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딸을 범인으로 단정했던 경찰…재심에서 뒤집혀 결국 미제사건으로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아버지 살인범 누명 쓴 김신혜씨, 25년간 억울한 옥살이 최초 자백에만 의존…부실한 초동수사로 물적 증거 하나도 없어

2025-01-24     정락인 탐사저널 사건전문기자

전남 완도군 완도읍에 50대 남성 K씨가 살았다. 그는 한쪽 다리가 불편한 지체장애인 3급이었다. 2000년 3월6일 저녁 K씨는 마을 인근 중국음식점에서 친구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밤 9시쯤 술자리가 끝났으나 K씨는 홀로 남아 술을 더 마신 후 자정쯤 부모가 살고 있는 집으로 가서 술주정을 하고 나온다. 

2023년 6월28일 아버지 살해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신혜씨가 재판 준비기일에 출석하기 위해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으로 호송되고 있다. ⓒ연합뉴스

최초 자백이 범인 특정 결정적 계기

다음 날 오전 5시50분쯤 K씨는 마을에서 6km 떨어진 완도읍 정도리 버스정류장 길가에서 숨진 채 발견된다. 입에서는 술 냄새가 풍겼고, 시신 앞에는 자동차 방향 지시등이 깨진 채 널브러져 있었다. 

현장 상황으로 보면 K씨가 뺑소니차에 치여 숨진 것처럼 보였지만, 뭔가 석연치 않았다. 몸에 출혈이나 외상이 전혀 없었던 것이다. 경찰은 K씨의 정확한 사망원인 파악을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 광주분원에 부검을 의뢰했다. 사망 당시 K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303% 만취 상태였고, 수면유도제인 독실아민 성분이 검출된다. 경찰은 사건 발생 이틀 후인 3월9일 오전 사망자의 큰딸인 김신혜씨(당시 24세)를 존속살해 혐의로 긴급 체포한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장례식 도중 고모부에게 “아버지를 살해했다”고 자백하고, 큰아버지에게도 “내가 죽였다”고 말했다. 이 말은 김씨를 범인으로 특정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경찰에서도 범행을 인정하면서 김씨는 아버지를 죽인 살인범이 됐다.

그는 사건 두 달 전인 1월11일부터 28일까지 생명보험에 8건이나 집중 가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보험 종류도 질병보험이 아닌 교통상해보험이다. 나중에 3개는 해약했으나 5개는 유지했다. 김씨 수첩에는 ‘사망보험금 수령’과 ‘수면제를 이른 아침 시간까지 20, 30알을 먹여 대로변에 교통사고를 위장하여 버린 후 유유히 떠난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경찰 수사보고서를 보면 김씨의 범행동기는 ‘복수’이며, 목적은 ‘보험금’이었다. 김씨는 학교 다닐 때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는데, 이복여동생도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말을 듣고 살인을 결심한다. 여기에 보험금까지 노리고 사전에 철저하게 준비한다. 

수사보고서에 따르면 사건이 일어난 3월6일 김씨는 서울에서 렌터카를 타고 완도로 내려왔고, 다음 날 새벽 1시쯤 아버지를 찾아가 수면유도제 30알을 갈아 양주에 넣은 후 ‘간에 좋은 약’이라고 속여 연거푸 두 잔을 마시게 했다. 그런 다음 드라이브를 위해 아버지를 태우고 집에서 나왔고, 차 안에서 두 사람은 한참 동안 얘기를 나눴다. 그러다 아버지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한적한 버스정류장으로 이동해 도로에 내려놓은 뒤 교통사고처럼 꾸미고 현장을 떠났다는 것이다. 

검찰은 경찰 조사에 문제가 없다고 보고 김씨를 존속살해와 사체유기 혐의로 구속 기소한다. 1심과 항소심을 거쳐 대법원에서 최종 무기징역이 확정됐다. 

그러나 김씨는 경찰에서 범행을 인정한 후 현장 검증을 앞두고 기존 진술을 번복한다. 경찰의 강압 수사에 의한 자백이었고, 자신은 아버지를 살해하지 않았다며 억울하다고 항변했다. 경찰이 자신을 범인으로 지목한 것도 조목조목 반박했다. 어릴 때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한 적도 없다고 했다. 이 같은 진술은 아버지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해야 정상참작이 될 수 있다는 친척의 강요 때문이었다는 것이다.  

