸 너무 하고 싶어서 간 여행이었다. 한데 설원을 보면서 순간적으로 중세시대에 피를 흘리며 싸우는 전투의 색감이 떠올랐다. 피가 설원에 뿌려지는 그림 말이다. 그걸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 생각했는데 럭비였다.”

평소 럭비를 좋아했나.

“전혀 인과관계가 없다. 럭비를 한 번도 본 적 없다. 그래서 스태프들과 일단 가서 보자 싶었다. 당시 경기장에 상당수 사람이 있었고, 럭비를 난생처음 보는데 충격적이었다. 선수들 모두 이 경기가 마지막 경기인 것처럼 몸을 던지더라. 제가 본 그 경기에서 5명이 실려 나갔다. ‘도대체 이 사람들이 왜 저러고 있는 거지?’ ‘이 사람들 뭐지?’ ‘돈을 많이 버나?’ 의문이 들더라. 한데 알다시피 럭비는 비인기 종목이다. 대부분 인기 스포츠는 프로화가 돼 있어 몸값이 정해지고 상금이 있다. 한데 럭비는 그렇지 않다. 그 모습이 순수하게 느껴졌다. 돈을 떠나서 오늘 경기가 마지막인 것처럼 몸으로 ‘때려박는’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들에겐 이게 당연했다. 뼈끼리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고 피를 흘리고 실려 가면 경기는 멈춰야 하는데, 계속되더라. 이들의 세계는 그랬다. 그 신선함과 함께, 무엇보다도 럭비라는 경기 자체가 재미있었다.”

지금 언급한 것 외에 럭비의 매력이 뭐였나.

“점수 차가 점점 벌어지면 지는 팀은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한데 그것과는 상관없이 한 번 더 때려박더라. 남자의 ‘가오’라고 해야 하나? 아무리 점수 차가 많이 나도 쪽팔리게 들어가지 말자 하는 모습이 고스란히 전해지더라. 남자끼리 싸우면 맞는 순간 주눅이 든다. 한데 주눅 따위가 없더라. 점수 차와 상관없이 ‘우리 팀을 얕잡아봐?’ 하는 몸짓이었다. 울컥하는 것들이 있더라. 처음에 ‘왜 저러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들었는데 경기를 보면 볼수록 이해되는 부분이 있었다.”

아무래도 비인기 종목이다 보니 ‘럭비’를 소재로 선택했을 때 주변 만류나 넥플릭스라는 플랫폼을 설득하는 과정은 없었나.

“스태프들과 같이 경기 관람을 갔을 때 모두 같은 감정을 느꼈다. 제작진들이 공부하면 할수록 럭비에 깊숙이 빠져들었다. 그리고 넷플릭스 측을 설득하는 과정도 없었다. 순조롭게 진행됐다.”

사운드가 섬세하다.

“아까 언급했다시피 현장에서 뼈 부딪히는 소리가 심심치 않게 나더라. 그 섬세한 소리들을 담고 싶었다. 부상의 위험이 있어 목 뒤에 몸에 맞게 개인 마이크를 제작해 부착했다. 여러 과정의 작업들을 통해 현장의 소리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사실 그 부분이 제일 힘들었다. 때에 따라서는 뼈 부딪히는 소리를 키우는 작업도 했다. 그 소리를 현장에서 들으면 소름이 돋는다. 그림이 충격적이기보다는 소리가 충격적이다.”

해보지 않았던 카테고리다. 연출자로서 두려움은 없었나.

“뭘 하든 두렵긴 마찬가지다. 《최강야구》 할 때도 똑같았다. 야구 가지고 되겠어? 낚시 가지고 되겠어? 그런 말을 들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두려움이 커진다. 부정적인 요소가 많이 떠오르면 결국 도전하지 않게 된다. 그럴 때면, 첫 감정을 가져가려고 노력한다.”

소재에 대한 어려움은 없었나.

“룰이 많다. 그리고 어렵다. 그래서 시청자들을 최소한만 알게 하고 보게 하자는 생각을 했다. ‘그냥’ 볼 수 있게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많은 걸 알지 않아도 보게 만드는 것에 중점을 뒀다.”

낚시를 비롯해 럭비도 마찬가지다. 비인기 종목을 다루는 ‘혁신가’ 같은 느낌이다.

“저는 ‘심심함’을 많이 느낀다. 심심함을 해결하기 위해 제가 모르는 세계를 탐한다. 살면서 낚시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고 관심도 없고 고기도 싫어한다. 그래서 궁금했다. 그들의 세계가 뭘까? 낚시인들은 고기 사이즈 1cm를 가지고 엄청 싸운다. 그들에게는 진심인 거다. 그런 모습을 만나면 재미있다. 《강철부대》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지는 건 있을 수 없다’는 특수부대 친구들의 진심이 궁금했다. 《최강야구》도 그랬다. 야구계 레전드의 세계가 궁금했고, 영건들의 세계가 궁금했다. 그게 시작이다.”

《최강럭비》 포스터 ⓒ넷플릭스 제공

연출하는 프로그램이 대체로 마초적이기도 하다.

“말랑한 연애 프로도 하고 싶다. ‘강철연애’ ‘최강연애’ 는 어떤가. 아, ‘도시연애’가 제일 낫겠다. 하하.”

남자들의 거친 스포츠여서 예상치 못한 비속어들이 꽤 나온다.

“몸이 부딪히면 감정선이 극한으로 올라온다. 자연스럽게 자기도 모르게 나오는 것들이 있다. 그것도 하나의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뼈가 골절되어 나가는데 욕이 나오는 건 당연하지 않나.”

《최강야구》에 이어 정용검 아나운서가 이번에도 중계를 맡았다.

“개인적 친분 때문에 다시 섭외한 건 아니다. 《최강야구》 이후에 정 아나운서가 회사를 퇴사했는데 그것 때문에 미안해서 하는 것도 아니다. 그를 섭외한 건, 몰입감 때문이다. 정용검 아나운서는 본인이 이 경기에 빠진다. 그걸 바라보는 사람도 거기에 빠져들게끔 만드는 힘이 있다. 프로이면서도, 울컥거리거나 만들어내지 않은 아마추어리즘도 공존한다. 그게 몰입이다. 몰입 면에서는 제가 아는 아나운서 중에서는 첫 번째다.”

다음 기획도 궁금하다.

“남자 3부작 《도시어부》 《강철부대》 《최강야구》를 했고, 다시 ‘최강’ 3부작이 시작됐다. 고민을 하고 있는데, 분명한 건 혁신이 되는 것들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물론 실패할 수도 있다. 두려움도 있다. 저라고 언제까지 잘되겠나. 한데 제가 믿는 바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이 많아지면 안 된다. 《도시어부》도 애초에 부정적인 말을 많이 들어서 집에 가면 자괴감에 빠졌던 적이 있다. 바다도 보기 전에 실패한 사람 같았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결국 자신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제게 기회가 언제까지 주어질지 모르지만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도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