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으로 자신이 당한 고통과 억울함 알리고자 했던 오요안나 [정락인의 사건 속으로]

MBC 기상캐스터 오씨 극단 선택 후 뒤늦게 휴대전화에서 유서 발견 가해자 지목된 선배들과의 녹취록·대화 내용 캡처 등 남겨

2025-02-14     정락인 탐사저널 사건전문기자

하마터면 묻힐 뻔했던 한 방송국 기상캐스터의 죽음이 뒤늦게 세상에 드러나며 충격을 주고 있다. 그는 더 이상 살아갈 희망이 없다고 판단되자 죽음으로써 자신이 당한 고통과 억울함을 만천하에 알리고자 했다. 

2024년 9월6일 오전 2시쯤 서울 마포구 상암동 가양대교 북단에서 20대 여성이 다리 난간으로 올라가 뛰어내리려고 시도했다. 이때 지나가던 한 여성이 순간적으로 머리채를 붙잡아 난간 아래로 끌어내리면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그를 인근 파출소로 데려간 후 가족에게 연락해 인계했다. 

투신을 시도한 여성은 MBC 기상캐스터인 오요안나씨(여·28)였다.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를 졸업한 오씨는 방송 분야 진출을 모색하다가 대학 재학 시절인 2017년 JYP 13기 공채 오디션에 참가해 입상했다. 2019년 춘향선발대회에서 ‘숙’(5위)으로 입상했으며, 같은 해 11월 SBS 슈퍼모델 선발대회에 참가해 본선에 진출했다. 한때 아이돌 연습생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오요안나 인스타그램

오씨 측, 선배 기상캐스터들 가해자로 지목

2021년 MBC 프리랜서 기상캐스터 공채에 합격한 후에는 평일과 주말 날씨 예보를 담당했다. 오씨는 자신의 직업에 상당한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이런 오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했던 것이다. 오씨는 가족이 “왜 죽으려고 그랬냐”고 묻자 “직장이 힘들다. 등뼈가 부러질 것같이 아프고, 창자가 다 끊어질 것처럼 힘들어 사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차라리 편안해지고 싶다”고 말했다. 가족들은 상태가 심각하다고 판단하고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했으나 오씨는 “방송을 해야 한다. 광고도 계약해 놔서 찍어야 한다. 안 죽는다. 그냥 홧김에 해본 거다”라며 거부했다.

이후에도 오씨는 두 차례 더 극단 선택을 시도했고, 결국 첫 시도 9일 만인 9월15일 가양대교에서 투신해 사망한다. 유족들은 사망 석 달 후인 12월10일 언론에 부고를 알렸으나 사인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다 1월27일 비밀번호가 풀린 오씨의 휴대전화에서 원고지 17장 분량의 유서가 발견됐고, 여기에는 동료들에게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오씨는 투신 직전 자신의 휴대전화 메모장에 장문의 유서를 남겼는데, 괴롭힘의 가해자로 선배 기상캐스터 2명을 지목했다. 오씨 계정에 있는 카카오톡 대화 내용과 그가 남긴 녹음파일 등에서도 괴롭힘 정황이 나왔다.

유서 내용을 최초 보도한 매일신문에 따르면 오씨는 입사 10개월 후인 2022년 3월부터 가해자로 지목된 선배들의 괴롭힘 대상이 됐다. 입사 선배인 가해자들은 자신이 오보를 내고도 오씨에게 뒤집어씌우거나, 퇴근시간이 지난 뒤 ‘가르쳐야 한다’는 이유로 회사로 호출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이후에도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오씨를 괴롭히거나 비난해 왔다는 것이다. 같은 해 11월 오씨는 tvN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럭》 제작진으로부터 섭외 요청을 받았다. 선배 기상캐스터에게 미리 알리지 않고 프로그램 촬영이 확정되자 선배 중 한 명이 “너 뭐 하는 거야? 네가 유퀴즈 나가서 무슨 말 할 수 있어”라며 비하하기도 했다.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이후 괴롭힘의 수위는 더욱 높아졌는데, 그 밑바탕엔 시기와 질투가 깔려 있다. 괴롭힘을 주도한 동료이자 선배 기상캐스터들은 오씨와 동기 한 명 등 2명을 제외한 4명과 스태프들이 참여하는 비밀 단톡방을 만들어 운영하기도 했다. 두 명을 노골적으로 왕따시킨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다. 

오씨는 지난해 8월26일부터 29일까지 기상뉴스를 진행할 때 왼팔 손목에 밴드를 붙이고 나왔는데, 자해를 시도한 흔적으로 추정됐다. 이런 사이 고통이 줄어들기는커녕 더욱 커져만 갔고, 10여 곳의 정신과를 다니며 힘겹게 버텨 나갔다. 오씨의 심리적인 마지노선이 무너진 것은 비밀 단톡방의 존재가 드러나면서다. 그는 처음에는 이 단톡방의 존재를 몰랐다가 나중에 이런 사실을 알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단톡방 멤버 중 누군가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자신을 험담하는 내용을 파악하고, 대화 내용을 캡처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그의 휴대전화에는 자신을 언급한 단톡방 대화 내용 캡처 사진들이 빼곡히 저장돼 있었다.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오요안나 방송화면 캡처

가해자 지목된 이들, SNS 댓글창 닫고 침묵

유족이 공개한 내용을 보면 “완전 미친 X이다” “몸에서 냄새 난다” “(더 글로리) 연진이는 방송이라도 잘했지” “자기애가 강하고 공감 능력이 떨어진다” “말도 안 듣고 도대체 싸가지 없다” “후배라고 취급하지 말자” “아침 방송하는데 술 냄새 난다” “피해자 코스프레 겁나 해. 우리가 피해자” 등의 내용이 들어있었다. 가해자로 지목된 한 명은 퇴근한 오씨를 불러내 폭언에 가까운 말을 쏟아냈다. 오씨는 휴대전화로 대화를 녹취했는데, 여기에는 “선배한테 그게 할 태도냐. 네가 여기서 제일 잘났냐” “위아래가 없다” “너, 너무 건방지고 너무 사람을 어쩌라는 식으로 대한다” 등 모멸감을 느낄 정도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유족은 녹취록 내용을 공개했다.