8개의 보험을 든 것도 아버지가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알리지 않아 ‘고지의무 위반’으로 수령할 수 없기 때문에 아버지 살해 목적이 될 수 없다고 했다. 사건 당일 고향에 내려온 것도 아버지를 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동생이 내려오라고 떼를 써서 올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김씨는 사건 당일 0시55분쯤 완도에 내려왔으나 곧바로 집으로 가지 않았다. 휴대전화가 없던 그는 공중전화로 고향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너무 늦은 시간이어서 만나지는 못했다. 이번에는 할머니집에 전화를 걸어 여동생과 통화한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실랑이를 벌이고 갔다는 말을 듣고는 평소 술주정이 심한 아버지와 마주치기 싫어 바닷가 등대를 찾아 차를 세우고 혼자 술을 마시면서 시나리오를 구상했다. 그러다 차 안에서 깜빡 잠이 들었고, 자동차 경적 소리에 눈을 떴는데 그때가 새벽 5시쯤이었다고 한다. 

경찰의 현장검증 도중 바닥에 주저앉은 김신혜씨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화면 캡쳐

경찰·검찰 수사 내용 달라 신빙성 떨어뜨려

그제야 부랴부랴 아버지집으로 가서 집 앞 공터에 차를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2층에 불이 켜져 있어 아버지를 불러봤는데 대답이 없자 주무시나 보다 생각하고 할머니댁으로 가서 그곳에서 잠을 잤다는 것이다. 그곳에서 다른 가족들과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전해 들었다는 것이 김씨의 주장이다. 

물론 김씨가 완도에 내려온 후 아버지가 사망한 시각까지의 알리바이가 확인된 것은 아니다. 김씨는 수감된 후에도 무죄 주장을 굽히지 않고 국가기관, 시민단체, 언론사 등에 자신은 억울하다며 끊임없이 탄원서를 보냈다. 

이 사건은 경찰의 초동수사부터 문제가 있었다. 최초 수사 단계에서는 김신혜씨의 자백이 있었으나 이를 뒷받침할 물적 증거가 하나도 확보되지 않았다. 김씨의 자백 과정도 석연찮았다. 김씨를 범인으로 의심한 친척들의 강한 추궁과 자백을 하면 가벼운 처벌을 받을 것이라는 회유, 그리고 동생을 보호하려는 마음 때문에 허위 자백을 했을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경찰은 김씨를 범인으로 단정하며 강압 수사로 일관했다. 경찰과 검찰의 수사 내용도 달라 수사의 신빙성까지 떨어뜨렸다. 

이번 사건에서 범행도구로 사용된 것은 수면유도제다. 경찰은 김씨가 독실아민 30알을 가루로 만든 후 양주에 섞어 먹인 것이라고 했다. 보통 독실아민 한 알을 먹었을 때 혈중 농도는 0.1mg/ml이다. 경찰 수사대로라면 김씨의 몸에서는 3.0mg/ml이 나와야 한다. 실제로는 혈중 농도의 130배인 13.02mg/ml이 검출됐는데, 독실아민 130알을 먹어야 나오는 수치다. 경찰이 내놓은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독실아민을 놓고도 경찰은 ‘가루로 만들어 술에 섞었다’고 했는데, 검찰은 ‘알약 형태로 먹였다’고 바꾼다. K씨의 위에서 알약 형태의 내용물은 식별되지 않았다. 이렇게 경찰과 검찰 수사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김씨는 수면제를 밥그릇 위에 놓고 갈았고, 주변에 떨어진 가루는 노란 행주로 닦은 뒤 그대로 휴지통에 버렸다고 진술했다. 이게 사실이라면 밥그릇과 행주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돼야 한다. 경찰이 수거해 검사했지만 두 증거물에서 수면제 성분은 나오지 않았다. 김씨의 아버지가 마셨다는 양주병과 양주잔도 확보되지 않았다. 

