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후 40일…‘尹 vs 국민’에서 ‘이재명 vs 反이재명’으로

尹 체포로 권력의 추는 한남동에서 여의도로, 민심도 ‘조기 대선’ 국면으로 빨려들어 당정 지지율 40%대 회복 이면엔 ‘대통령 이재명’에 대한 ‘반대 여론 결집’ 이재명 사법 리스크에도 잣대 엄격해져 ‘계엄 옹호’ 대선후보? 與의 딜레마

2025-01-17     강윤서 기자

12·3 비상계엄 사태 후 40여 일이 지났다. 그사이 ‘민심’에도 새바람이 불었다. ‘여의도 대통령’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불안감이 수면 위로 드러나면서다. 계엄-탄핵 정국이 초유의 현직 대통령 체포로 인해 조기 대선 국면으로 넘어가면서 이제 여론은 본격적으로 차기 대권주자 ‘1위’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기존에 정국을 지배하던 ‘윤석열 대 국민’ 구도도 빠르게 ‘이재명 대 반(反)이재명’으로 바뀌었다. 

‘계엄-탄핵-탄핵-체포’. 지난해 12월3일 ‘계엄의 밤’ 이후 매주 ‘헌정사상 최초’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정국에 체포라는 방점이 찍혔다. 윤석열 대통령은 1월15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체포돼 정부과천청사에서 조사를 받은 뒤 서울구치소에 구금됐다. 윤 대통령은 마지막까지 자신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이유는 ‘부정선거 의혹’과 ‘야당의 행위=국가 비상사태’ 때문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체포 당일 관저를 찾은 여당 의원들에게 “남은 임기를 더해서 뭐 하겠나”라는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조기 대선은 ‘소문’에서 ‘현실’로 가까워졌다. 여당은 내란죄 수사권이 없는 공수처의 ‘불법’ 체포영장 집행을 두고 역사의 오점이라고 반발했지만, 사실상 윤 대통령의 신병을 확보한 공수처·경찰의 수사 속도는 빨라질 전망이다. 이와 동시에 ‘8인 체제’를 꾸린 헌법재판소도 심판 절차를 본격화한 상황에서, 민주당은 국민 상당수가 윤 대통령에 대한 평가를 끝냈다고 확신한다. 대체적으로 여론조사에서도 ‘헌재의 탄핵 인용’ 찬성 비율이 절반을 크게 넘는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월15일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이 집행된 직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여의도 대통령’ 李, 비호감 리더십이 발목 잡아

변수는 탄핵 정국 속 ‘야당에 대한 평가’다. 여론에선 보수 결집은 물론, 이념적 중도층에서도 변화가 나타났다. 중도층의 정당 지지도가 국민의힘은 오르고, 민주당은 줄어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대폭 좁혀진 여론조사 결과가 잇따라 나왔다. 또 비상계엄 선포 이후 바닥을 찍었던 윤 대통령 지지율도 최근 다수의 여론조사에서 40%를 훌쩍 넘었다. 

지지율의 추가 다시 수평으로 맞춰지는 이유에 대해 대다수 전문가는 물론 여당조차 자신들이 잘해서가 아니라 ‘이재명의 민주당’이 못해서라고 말하고 있다. 민주당의 ‘줄탄핵’과 ‘카톡 검열’ 등 오만과 폭주에 민심이 차갑게 등을 돌렸다는 설명이다. 여기에 민주당이 그간 ‘내란 진압’에만 몰두한 나머지 ‘왜 이재명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치권에서는 조기 대선이 펼쳐지는 만큼 앞으로는 ‘윤석열도 싫지만 이재명도 싫다’는 부동층의 향배가 어디로 향할지를 지켜봐야 한다는 분석이 많다. 여기에 여당이 내놓는 후보자가 변수로 작용해 ‘민심의 역풍’이 일어날지도 주목된다.

