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이재용의 삼성, 세계를 넘어 미래를 설계하라
8년의 족쇄를 벗고, 초격차 혁신의 길로 나아갈 때 담대한 비전과 본질 회복이 삼성을 다시 뛰게 한다
축하할 만한 일이다. 흔히 사필귀정이니, 만시지탄이니, 무리한 기소였다는 등의 논란은 접어두더라도 8년이라는 기간은 참으로 아까운 시간이었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에 대한 무죄 판결. 그러나 8년 전에 이 일이 없었다면 삼성은 지금 어디쯤 가 있을까? 지금의 1년은 과거 100년과도 같다는 초혁신의 시대다. 만화 같은 일이 도처에서 벌어지는 오늘날, 대한민국 경제에 빛나는 기여를 해온 기업들에는 분초가 아까운 것이 현실이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법적 판단을 넘어 한국 경제와 기업 경영 환경에 대해 깊은 성찰을 요구하는 계기가 됐다. 그동안 이 회장과 경영진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제약을 받았고, 이는 기업의 미래 전략 수립과 실행에도 깊은 그늘을 드리웠다. 더 나아가, 다른 기업들도 사법적 리스크를 우려하며 신속하고 과감한 결정보다는 소극적 태도를 보이는 데 익숙해졌다. 이는 결국 글로벌 경쟁에서 실기(失機)를 초래하고, 기업 생존과 국가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했다. 이 때문에 이 회장이 길고 긴 공방 끝에 법적 족쇄를 벗어난 것은 단순한 경영 복귀를 넘어 삼성의 미래, 나아가 한국 경제에 중요한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삼성에 36년간 몸담은 전직 ‘삼성맨’으로서 한국 경제의 미래와 직결된 삼성이 주목해야 할 과제들을 다시 떠올려본다.
본질적 DNA와 고유 컬러를 되찾아야
삼성은 창립 이래 ‘사업보국(事業報國)’ ‘인재제일(人材第一)’ ‘합리추구(合理追求)’라는 핵심 가치를 바탕으로 성장해 왔다. 삼성이 가진 전통과 문화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게 아니다. 이러한 본질적 DNA와 문화는 시대가 변해도 결코 훼손돼선 안 된다. 최근 ESG 경영이나 MZ세대 친화적 조직문화 등 새로운 트렌드가 주목받고 있지만, 이는 껍데기에 불과할 수 있다. 본질을 잃어버린 기업은 시장의 거센 파도 속에서 영속할 수 없다.
이는 기업 고유의 컬러를 다시 확고히 해야 한다는 점을 의미한다. 글로벌 경쟁 시대에 기업의 정체성과 원칙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 기업 TSMC는 “주 7일, 24시간 일할 각오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우리 회사에 들어오지 말라”고 선언하고,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는 “당장 회사로 출근하라. 아니면 회사를 떠나라”고 외쳤다. 이 얼마나 당당한가? 이러한 자세가 세계 1위를 만들어갈 것이고, 초격차 경쟁력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최근 조직의 관료화, 노쇠화, 생산성에 대한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이런 비판을 쓴 약으로 삼아야 한다. 기업의 제1 목표는 ‘생존’이다. 생존이 담보된 후에 침몰하지 않는 배를 만들어야 선원과 승객이 안심할 수 있다. 이는 혁신이라기보다는 ‘리셋’에 가깝다. 삼성이 본질을 지키며 혁신을 이어가는 것은 삼성 고유의 컬러를 회복하는 일이다.
그동안 삼성은 시대적 흐름을 정확히 읽고 과감한 전환을 모색해 왔다. 이미 글로벌 IT 제조 분야에서 탁월한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세계시장이 거대한 단일 시장으로 통합되면서 금융, 교육, 소프트웨어 영역이 급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더욱이 AI 시대의 혁신으로 로봇, 우주, 해저까지 산업 영역은 상호연결적·동시다발적으로 확장되고 있다. 현재 삼성의 IT 산업은 ‘하드웨어 중심’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데, 이제는 소프트웨어 분야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을 실행해야 할 때다. 결국 조직을 이끄는 ‘Top’의 의지와 결단력에 달려 있다.
‘이재용 삼성’의 스토리를 완성해 가야 할 때
한발 더 나아가 한국의 대표 기업으로서 삼성이 우리 산업의 미래를 어떻게 이끌어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담아내야 한다.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국가적 사명감을 담은 산업 정책과 사업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이재용 체제의 삼성이 이런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해 낸다면,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서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할 수 있을 것이다.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되, 그 과정에서 삼성의 근본적 가치와 정체성을 잃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새로운 시대의 삼성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다.
삼성의 행보는 대한민국의 미래와 직결돼 있다. 삼성은 이미 국내 기업이 아니다. 매출의 90%가 해외에서 이뤄진다. 국내에서 발생하는 각종 이슈를 넘어 세계 경영에 전력투구해야 한다. 삼성의 경영이 곧 한국 경제이고, 국민의 기대다. 삼성전자가 한때 우리나라 국내총생산의 8%에 달하는 조세를 부담했다는 사실을 기억하는가. 단순 계산상으로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이 몇 개만 더 존재한다면 국민 개개인의 세금 부담을 획기적으로 경감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이런 기업을 더 키워내지 못하고 있는지 반성해야 한다.
이젠 삼성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도 글로벌 기준에 맞춰야 한다. 삼성은 세계를 상대로 하는 기업인데, 국내법으로만 규제하는 것은 난센스다. 국내 공정거래를 100번 논의하기보다 국제적으로 공정거래를 요구할 수 있는 자세와 시야를 키워야 한다. 올림픽에서 국가대표 선수를 응원하듯 글로벌 시장에서 싸우는 국가대표 기업들을 성원하는 마음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목소리를 내어 불필요한 규제 완화를 타파하고 기업이 세계 무대에서 마음껏 경쟁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도록 정부와 정치권에 요청해야 할 시점이다.
이제 10년을 넘어 20년, 30년을 바라보는 삼성의 담대한 서사를 써나갈 때다. 이재용 회장은 이미 그만의 스토리를 차근차근 만들어가고 있다. ‘뉴 IT 혁신’을 주도하고 삼성그룹을 미래 성장동력 중심으로 재편하며, 바이오 사업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일론 머스크가 화성 이주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하나씩 현실로 만들어가듯, 제프 베이조스가 인류의 생활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혁신을 이뤄냈듯,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닌 인류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담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면 대한민국과 미래 세대의 축복이 될 것이다. 그 길에 삼성이 앞장서면 어떨까 하는 꿈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