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모론·자기모순·남 탓’ 회로 뒤엉킨 尹의 알고리즘

헌재에서 “김용현 포고령? 최상목 쪽지? 모르는 일”…자기방어인가 거짓말인가 ‘자유민주주의’ 신념 외치며 ‘반국가세력 척결’ ‘부정선거 검증’ 음모론 주장

2025-01-23     박나영 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1월15일 체포되기 직전, 자신의 참모와 변호인단을 위해 햄에그 샌드위치 30인분을 만든 것이 논란이 됐다. ‘의연함을 잃지 않으려는 절박함’이라는 정치평론가의 해석과 ‘분리 불안이 높아진 유아기적 퇴행’이라는 프로파일러의 분석이 동시에 나왔다. 무엇이 맞는지는 알 수 없으나 손바닥에 王(왕) 자를 쓰고 대선 TV 토론에 나왔을 때만큼이나 상식에서 벗어난, 일반 국민의 시선으로는 납득되지 않는 지점들이 계엄과 탄핵 국면 속에 윤 대통령에게서 수없이 포착되고 있다.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조사를 받는 도중 공개된 윤 대통령의 자필 편지에는 “아이러니하지만, 탄핵소추가 되고 보니 이제야 제가 대통령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내용이 있어 다시 한번 국민을 놀라게 했다. ‘비상계엄이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며 억울함을 호소하는 편지에서 ‘대통령임을 이제야 자각했다’는 자기모순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대통령님’에서 ‘수인번호 10번’으로 전락한 윤 대통령이 지금은 대통령이 아닌 구속영장이 발부된 피의자 입장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있을까. 그는 지난해 12월3일 45년 만의 비상계엄을 선포해 자신이 ‘반국가세력’이라고 이름 붙인 더불어민주당의 정치활동을 막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 등 정치인 14명을 체포해 수방사 지하벙커에 가두려 한 것으로 전해진다. 계엄 해제까지 6시간 동안 그 과정이 생중계됐는데, 윤 대통령은 ‘포고령’이나 ‘국가비상입법기구’ 등 내란의 결정적 증거가 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부하 직원들이 꾸민 것이라며 ‘나 몰라라’ 태세로 전환했다. 이는 그간 수차례 쏟아낸 대국민담화와도 모순되는 내용이라, 피의자의 방어논리를 꿰뚫고 있는 법률전문가의 전략으로 받아들이기에도 석연치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1월21일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탄핵심판 3차 변론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尹, 유튜브에 갇히며 세상 보는 창 망가져”

일련의 상황 전개를 지켜보는 국민에겐 자연히 윤 대통령의 사고와 행동에 대해숱한 의문점이 생겨나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 탄핵소추안 가결, 사상 초유 현직 대통령의 체포와 구속 등 극한의 순간에 윤 대통령이 쏟아낸 발언을 따라가 보면 비상계엄을 선포하기까지 그의 머릿속을 지배한 사고와 논리를 짐작해볼 수 있는데 핵심 키워드는 ‘반국가세력 척결’ ‘부정선거 검증’이다. 이는 ‘이봉규TV’ ‘고성국TV’ 등 극우 유튜브 채널에 나오는 주장들과 정확히 일치하며, 실제로 윤 대통령이 자주 보는 채널들로 알려져 있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한 방송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의 유튜브 알고리즘이 다 망가져 세상을 보는 창 자체가 망가졌을 것”이라고 했다. 

유튜브 검색창에 이런 채널을 한 번만 검색해 열어보면 알고리즘을 타고 ‘반국가세력’과 ‘부정선거’ 음모론을 주장하는 채널들이 도배되기 시작한다. 익명을 요구한 한 현역 국회의원은 “윤 대통령이 극우 유튜브에 둘러싸여 있다는 문제제기가 여야를 막론하고 계속 있어왔는데, 비상계엄을 통해 윤 대통령이 단순히 둘러싸여 있는 게 아니라 스스로 그 세계 자체가 돼버렸음을 보여줬다”고 진단했다. 실제 그는 체포 직전 국민의힘 의원들을 관저로 불러 “당을 지켜 달라” “정권 재장출을 해달라” 등 당부를 하면서 ‘TV 뉴스가 아닌 잘 정리된 유튜브 채널을 보라’며 해당 채널들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알고리즘 속에서 ‘적’은 명확하다. 그 세계에선 자신과 다른 정치 성향을 가진 이들을 ‘반대파’로 규정하고 그들에 대한 적대, 혐오, 왜곡을 반복해 주입한다. 이에 윤 대통령은 자신의 국정운영에 반대하는 민주당을 ‘종북 반국가세력’으로 규정하고 비상계엄을 통해 척결하려 했다. 또 선거관리위원회 서버를 압수해 마침내 부정선거 의혹을 해소하고 정국을 역전시키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보인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윤 대통령은 메시지 타깃(target)을 국민에서 강성 지지자들로 바꾸고 “실시간 생중계 유튜브를 통해 여러분께서 애쓰시는 모습을 보고 있다” “여러분과 함께 끝까지 싸울 것”이라는 등 유튜브 안에 갇힌 세계관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다.

