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폭동에도…희미해진 ‘극우’와 ‘보수’의 경계, 왜?

‘투쟁’ 외친 尹에 ‘투쟁력’ 끌어올린 강성보수…與 지지율 상승세 견인 ‘광장→유튜브’로 옮겨간 태극기부대…‘온라인→오프라인’ 여론전 이끌어 ‘ARS 여론조사 한계’ 분석 속…“미래통합당이 이러다 망해” 당내 우려도

2025-01-20     박성의 기자

‘12·3 비상계엄’에 이어 ‘법원 폭동’까지, 대한민국이 유례없는 ‘카오스’에 직면한 모습이다. 이른바 ‘종북세력 척결’을 내세운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봉쇄를 시도한 가운데, 그런 대통령을 추종하는 지지 세력 중 일부는 경찰을 폭행하고, 판사를 위협하며 입법·행정·사법 삼대 권력을 모두 무력화하려는 시도를 감행했다.

문제는 ‘여당의 태도, 여론의 흐름’이다. 계엄과 폭동이라는 극단적 행태에도 여당은 이들과 선을 긋는 대신 거야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사법부를 맹비난하고 있다. 이런 여당과 대통령을 지지하는 보수 유권자의 지지세도 날로 커지는 양상이다. 아이러니하다. 계엄과 탄핵 정국을 통과하면서 하나의 흐름이 생성되고 있다. 바로 범보수의 결집이다. 이른바 ‘태극기 단체’로 불렸던 극우 성향 유권자와 여당, 일반 보수 유권자들 간의 간극이 ‘박근혜 탄핵 정국’보다 좁혀진 이유는 무엇일까.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내란 우두머리 및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출석 조사를 통보한 1월19일 윤 대통령이 구속 수감 중인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 앞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 이어 지지자도, 당도…거칠어진 보수

과거 ‘박근혜 탄핵’ 직후에도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의 ‘극우화 논란’이 도마 위에 오른바 있다. 자유한국당을 이끌던 황교안 당시 대표가 이른바 ‘태극기 부대’의 선봉장 역할을 자처하면서다. 2019년 자유한국당이 국회에서 주최한 ‘공수처법·선거법 날치기 저지 규탄대회’에 태극기와 성조기를 든 지지자 수천 명이 몰려들어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일부 집회 참가자들이 정의당 당직자를 폭행하는 일도 발생했지만, 황 대표가 지자들에게 “국회에 들어오신 것은 이미 승리한 것”이라고 격려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그러나 ‘오른쪽의 오른쪽 길’을 택했던 한국당의 말로는 비참했다. 총선 직전 분열된 중도·보수 세력을 통합하자며 ‘미래통합당’으로 당명을 바꿨으나, 2020년 4·15 총선에서 참패했다. 2017년 대통령 선거, 2018년 지방선거에 이어 전국 선거에서 3연패한 셈이다. 결국 황 대표는 취임 후 1년2개월 만에 당 대표직을 사퇴했다. 이후 통합당은 총선 패배 원인으로 ▲중도층 지지 회복 부족 ▲탄핵에 대한 명확한 입장 부족 ▲청년층의 외면 등을 꼽고, 극우 집단과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이후 5년, 보수 정당의 ‘극우화’ 논란이 다시 발화하는 양상이다. 최근 광장을 메운 ‘윤석열 탄핵 반대 시위대’와 여당 지도부가 발신하는 메시지가 유사하다는 관측이 나오면서다. 12·3 비상계엄 후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탄핵 소추, 체포·구속에 잇따라 반대하고 있다. 나아가 전날(19일) 서울서부지법에서 발생한 ‘폭동 사태’ 가담자를 두둔하는 듯한 메시지를 내 논란이 이는 모습이다.

권영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자신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폭력을 동원한다면 어떤 명분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선을 그으면서도, “민주당과 일부 언론은 시민의 분노 원인은 살피지 않고 (법원에 난입해 폭동을 일으킨 이들에 대해) 폭도란 낙인을 찍고 엄벌해야 한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민주노총 앞에선 한없이 순한 양이던 경찰이 시민 앞에선 한없이 강경한 ‘강약약강’ 모습을 보인다”고 비판했다.

권성동 원내대표도 전날 국회에서 열린 긴급 비대위 회의에서 법원 폭동에는 우려를 표하면서도, “경찰이 시민을 내동댕이치고 카메라가 장착된 삼각대를 발로 차고 바리케이드를 쳐서 폭력을 막으려는 시민을 방패로 내리찍고 명찰 없는 경찰이 다수 나선 모습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내란 우두머리와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혐의를 받는 윤석열 대통령이 15일 오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조사를 마친 뒤 차량에 탑승해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공동취재

尹 ‘응원’에 유튜버 ‘선동’…결집하는 보수

왜 여당과 지지자들은 ‘반성’ 대신 ‘반격’을 택한 것일까. 우선 ‘박근혜’와 ‘윤석열’의 리더십 차이가 거론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 위기에 몰리자 “대통령직 임기 단축을 포함한 진퇴 문제를 국회의 결정에 맡기겠다”며 여당뿐 아니라 야당의 뜻을 존중하겠단 의사를 밝혔다. 그러나 윤 대통령은 국회가 아닌 ‘우리 당’, 나아가 ‘애국시민’을 향해 퇴진이 아닌 ‘불복’의 메시지를 연일 내고 있다. 비상계엄은 내란이 아닌 반국가세력을 진압하기 위한 통치행위로, 불법은 없었으며, 수사 권한이 없는 공수처의 영장 청구는 불법이라는 게 일관된 주장이다.

