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선동의 시대를 끝내야 한다
그는 인간으로서의 존엄이나 명예 따위는 아예 놓아버리기로 작정했던 모양이다. 또다시 ‘헌정사상 초유’라는 흑역사를 남기며 구속된 윤석열 대통령은 온갖 법적·물리적 마찰 끝에 관저에서 체포돼 나오는 순간까지도 구차한 여론전의 고삐를 놓지 않았다. “이 나라에는 법이 모두 무너졌다”고 강변하는가 하면, “끝까지 함께 싸우겠다”는 메시지도 부끄럼 없이 내놓았다. 애초부터 ‘쿨한’ 모습을 보이리라는 기대도 없었지만, 그는 스스로 불러온 재앙인 계엄 이후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추레하기만 했다.
이 같은 윤 대통령의 ‘전의(戰意)’를 충실하게 받들겠다는 듯 대통령 변호인단과 측근들도 ‘아무 말’ 공세의 수준을 더욱 끌어올렸다. “특공대나 기동대를 동원해 체포를 진행한다는 것은 내란” “잘못되면 이것은 내전으로까지 갈 수 있다” 같은 극단적 언사를 쏟아냈고, 체포 국면에서는 “경찰 기동대가 체포영장을 집행하면 시민 누구에게나 체포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들뿐만이 아니다. 정치권 일부도 그에 화답하기라도 하듯 대통령 엄호 사격에 발벗고 나섰다. 여당의 한 의원은 대통령 지지 집회에 참여해 “(극우) 유튜버들과 함께 싸우겠다”고 했고, 또 다른 의원은 하다 하다 과거 국가폭력의 상징으로 지목되던 ‘백골단’의 후예를 국회 안에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이 내란, 선전·선동을 둘러싼 전선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민주당이 카카오톡 등 SNS 글을 겨냥해 “단순히 일반인이라고 할지라도 단호하게 내란 선동이나 가짜뉴스로 고발하겠다”고 하자, 국민의힘이 “카톡 계엄령”이라며 극력 반발하고 나선 것도 그 한 예다.
이처럼 ‘내란’ ‘선전·선동’이라는 고약한 단어들이 정치권 안팎에서 공공연히 발설되고, ‘성전(聖戰)’ ‘국민 저항권’ 같은 초법적 표현까지 마구잡이로 쏟아지면서 국민의 일상을 흔드는 상황은 쉽게 흘려버려도 좋을 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입게 될 상처가 막심하다. 선전·선동을 막무가내로 획책하더라도 정작 다치는 쪽은 그 당사자가 아니다. 그들은 늘 그러하듯 선동의 파편 속에서도 무사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최근 사태에서도 그들은 건재한 반면, 시민은 편치 않았다. 대통령 지지 집회 참가자의 분신 사망 사건이 일어난 데 이어, 일부 극렬 지지자들은 법원 건물에 난입해 기물을 파손하고 기자·경찰을 폭행하는 등 스스로 ‘내전’이라고 칭한 테러 행위까지 자행했다. 이를 두고 여당 지도부 인사는 ‘경찰 탓’을 했고, 한 현역 의원은 ‘훈방 조치 가능’을 언급해 법원 점거 폭력을 조장했다는 논란을 불렀다.
선동은 분열의 시대에 불신이나 맹종과 같은 영양분으로 살을 찌워서 가장 위험하게 발호하는, 그래서 또 가장 경계해야 하는 극악의 괴물이다. 《선동은 쉽고 민주주의는 어렵다》를 쓴 페트리샤 로버츠-밀러는 그 책에서 “선동이 공적 담론에 참여하는 보통의 방식이 되면, 선동가가 발흥하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하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자극적인 맛을 잔뜩 입혀 대중을 홀린 말들이 어떤 독소를 숨겼고, 그것이 점차 변질·부패해 대중에게 얼마나 치명적인 위해를 끼쳤는지를 우리는 이미 질리도록 경험했다, 자기네끼리 쏘아붙이며 치고받는 말들의 사나움도 거북한 마당에, 그것으로도 모자라 국민들까지 끌어들여 싸움판을 키우려는 억지 행패와 선전·선동의 시대는 이제 끝내야 한다, 45년 만에 계엄이란 구악을 불러낸 일도 충분히 수치스러운데, 대중의 이성이 아닌 감정을 세 치 혀로 집중 공략, 선동해 전 세계를 어지럽혔던 90여 년 전 히틀러의 시대로까지 퇴행하면서 허망하게 무너질 수는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