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에 대한 학대? ‘마장마술’에 대한 오해와 진실 [김지나의 그런데 말(馬)입니다]

‘승마의 발레’ 마장마술, 복종 아닌 소통의 스포츠 기수와 신뢰 두터울수록 자연스러운 부자연한 동작들

2025-02-10     김지나 아마추어 승마선수
귀족사회의 문화로서 마장마술이 시작된 대표적인 기관 중 하나인 스페인 승마학교(Spanische Hofreitschule)의 모습. 1572년에 설립돼 현재까지 전통이 이어져 오고 있다.ⓒHorsePointTV 유튜브 채널

승마경기에는 ‘마장마술(Dressage)’이란 종목이 있다. ‘승마의 발레’, ‘음악에 맞춰서 말이 연기를 하는 종목’, ‘일정 규격의 마장에서 과목을 얼마나 정확하게 하는지 평가하는 것’이라 묘사되곤 한다. dressage는 본래 프랑스어로 ‘훈련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중세 영어에서는 dress가 ‘말이나 동물을 길들이다’라는 뜻이었다고 한다.

‘말 훈련법’으로서 마장마술의 시작은 고대 그리스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기원전 4세기 소크라테스 제자였던 크세노폰은 《승마술에 관하여(On Horsemanship)》이라는 책을 남기기도 했다. 그 당시 마장마술은 경기장에서 승부를 겨루는 스포츠가 아니라, 전쟁터에서 빠르고 정교하게 움직이기 위한 군사 훈련이었다.

1920년 안트베르펜 올림픽 마장마술 경기 장면. 1952년 헬싱키 올림픽 이전까지 마장마술은남성군인들만 출전할 수 있는 경기였다.ⓒOlympics 유튜브 채널

중세가 저물고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면서 마장마술은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중심으로 귀족들의 특별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흔히 승마를 ‘귀족스포츠’라 부르는 데는 단지 돈이 많이 들어서가 아니라, 진짜로 귀족들이 즐기던 활동이었기에 격식과 예의를 엄격히 차린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면서 우아하고 예술적인 특징들이 생겨나, 점차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승마의 발레’가 완성된 것이다.

근대 스포츠로서 승마경기가 도입된 이후에도 마장마술이 ‘군마(軍馬) 훈련법’이란 인식은 한동안 이어졌다. 선수 대부분이 남성군인이었고, 말을 전장에서 활용하기 위해 얼마나 훌륭히 훈련시켰는지를 심사했다. 특히 기수 명령에 말이 잘 순응하고 복종하는 것이 중요한 자질로 평가됐다.

토틸라스와 에드워드 갈의 2009년 런던올림픽 세계신기록 경기 모습. 피아페, 파사지 동작을 볼 수 있다. 원본 링크로 들어가서 음악과 함께 감상하길 추천한다. ⓒ출처: FEI 유튜브 채널

말과 기수 간 소통과 조화도 중요한 심사 기준

변화가 시작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이후부터였다. 남자들이 전쟁에 나가 있는 동안 여성 사회 참여가 활발해졌고, 스포츠 분야도 예외가 아니었다. 특히 승마에서 여성 선수들이 많아지자 1952년 국제승마연맹(FEI)은 군인에 한정하던 출전 규정을 폐지했다. 그리고 그해 열린 헬싱키 올림픽 마장마술 종목에서 여성이 은메달을 차지했는데, 바로 소아마비로 하반신이 마비돼 말에 오르는 것조차 혼자 할 수 없었던 ‘리즈 하텔’이다. 그녀는 승마가 군인이나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말을 ‘활용’하고 ‘복종’시키는 것이 아닌 말과 ‘협력’하고 ‘소통’하는 스포츠임을 각인시켰다.

이후로 마장마술에서는 말과 기수가 얼마나 조화를 이루는지, 말이 얼마나 자연스럽게 움직이는지가 관건으로 떠올랐다. 그런데 승마를 잘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 마장마술 과목 운동을 하고 있는 모습이 마치 인간이 말에게 억지로 힘든 묘기를 시키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모양이다. 마장마술 경기 장면이 담긴 영상에는 어김없이 ‘제발 말이 자연스럽게 살도록 내버려둬!’ 같은 댓글이 달리곤 한다. 예를 들어 최고난도 기술로 꼽히는 ‘피아페(Piaffe, 제자리에서 걸음걸이를 유지하며 앞다리와 뒷다리를 들어 올리는 운동)’나 ‘파사지(Passage, 다리를 높이 들면서 리드미컬하게 전진하는 운동)’ 같은 동작들은 말이 자연 상태에서는 절대 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움직임이란 것이다.

블루 호스 마티네와 안드레아스 헬그스트란드의 2006년 그랑프리 경기모습. 원본 링크로 들어가서 음악과 함께 감상하길 추천한다. ⓒ DressageHub 유튜브 채널(https://youtu.be/_n61NJSctAU?si=ubK19CUCjBCEUW_n)

행복하게 운동하는 말은 아무도 이길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동작들은 올바른 훈련이 이루어진다면 말에게 부담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균형과 리듬을 돕는 운동이 된다. 네덜란드의 토틸라스(Totilas), 영국의 발레그로(Valegro), 덴마크의 블루 호스 마티네(Blue Hors Matiné) 등, 전설적인 마장마술 말들 중에는 훈련이나 경기가 끝난 이후에도 스스로 피아페나 파사지를 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관중의 환호를 들으면 더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기도 했고, 정말로 마장마술을 즐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다. 이런 이야기들도 누군가는 ‘말의 자연성을 거스르는 학대’라 주장할지 모르겠으나, 이 한가지만은 분명하다. 일방적이고 강압적인 방식으로 겉모양을 흉내 낼 수 있을지 몰라도, 행복하게 운동하는 말이 만들어내는 퍼포먼스를 이길 수는 없다는 사실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수의 태도와 마음가짐이다. 말은 결코 멍청하지 않다. 하기 싫으면 반항도 하고 적극적인 감정 표현을 하는 동물이다. 그런 말이 소위 ‘자연스럽지 않은 동작’을 기꺼이 하는 것은 기수에게 굴복해서가 아니라 그만큼 신뢰가 돈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승마가 어렵다. 사람의 언어가 통하지 않는 상대에게 믿음을 주고 호흡을 맞추는 과정이 쉬울 리가 없다. 때문에 어떤 이는 쉽게 말을 탓하고, 또 어떤 이는 ‘이렇게 어려운 일이 가능할리가 없어. 이건 분명 동물학대야!’라고 엉뚱한 결론을 내리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