친명(親이재명)계로 뒤덮인 민주당도 이러한 여론 추세를 의식하는 분위기다. 다수의 민주당 의원은 “여론조사는 일시적인 지표일 뿐”이라고 확언했지만, 취재 결과 속내는 달랐다. 중도층과 2030세대에서 이탈한 지지율은 계엄·탄핵 정국에서 ‘야당이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불편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한국갤럽이 지난해 12월10~12일 진행한 ‘정치인 신뢰도’ 조사에서 이재명 대표는 현 정국 최대 수혜자임에도 51%(신뢰도 41%)로 높은 비호감도를 나타냈다. 민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지금 이재명의 숙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재명’이라는 브랜드가 지금 국민 절반 이상에게 불신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 대표에 대한 불신의 근원은 무엇일까.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전문가들과 복수의 민주당 핵심 관계자는 크게 4가지 문제를 꼽았다. ①강경 일변도 리더십(국정 안정에 대한 소홀함) ②윤 대통령 체포의 나비효과(사법 리스크에 더 엄격해진 민심의 잣대) ③포퓰리즘 정책(왜 이재명을 뽑아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못 함) ④여대야소 대통령에 대한 불안(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을 모두 차지한 이재명에 대한 불안) 등은 현재 이 대표가 이끄는 민주당이 조기 대선 국면에서 직면한 딜레마다.

먼저, 중도 확장성이 떨어지는 비호감형 ‘톤 앤 매너’다. 계엄 사태 직후부터 현재까지 ‘내란 진압’이라는 단일 목표를 위해 여러 무리수를 강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민주당은 한덕수 국무총리를 탄핵소추 하면서 “국정 안정보다 내란 진압이 우선”이라는 당 입장을 강조했다. 이후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을 향한 탄핵과 고발 압박을 일삼으면서 되레 정치적 불확실성을 키웠다.

이에 대해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예컨대 여당과 강성 보수층은 싹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내몰거나, (외환죄를 추가하는 등) 현실성이 떨어진 내란특검법을 내밀면서 군의 안정을 꾸리고 있는 합동참모본부 의장과 국방장관 대행을 윽박지르는 건 지지율과 이미지에 좋지 않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사법 리스크라는 상수다. 윤 대통령의 체포가 현실화하면서 이제 대중의 눈은 공직선거법 2심 판결을 앞둔 이 대표 쪽으로 더 많이 쏠리게 됐다. 현직 대통령도 체포된 마당에 제1야당 대표의 법적 심판에 대해서도 ‘방탄 프레임’과 관련해 더 엄격·공정한 기준이 적용될 것이라는 시각이다. 계엄 사태 이후 44일 만에 서울구치소로 들어간 현직 대통령의 체포 집행 과정을 경험하면서 이 대표의 재판 지연 전략도 더 이상 용인될 수 없다는 비판이 커지는 분위기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심 첫 재판은 1월23일에 열린다. 공직선거법 제270조에 따르면, 선거법 관련 사건의 1심은 6개월 이내에, 2심과 3심은 각각 3개월 안에 처리(선거법 6·3·3 원칙)해야 한다. 이 원칙에 따르면, 지난해 12월6일 서울고등법원에 배당된 이 대표에 대한 선거법 위반 2심은 이르면 오는 3월, 대법원 최종 판결도 6월까지는 나오게 된다. 다만 정치권에선 조기 대선 전에 이 대표의 3심 판결이 나올 가능성은 낮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재명, 포퓰리즘 정책 프레임 벗어나야”

지금의 ‘이재명 위기론’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판결과 별개라는 관측도 있다. 사법 리스크가 아니어도 그가 대권주자로서 내건 ‘민생’ 정책이 이미 약점이 되었다는 지적이다. 전략통으로 평가받는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예컨대 국민이 전과가 수두룩하고 문제가 많은 걸 알면서도 이명박 전 대통령을 뽑은 건, 그의 청계천 조성과 버스 전용차로 등 공약과 추진력이 영향을 미친 것”이라면서 “지금 이재명은 본인 스스로도 ‘왜 이재명을 뽑아야 하나’에 대해 답이 없다. 이건 사법 리스크보다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취재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이 대표가 내세운 ‘기본사회’ 공약은 보완 작업을 거쳐 이번에도 다시 선보여질 전망이다. 민주당은 이 대표의 대권 준비 플랫폼 격인 집권플랜본부와 사단법인 기본사회 등 싱크탱크들을 재가동하면서 관련 물밑 작업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 대표의 트레이드마크 격인 기본사회 시리즈에 대해 국민 상당수는 ‘포퓰리즘 아니냐’는 불안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민주당이 이를 해소하지 못한다면 ‘이 대표 대신 사법 리스크가 없는 다른 야권 대표 잠룡인 김동연 경기지사, 김부겸 전 국무총리, 김경수 전 경남지사 등이 집권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불식되지 않을 것이다.