윤 대통령이 ‘싸우자’는 의지를 밝히고 전우를 모으면서, 지지자들의 저항 역시 더 격렬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강성 지지층에게 ‘투쟁 동력’을 직접 주입하고 있는 얘기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 위기에 몰려도 ‘불복·불법’을 이야기하지 않았다”며 “그런데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후 공수처와 사법부를 향해 ‘불법의 불법의 불법’이라고 각을 세우고 있다. 이러니 지지자들도 사법질서를 무시하면서 투쟁하는 것”이라고 봤다.

일각에선 강성 보수 지지층의 전장이 ‘광장’을 넘어 ‘유튜브’로 옮겨간 것 역시 보수 유권자 전체의 ‘강성화’ 경향을 부추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시위 현장에 나가지 않고도 유튜브에 게시된 영상을 통해 지지층의 목소리를 쉽게 접할 수 있게 됐고, 나아가 이 같은 메시지를 전한 유튜버들이 보수층의 ‘오피니언 리더’로 자리 잡다 보니 ‘계엄 찬성·탄핵 반대’ 등의 주장이 더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는 시각이다. 실제 취재에 따르면, 윤 대통령 역시 일부 극우 성향 유튜버들과 사적으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비상계엄 전후 상황을 공유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박상병 정치평론가는 “정치권이 일부 유튜버를 활용 또는 지원하고 있고, 윤 대통령은 대놓고 지지층을 선동하고 있다”며 “여기에 일부 유튜버들이 슈퍼챗(후원금) 등 돈벌이를 위해 지지층들을 더욱 강성으로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결국 여당과 대통령이 ‘운명공동체’를 택하고, 유튜버 등 보수 오피니언 리더들을 앞세워 ‘반격의 근거’를 영상 콘텐츠로 가공해 확산시키기 시작하면서 ‘보수의 대결집’이 이뤄지고 있다는 해석이다. 나아가 ‘대통령 탄핵’에 반대하는 이들이 ‘소수’가 아니라는 점이 여론조사 등을 통해 공표되면서, 보수 유권자의 결집효과 역시 더 강화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준한 교수는 “대통령 탄핵 소추 후에도 여권 내 분열이 감지되지 않고 있다”며 “여기에 여론조사에서 여당 지지율이 실제 높게 나오니 대통령과 여당 지지세가 더 강화되는 경향을 보이는 것”이라고 봤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3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與나 尹 응원하는 것 아닌 李 사법리스크 탓” 분석도

정치권 일각에는 ‘여론조사의 특성·한계’에 주의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실제 대한민국 보수 성향 유권자의 전반적인 의견을 여론조사 ‘숫자’가 모두 대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시각이다. 전화면접이나 자동응답(ARS) 여론조사의 경우 ‘정치 고관여층’이 주로 대답하는 경향성을 보이다보니, 이른바 ‘샤이 보수층’의 의견보다는 ‘강성 보수층’의 의견이 과표집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정치 화두’에 따라 진영별 응답률이 크게 요동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연구소장은 “ARS 연구조사의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 소위 더 화가 많이 난 진영이 더 적극적으로 응답하는 경향이 있다”며 “‘비상계엄’ 당시에는 진보층의 응답이 과잉대표되는 경향이 있었으나, 최근 화두가 ‘윤 대통령 체포·구속’으로 바뀌니 성난 보수 유권자들이 더 적극적으로 (설문조사에) 답하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결국 여론조사의 방법론, 상황적 요인에 따라 발표되는 여론은 ‘출렁’ 거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이재명 사법리스크’가 강성 보수 지지층과 온건 보수 지지층의 ‘교집합’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부정선거설’에 동의하지 않고, ‘비상계엄’에 분노한 일부 시민들 중에서도 ‘대통령 이재명’을 우려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해석이다. 이 상황에서 이른바 ‘이재명 대세론’이 불자, 일시적인 반작용으로 여당 지지율의 상승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여권 내에서도 최근 여론 흐름을 오판할 시, 미래통합당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20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 지지율이 높아진 이유는 오히려 이재명 대표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분들이 결집한 효과”라며 “오히려 자칫하면 (지지율) 착시현상으로 ‘지금 가는 길이 옳다, 이대로 더 강하게 계속 가자’는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게 걱정”이라고 했다. 이어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인용돼 대선이 시작된다면 이건(지지율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