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례품도 사업도 확 달라져” ‘고향사랑기부제’ 성공 뒤에 ‘이것’ 있었다
족쇄 푼 행안부…정부 독점 플랫폼 민간에 개방하고 기부 한도 2000만원으로 늘려 ‘지역 소멸 막아보자’ 힘 합친 공무원…골목시장 뛰어다니며 ‘답례품’ 찾아나서
시행 3년 차를 맞은 ‘고향사랑기부제’가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시행 첫해인 2023년, 낮은 인지도에도 연 650억원을 모금하더니 무서운 속도로 늘어나 지난해에는 880억원이 모였다. 전국에서 이어진 기부 행렬은 24년 전 사라진 소아과를 부활시켰고, 해체 위기에 놓인 발달장애 야구단을 소생케 했다. 이런 분위기에 발맞춰 행정안전부는 당초 연 500만원이었던 기부 한도를 올해부터 2000만원으로 높였다. 이제 고향사랑기부제는 ‘단순한 기부’를 넘어 소멸 위기에 놓인 지방을 살릴 ‘구원투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광주 동구, 63%는 민간 플랫폼 통해 모아
고향사랑기부제는 자신의 주소지를 제외하고 고향이나 원하는 지방자치단체에 연간 2000만원 이내에서 기부하면 세액공제와 지역 답례품 수령 등 혜택을 받는 제도다. 2월22일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지난해 고향사랑기부금은 약 880억원으로 전년 650억원보다 35.4%(230억원) 늘어난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 기부 건수도 약 79만 건으로 파악된다. 이는 전년 대비 50%가량 증가한 수치다.
고향사랑기부제의 성공 비결은 크게 3가지로 나눠볼 수 있다. 먼저 정부 통합 플랫폼인 ‘고향사랑e음’을 통해서만 기부금을 받아왔던 행안부가 민간 플랫폼에도 길을 터주면서 기부금을 대거 모을 수 있었다. 당초 행안부의 고향사랑e음을 통한 기부는 기부자가 지역을 선택해 일정 금액을 납입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이 때문에 인지도가 낮은 지역은 해당 지역 출신들의 애향심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이런 한계를 목도한 민간 플랫폼은 ‘지역’이 아닌 ‘프로젝트’에 기부해 달라고 설득했다. 예를 들어 ‘발달장애 청소년 ET 야구단에 희망이 되어주세요’ ‘소아과 진료를 볼 수 있게 해주세요’ 등 각 지역이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는 데 민간이 참여해 달라는 식이다. 민간 플랫폼 방식으로 기부금을 모금했던 지자체들은 기부자의 참여율과 만족도 측면에서 행안부 방식보다 큰 성과를 냈다. 지난해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기부금 1위를 기록한 광주시 동구는 전체 기부금 23억9000만원 중 63%인 14억8900만원을 민간 플랫폼 ‘위기브(Wegive)’를 통해 모았다. 민간 플랫폼의 지정기부 방식이 성공가도를 달리자 행안부도 입장을 전격 선회했다. 지난해 6월부터 지정기부 방식을 도입한 것이다.
민간 플랫폼이 뛰어드니 홍보도 전문적으로 이뤄졌다. 지역이 당면한 이슈를 어떻게 대중에게 설명하면 좋을지 민간 플랫폼이 구체적인 전략을 세워준다는 것이다. 충청북도에서 가장 많은 금액을 모금한 진천군도 위기브의 도움을 받았다. 진천군청 민간협력팀에서 고향사랑기부제 업무를 담당한 김민형 팀장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지역 밖의 사람들에게 고향사랑기부제를 홍보하는 것이 가장 어려웠다”며 “보도자료를 배포하거나 출향인들에게 홍보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위기브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홍보 방안을 제시해 줬다”고 강조했다.
특산물 ‘쌀’이 햇반으로 변신?…답례품도 진화
고향사랑기부제의 또 다른 성공 요인은 답례품 품질이 획기적으로 향상됐다는 점이다. 그 배경에는 지자체 공무원들이 골목상권 곳곳을 누비며 답례품을 찾아다닌 노력이 숨어있다. 광주시 동구청에서 고향사랑기부제 업무를 담당한 김희선 기획예산실 팀장은 팀원 2명과 함께 구내에 있는 상가란 상가는 전부 돌아다녔다고 한다. 김 팀장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동구는 구도심이라 공장이 없어 답례품 업체를 선정하기가 정말 힘들다”고 털어놨다.
구청 직원들이 답례품을 제작하는 상인들의 일손을 돕기도 했다. 김 팀장은 “부부가 운영하는 정육점이라 하루에 400~500개에 달하는 답례품을 제작하기 힘든 상황이었다”면서 “조금이라도 도움을 드리기 위해 직원들이 고향사랑기부제 마크가 있는 테이프와 박스를 제작해 직접 포장까지 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노력에 상인들도 화답했다. 정량이 1.1kg이었던 삼겹살을 1.7kg으로 늘린다거나 또 다른 답례품인 김치를 1kg 더 제공했다는 것이다.