숨진 K씨는 이미 많은 술을 마셨고, 여기에 고농도 수면유도제가 든 양주를 추가로 마셨다면 혼수상태가 된다. 다리가 불편한 그가 집 안 2층에서 계단으로 내려오고 드라이브를 하며 대화를 했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1월6일 무기수 김신혜씨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고 장흥교도소에서 석방되고 있다. ⓒ연합뉴스

반인권적 강압 수사 드러나며 재심 결정

키 155cm에, 몸무게 약 38kg인 김신혜씨가 정신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덩치 큰 아버지를 집 안에서 승용차까지 데리고 나가, 차에 싣고 버스정류장에 유기했다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았다. 특히 김씨가 타고 온 렌터카에서는 아버지의 혈흔이나 머리카락도 나오지 않았다. 이처럼 김씨가 범인이라는 물적 증거가 하나도 확보되지 않았다. 이런 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김신혜씨 사건은 새로운 전환점을 맞는다.

2015년 1월 대한변호사협회는 김신혜씨 사건에 대한 재심 청구를 결정했다. 사건 발생 15년 만이다. 대한변협은 재판기록과 증거 등을 검토한 결과 경찰이 영장 없이 김씨 집을 압수수색하고 폭행과 가혹행위로 자백을 강요한 정황 등 반인권적 수사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같은 해 11월18일 광주지방법원의 판결로 재심이 결정됐는데,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첫 재심 결정이었다. 그리고 올해 1월6일 김신혜씨의 1심 선고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재판부는 “증거물이 위법하게 압수됐고, 아버지를 살해했다는 진술도 허위 자백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로써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수가 됐던 김씨는 25년 만에 석방된다. 김씨는 출소 후 “이 사건이 이렇게 수십 년이 걸릴 일인가”라며 “아버지가 고생만 하다가 돌아가셨는데, 끝까지 못 지켜드려 죄송하다. 이런 일은 더 이상 반복되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이 무죄 선고에 불복해 항소하면서 김씨는 불구속 상태에서 항소심 재심을 받게 됐다.

만약 재심까지 무죄가 확정되면 김씨는 국내에서 가장 오랫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사람으로 기록된다. 아울러 형사보상금과 국가배상금을 받을 수 있다. 화성 연쇄살인 범인으로 몰려 20년간 옥살이를 했던 윤성여씨는 2019년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후 40억원의 위자료를 받았다. 이를 감안하면 김씨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위자료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범인은 숨진 K씨 주변에 있다

치사량의 수면유도제 먹이고 교통사고로 위장

일명 ‘완도 살인 사건’은 김신혜씨의 무죄가 확정되면 미제사건이 된다. 범인으로 지목돼 대법원에서 형량이 확정된 데다 2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진범이 스스로 나타나지 않는 이상 미해결로 남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 

1972년 춘천 파출소장 딸 강간살인 사건의 전철을 밟게 될 전망이다. 이 사건도 경찰의 강압 수사로 범인으로 몰린 한 청년이 15년간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풀려난 후 지금까지 해결되지 않았다. 두 사건 모두 진짜 살인범에게는 완전범죄가 성립된 것이다. 

완도 살인 사건은 경찰이 처음부터 김신혜씨를 범인으로 단정하고 부실수사를 한 것이 문제였다. 김씨의 자백에 집착해 물적 증거 확보에 소홀하고, 또 확보하지도 못했다. 김씨는 검찰에서 사건 현장에 있던 방향지시등 파편에 대해 서울 압구정동의 한 카센터에 들러 거기에 버려져 있던 것을 얻어왔다고 진술했다. 해당 카센터에서 이걸 확인만 했어도 김씨 진술의 진위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었다. 범인이 빠져나갈 구멍을 수사기관이 만들어준 것이나 다름없다. 

이 사건의 진범은 숨진 K씨 주변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정황상 계획범죄에 무게가 실리기 때문이다. 범행이 일어난 시간은 사건 당일 자정부터 K씨가 시신으로 발견된 이른 아침까지 약 6시간이다. 그사이 누군가가 K씨에게 치사량의 수면유도제를 먹였다는 것이 된다. K씨는 부모집에서 나와 자신의 집으로 향했는데, 늦은 밤시간에 술에 취하고 다리까지 불편한 그가 수 km 떨어진 곳에서 숨진 채 발견된 것도 의아하다. 

K씨가 혼자 걸어갔을 확률은 낮다. K씨 시신 주변에 방향지시등이 깨져 있는 등 교통사고로 위장한 것을 보면 제3자가 개입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다량의 수면유도제를 미리 준비하고, 교통사고로 위장했다는 점은 계획적인 범행으로 볼 수 있는 정황이다. 범행이 사전에 준비된 것이라면 범인이 K씨를 알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인 추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