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쓴소리 곧은 소리]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중립성 믿을 수 있나?
노무현·박근혜 탄핵심판 땐 ‘법리 판단’임을 분명히 해 정치 편향 논란 없어 지금 헌재는 “형사소송만큼 증거 따지거나 방어권 보장 못 해준다”고 해 불신 자초
탄핵 정국이 심화되면서 헌법재판소의 역할과 비중은 더욱 부각되고 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면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에 대한 불복까지도 우려되고 있다.
돌이켜보면, 2004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 기각 결정이나 2017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 인용 결정은 당시의 갈등과 혼란을 정리하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조만간 내려질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정이 그때와 같이 갈등과 혼란을 잠재울 수 있을까?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에서 헌법재판소는 우리나라의 탄핵제도가 사법적 탄핵임을 전제로 직무집행에 있어 위헌·위법한 행위만 탄핵심판의 대상이 됨을 확인했고, 정치적 탄핵소추 사유(당시 탄핵소추 사유로 제시되었던 측근비리, 대통령의 실정 등)를 심판 대상에서 배제했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의 위법행위로 지적되었던 선거법 위반에 대해서는 불법의 중대성이라는 기준을 제시하면서 기각 결정을 내렸다.
“우리법연구회에 점령되었다”는 비판까지
헌법 제65조 제1항에 명시된 직무집행에서의 위헌·위법한 행위라는 탄핵소추 요건과 달리 불법의 중대성은 헌법재판소가 이 판례에서 처음 사용한 것이며, 이후 모든 탄핵심판의 핵심적 기준으로 계속 적용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경우에는 기자간담회에서 열린우리당에 대한 지지를 말한 것이 선거중립의무에 위반되는 것이어서 위법은 맞지만, 3·15 부정선거 등과 같이 공권력을 이용해 선거에 개입한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을 파면시킬 정도의 중대한 불법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비교적 간명하게 국민에게 탄핵 기각 결정의 이유를 납득시킬 수 있었다. 예컨대 교통법규 위반이나 경범죄 처벌법 위반을 이유로 탄핵을 하는 것은 과도한 것이며, 헌법상의 비례성 원칙에도 위배된다는 점에 대한 공감이 있었기 때문에 노무현 대통령이 복귀한 이후에 탄핵 기각 결정의 후유증 없이 갈등과 혼란이 정리될 수 있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에서는 십여 가지의 탄핵소추 사유가 제시되었으며, 헌법재판소는 그중 일부는 인정하지 않았으나 이른바 비선실세 최순실의 국정 개입을 허용한 각종 행위의 위헌성을 인정하면서 탄핵 인용 결정을 내렸다. 당시에 박근혜 대통령의 변호인단은 법리논쟁을 치열하게 전개하지 않았으며 많은 국민이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법적 근거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러나 당시 헌법재판관 만장일치인 8대0으로 결론이 내려짐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판단은 정치적 입장에 따른 판단이 아닌, 법리적 판단이라는 점이 널리 인정되었다. 재판관들의 임명 배경이나 정치적 성향과 무관하게 모든 재판관이 위헌성을 인정했기 때문에 국민도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신뢰하고 존중했던 것이다.
그런데 과거와는 달리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편향성이 계속 논란이 되면서 헌법재판소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있으며, 급기야 탄핵 불복 가능성까지도 이야기되고 있다.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이 되었으며, 어떻게 풀어야 할까?
헌법재판소의 정치적 편향성 문제를 윤 대통령 측에서 많이 이야기했던 것은 맞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그 빌미를 제공했다는 점은 중요하다. 국민이 정말로 헌법재판소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신뢰한다면, 탄핵심판 당사자의 주장 때문에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 최근의 여러 가지 편향성 논란은 헌법재판소가 자초한 측면이 많고, 이를 적절하게 해명하지 않음에 따라 국민 가운데 의혹과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헌법재판소가 편향성 논란을 초래한 부분들은 다음의 몇 가지로 정리될 수 있다.
첫째, 헌법재판소법 제40조에서는 탄핵심판에서 형사소송에 관한 규정을 민사소송에 관한 규정에 우선하여 준용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는 계속해서 탄핵심판이 형사소송이 아닌 헌법재판이기 때문에 형사소송만큼 엄격한 증거를 따지거나 방어권을 보장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마은혁 문제’에 정치적 배경 의혹
둘째, 국회 소추위원단에서 탄핵소추 사유 중 내란죄 부분을 철회하겠다고 한 것과 관련해 헌법재판소의 권유에 따른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되었다. 헌법재판소는 권유한 적이 없다고 말했고, 국회소추단의 김진한 변호사는 자신의 실언이었다고 말했지만 그것만으로 의혹이 깔끔하게 해소되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셋째, 문형배·이미선·정계선 재판관에 대해 SNS의 글이나 남편의 문제, 동생의 문제 등이 제기되어 그 편향성 논란이 날카로웠고, 그로 인해 헌법재판소가 우리법연구회에 의해 점령되었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 헌법재판소가 이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해소하려 하기보다는 사법부의 권한 침해에 대한 우려를 내세우는 것은 오히려 국민의 불신과 불만을 자극할 뿐이었다.
넷째, 이진숙 방통위원장 탄핵심판에서 4대4의 결정이 나왔다. 사안에 따라 재판관들의 의견이 엇갈리는 경우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런데 이 4대4 결정은 법리적 판단에 따른 이견이 아니라 재판관들의 임명 배경 내지 정치적 성향에 따른 차이라는 점을 분명히 드러냈다. 이런 상황에서 재판관들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우려가 근거 없는 것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다섯째, 마은혁 후보자에 관한 권한쟁의심판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사안의 중대성 때문에 다른 사건들에 우선하여 결정한다고 말했다. 그러면 마은혁 후보자의 선출 내지 헌법재판소의 8인 체제를 9인 체제로 바꾸는 것이 국정 혼란과 공백의 가장 큰 요인의 하나인 한덕수 총리에 대한 탄핵심판보다 더 시급하다는 것인데, 국민은 이에 공감하지 못한다. 오히려 헌법재판소가 자기 문제만 중요시한다는 비판,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심판 결정도 8인 체제에서 내려졌다는 반론, 그리고 마은혁 후보자의 정치적 성향 때문에 서둘러 임명하려 한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과거의 노무현·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처럼 갈등과 혼란을 종식시킬 수 있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모든 면에서 국민의 신뢰를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갈등과 혼란을 오히려 확대하는 것이 될 것이다. 지난 30여 년 동안 헌법재판소가 쌓은 국민의 신뢰와 존중이 한순간에 무너질까 크게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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