대기업과의 합작으로 경쟁력 있는 답례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쌀이 유명한 진천군은 CJ푸드빌과 협업해 진천 쌀로 만든 햇반을 만들었다. CJ푸드빌 공장이 진천군에 위치한 점도 한몫했다. 기부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진천군에서 준비한 33가지 답례품 중 진천 쌀로 만든 햇반과 햄이 담긴 선물 꾸러미가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 김민형 팀장은 “기부자들이 ‘진천 쌀로 만든 햇반도 있느냐’며 많은 관심을 보였다”면서 “아무래도 햇반을 자주 먹는 2030세대가 많이 선택한 것 같다”고 했다.
기부금 용처를 공개해 투명성을 제고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위기브는 충청남도 부여군과 함께 ‘한국전쟁 참전 유공자의 집을 지켜주세요’라는 지정기부를 진행할 당시 기부금 사용 계획을 기부자에게 밝혔다. 장판 교체에는 120만원, 도배 교체에는 200만원, 화장실 리모델링에는 300만원이 사용된다는 등 구체적 금액까지 명시했다. 동구청과 진행한 ‘발달장애인 야구단 살리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유니폼, 주말 훈련을 위한 감독비, 야구장 임차료 등에 얼마가 사용될 예정인지 공개해 기부자와 신뢰를 쌓았다.
위기브를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 ‘공감만세’의 고두환 대표(41)는 “과거 기부금과 관련한 불미스러운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초기에 투명성과 신뢰도를 높여야 제도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기부자들에게 매주 뉴스레터를 보내 어떤 프로젝트에 얼마가 사용됐는지 알려주니 믿고 선뜻 기부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고향사랑기부제’ 롤모델, 일본 ‘고향납세’는 어떻게 죽어가는 마을 소생시켰나
[현지르포] 유기견 살처분 1위 ‘진세키코겐정’
고향세 활용한 ‘유기견 프로젝트’로 2030 일자리 창출까지
일본 히로시마현의 진세키코겐정(神石高原町)은 인구 8100여 명이 거주하는 아주 작은 마을이다. 한국에서 소멸 위기로 꼽히는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의 주민 수(1만여 명)보다 인구가 적다. 고령화와 인구 감소의 직격탄을 한국보다 먼저 맞은 곳이기도 하다. 일본 내에서는 이대로면 진세키코겐정이 30년 이내에 소멸할 수 있다는 경고까지 나왔다.
그런데 이 작은 마을이 세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국제긴급구호단체 ‘피스윈즈재팬’이 고향납세를 활용한 ‘피스완코(유기견 보호) 프로젝트’를 시행하면서다. 2011년 기준 일본에서 한 해 살처분되는 유기견은 16만 마리에 달할 정도로 유기견 문제가 심각했다. 특히 진세키코겐정이 속한 히로시마현은 일본 광역지자체 중 살처분된 유기견이 가장 많은 8340마리였다. 그런데 피스완코 프로젝트가 시작된 2013년부터 살처분이 현격히 줄어들더니 2016년, 단 한 마리도 살처분되지 않는 경이로운 기록이 나왔다.
유기견 보호 프로젝트가 성공가도를 달리자 더 많은 기부금이 진세키코겐정에 모였다. 피스완코 사업에는 연간 약 2만 명이 5억 엔(약 46억원) 이상을 기부하고 있다. 이렇게 모인 기부금은 지금까지 약 400억원에 달한다.
탄탄한 자본이 뒷받침되면서 일자리도 창출됐다. 자연스레 2030 청년들이 하나둘씩 진세키코겐정에 터를 잡았다. 지난해 10월26일 현지에서 만난 이은서씨(29)도 그중 한 명이다. 이씨는 한국 대학에서 반려견 훈련을 전공하다 우연히 피스윈즈의 특강을 듣게 됐다. 취업난이 심각하고 주거비 부담이 큰 수도권과 달리, 기숙사가 제공되고 전공도 살려 일할 수 있는 ‘유기견 보호 프로젝트’가 그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피스윈즈는 유기견 보호소 옆에 유료 관광시설을 조성해 관광객까지 끌어들였다.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반려견을 데려와 같이 뛰어놀고 캠핑까지 할 수 있는 ‘티어가르텐’이라는 공간이다. 진세키코겐정이 명실상부 ‘반려인들의 명소’로 자리 잡으면서 조용했던 동네는 한순간에 관광객이 북적이는 마을로 변모했다. 이곳에선 고액 기부자들을 대상으로 1박2일 현장 투어도 이뤄진다. 기부자에게 기부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소개함으로써 기부금 사용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재기부까지 이뤄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 것이다.
한국에서도 벤치마킹에 나섰다. 임택 광주시 동구청장을 비롯한 고향사랑기부제 담당 공무원들은 2023년 2월 진세키코겐정을 답사한 뒤, ‘유기견 안락사 제로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이를 위한 기부금도 약 2억9000만원 모였다. 김희선 기획예산실 팀장은 “유기견을 최대한 많이 입양해 안락사를 줄이고자 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진세키코겐정처럼 유기견 사업을 통해 일자리를 창출해 도심을 활성화하고자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