이에 청와대 수석 출신인 민주당 관계자는 “이재명의 브랜드인 기본사회 정책은 상당수 국민에게 포퓰리즘적으로 다가오고, 외교안보 노선도 국민 절반에게 불안하게 보인다”고 했다. 유승찬 스토리닷 대표도 “민주당이 정치 구도상 우리나라에서 진보 포지션을 갖고 있지만 그다지 진보적이지 않다는 게 문제”라며 “기본사회 프레임만으로는 진보 지지층도 충분히 설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좌우 지지층 모두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마지막 불신은 이 대표의 ‘장악력’을 통해 커졌다. 유권자에게 내재된 ‘탄핵 트라우마’는 현재의 야권이 집권했을 때 ‘더 나은’ 정권이길 바라는 기대감으로 이어진다. 관건은 지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달리 이번 탄핵 정국에서 민주당이 보여준 힘의 크기가 확연히 다르다는 점이다. 2017년 당시 민주당 의석수는 123석으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보다 단 1석 많았다. 하지만 현재 170석을 거머쥔 민주당은 사실상 국회의 입법권력을 장악한 상태다.

이런 마당에 이 대표가 조기 대선에서 대통령까지 된다면 ‘역대급 여대야소’ 구도가 펼쳐지게 된다. 중도층 입장에선 22대 국회에서 초유의 거대 야권이 그간 보여준 ‘입법 독주’ 행태에 따라 ‘이재명 정권’에 대한 불확실성이 확산된 상태다. 이와 관련해 유승찬 대표는 “180석의 민주당이 여태까지 보여준 행태로 봤을 때 ‘이 당이 정권을 잡으면 정말 독주할 것 같다’는 두려움을 상쇄하지 않으면 (민주당이) 중도층을 포섭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번 선거에서 이 부분을 돌파하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짚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2차 체포영장 집행이 있던 1월15일 서울 한남동 대통령 관저 입구에서 국민의힘 김기현 의원(가운데)이 발언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정훈

“국민의힘, ‘계엄 옹호’ 이미지부터 탈피해야”

‘수장 체포’와 ‘여론 변화’로 여당도 고심에 빠졌다. 체포 직전 윤 대통령은 관저를 찾은 국민의힘 의원들에게 정권 재창출을 당부했지만 탄핵심판 전에 집권여당이 섣불리 ‘조기 대선’을 가시화하기도 난감한 실정이다. 또한 ‘친윤계 투톱 리더’ 권성동 원내대표와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이 이끄는 당에서 ‘탄핵 찬성’ 목소리를 내는 친한계 목소리를 마냥 묵살하는 전략도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

국민의힘이 ‘계엄 옹호’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재정비부터 필요하다는 게 정치권의 공통된 지적이다. 해당 밑작업이 완료되려면 강경보수층인 ‘집토끼’와 탄핵 찬성층인 ‘산토끼’, 이재명을 반대하는 ‘중도층’까지 포섭할 리더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찬성표를 던진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은 통화에서 “‘시비이해(是非利害)’에서 본질적인 건 ‘시비’, 옳고 그름이다. 집토끼, 산토끼를 떠나서 옳고 그름이 명확한 일에 대해선 (제게 해가 되더라도) ‘옳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며 “대선에서 다양한 보수층과 중도층 시민들에게 신뢰를 얻기 위해선 보수의 가치를 중심으로 상식적·합리적 목소리를 낼 후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여권 물밑에서도 보수 잠룡들의 움직임이 나타나는 분위기다. 국민의힘의 한 핵심 관계자는 “민주당은 후보 난립 여지가 없지만 우리는 잠룡이 많아 경선 구도가 뜨거워질 것”이라며 “한동훈이 복귀하고, 오세훈과 홍준표는 물론 원희룡, 김문수도 채비를 할 것이다. 경선 과정에서 (당내) 분위기를 끌어올리는 게 중요하다”고 귀띔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핵심 키워드는 ‘민생 안정’과 ‘여야 협력’이라고 입을 모았다. 탄핵 국면에서 여야 모두 손 놓고 있는 국가 경제 전략과 민생 위기에 대한 실질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점차 격해지고 있는 분열·대결 정치 구도를 통합할 수 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서로가 서로를 적으로 인식하고, 상대를 척결하려는 극한의 대결 정치를 전면에 내세우기만 한다면 최악의 대선이 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