프로파일러 출신인 표창원 전 국회의원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분석하면서 “‘범죄자와 일반인의 차이가 뭔가요?’라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 때문에’와 ‘~에도 불구하고’라는 생각의 차이라고 답했다”면서 “가정 폭력, 아동 학대, 교제 폭력, 스토킹 가해자들 모두 피해자 탓을 하며 ‘때문에’라고 한다. 남을 해치지 않는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과 절차, 선을 지키려 노력한다”고 했다. 

1월18일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된 윤석열 대통령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이 열린 서울 마포구 서울서부지법 앞에서 윤 대통령 지지자들이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직 연연 안 해…반국가세력 척결해야”

윤 대통령 입장에선 자신의 결단과 행동으로 스스로 숭고한 가치와 신념을 실현해 나가는 중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대통령실 보좌진과의 식사 자리에서 “내가 대통령 직무에 복귀하기 위해 이 싸움을 하는 게 아니다”며 직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그는 “차기 정권이 반국가주의 세력에 넘어가지 않게 터를 닦고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1월21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에 출석해서도 “철든 뒤 지금까지 자유민주주의라는 신념 하나를 확고히 갖고 살아온 사람”이라며 비상계엄은 정당한 조치였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신념이 옳았으므로 계엄은 정당하고 이러한 행보를 가로막는 모든 조치는 ‘불법’으로 간주된다. 윤 대통령은 자신에 대한 법원의 체포영장 발부와 공수처의 체포영장 집행을 두고 지지자들을 향해 “불법의 불법의 불법이 자행되고 무효인 영장에 의해서 절차를 강압적으로 진행하는 것을 보고 정말 개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윤 대통령의 굳건한 신념이 지난 2년 반 동안 ‘입틀막 경호’를 가능케 했고, 부인 김건희 여사 문제와 관련해서도 ‘국민 눈높이’를 무시하는 근거가 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이 자신의 뜻을 관철하기 위해 특전사·수방사를 국회로 난입시킨 것과 윤 대통령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법에 폭도들이 쇠파이브를 들고 난입한 것을 같은 맥락으로 해석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의 ‘합법적 계엄 선포’ 주장에 대해 “자유민주주의가 인민주의보다 센 것은 법치, 선거제도, 언론이 있기 때문이다. 이 기둥 위에 자유민주주의가 서있는데 윤 대통령은 이 3가지를 전부 부정했다”고 비판했다. 

반면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이 요건도 절차도 갖추지 못한 위헌·위법 행위라는 점에 대해선 침묵한다. 차은경 서울서부지법 부장판사는 1월18일 윤 대통령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 때 딱 한 가지 질문을 했는데, 비상계엄 선포 당시 최상목 경제부총리에게 전달한 ‘비상입법기구 쪽지’와 관련해 ‘비상입법기구가 구체적으로 무엇이냐. 계엄 선포 이후 비상입법기구를 창설할 의도가 있었냐’는 것이었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쓴 것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며 확답을 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정적인 순간, 자기방어에 골몰하며 책임을 미루는 모습도 윤 대통령의 중요한 특징이다. 여권 핵심 관계자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 이전에도 가까운 이들과의 술자리에서 “(야당이) 탄핵해볼 테면 해보라 그래”라고 호기롭게 외치는 등 자신만만한 태도로 일관했다고 한다. 그러나 정작 탄핵안 가결 이후 공수처 조사와 체포영장 집행이 임박해 오자 지지자들에게 지켜 달라고 호소하며 정작 자신은 뒤로 숨었다.

2024년 12월3일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가운데 계엄군이 서울 국회의사당 본청으로 진입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정적인 순간 ‘말 바꾸기’ ‘남 탓’

그는 헌재에서도 ‘국가비상입법기구를 편성하라는 쪽지를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준 적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준 적도 없고 나중에 계엄을 해제한 뒤에 언론에 메모가 나왔다는 걸 봤다”고 답했다. 포고령에 대해서는 “김용현 장관이 잘못 쓴 것”이라고 주장했고, 이진우 수도방위사령관과 곽종근 특전사령관에게 ‘계엄 해제를 위해 모인 국회의원을 끌어내라 지시한 적이 있느냐’는 질의에 “없다”고 부인해 계엄 명령에 따랐던 부하직원들을 모두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은 윤 대통령이 헌재에 직접 출석해 ‘말 바꾸기’를 한 것과 관련해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이 많다. 이런 부분이 수사나 청문회에서는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나 법원 재판은 기본적으로 피의자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들어주고 추궁하지 않는다. 본인이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해야 할 상황일  때 수사기관이나 청문회 쪽보다 헌재가 수월하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만약에 윤 대통령이 여론전으로 (헌재를) 활용한다면 제일 좋은 공간”이라고 덧붙였다. 

박성태 사람과사회연구소 연구실장은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윤 대통령의 헌재 발언과 관련해 “본인 마음대로 하는 것을 자유민주주의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며 “확고한 망상에 따른 오류의 세계에 여전히 살고 있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