유족 측은 “죽음을 결심한 뒤 카톡, 녹음기록 등의 자료들을 휴대전화에 저장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며 “살아있으면 이걸 알릴 방법이 없으니까. 죽어서라도 알리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고 말했다. 오씨는 극단 선택을 하기 전 주변에 고통스러운 상황을 토로했다. 직장 동료에게는 “이런 소리 들을 만큼 최악인가 싶어서” “내가 기상팀 존폐를 논할 만큼 잘못하고 있나?”라는 메시지를 보내며 하소연했고, 친구들에게도 “직장생활이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는 말을 종종했다.

유족 측은 오씨가 사망하기 전 MBC 관계자 4명에게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렸으나,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지금의 고통스러운 상황이 개선될 수 없다고 판단되자 죽음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오요안나씨 생전에 MBC 기상캐스터는 6명이었다. 오씨는 이 중 선배 2명을 가해자로 지목했지만, 유족 측은 오씨의 동기 한 명을 제외한 비밀 단톡방에 참여한 기상캐스터 4명 모두 가해자라고 주장했다. 

현재 가해자로 지목된 기상캐스터들은 공식적인 입장을 표명하지 않은 채 SNS 계정 댓글창을 닫아놓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 일부 언론이나 유튜브, SNS 등에는 가해자로 지목된 기상캐스터들의 실명과 사진 등이 거론되고 있다. 오씨가 생전에 남긴 메모와 병원 진단서 등이 공개되며 가해자들에 대한 비난 수위도 더욱 높아지고 있는 양상이다.

유족은 가해자로 지목된 이들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섰다. 우선 주된 가해자로 지목된 A씨를 상대로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유족 측은 소장에서 고인이 공개적인 폭언과 모욕, 언어적 괴롭힘을 당했으며, 괴롭힘이 2년간 이어져 왔다고 주장했다. 소송 이유에 대해서는 “직장 내 우월한 지위를 이용한 폭력이나 불행한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나머지 3명에 대해서는 가해 정도에 따라 추가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유족 측은 MBC의 소극적 대응도 문제 삼고 있다. 오씨가 생전에 MBC 관계자에게 피해 내용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한 녹취록이 있다는 것이다. 회사가 적극적으로 대처했다면 비극을 막을 수 있었다는 것이 유족 측의 주장이다. 오씨 사망 이후 사내 부고를 내지 않은 것에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MBC는 언론을 통해 오씨의 직장 따돌림 의혹이 제기되자 유족 측의 진상 규명 요구에 적극 협조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MBC는 “고인이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자신의 고충을 담당부서(경영지원국 인사팀 인사상담실, 감사국 클린센터)나 함께 일했던 관리 책임자들에게 알린 적이 전혀 없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회사에 공식적으로 고충을 신고했거나 책임 있는 관리자들에게 피해 사실을 조금이라도 알렸다면 회사는 당연히 응당한 조사를 했을 것”이라고 했다. 또한 “MBC는 직장 내 괴롭힘에 대해서는 가혹할 정도로 엄하게 처리하고 있으며, 프리랜서는 물론 출연진의 신고가 접수되거나 상담 요청이 들어올 경우에도 지체 없이 조사에 착수하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MBC는 2월3일 자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외부 인사를 위원장으로 위촉해 본격 조사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에 착수했다. 노동부는 앞서 MBC 측에 자체 조사를 실시하도록 지도했고, 자체 조사 진행과 사측의 자료 제출 상황 등을 토대로 특별근로감독 실시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최근 유족이 MBC 자체 진상조사에 불참 의사를 표명하고, 고인 외 추가 피해 문제가 제기된 데 더해 노동조합의 특별감독 청원이 있던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특별근로감독에 착수하게 됐다고 밝혔다. 서울 마포경찰서도 해당 사건을 수사해 달라는 국민신문고 민원을 접수해 내사를 시작했다. 

생전 오요안나가 남긴 메모와 진단서 ⓒ온라인 커뮤니티

MBC의 경직된 조직문화에 대한 지적도 

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MBC의 경직된 조직문화를 개선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기상캐스터들은 보도국 기상팀에 소속돼 있다. 이들의 신분은 정직원이 아닌 프리랜서다. 전직 MBC 기상캐스터들은 직장 내 괴롭힘이 특정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닌 ‘뿌리 깊은 조직문화’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MBC 기상캐스터 출신 방송인 박은지씨는 고인을 애도하며 사내 괴롭힘 문화를 비판했다. 그는 자신의 SNS 계정에 “언니도 7년이라는 그 모진 세월 참고 또 참고 버텨봐서 안다. 그 고통이 얼마나 무섭고 외로운지… 도움이 못 돼줘서 너무 미안하다”며 “뿌리 깊은 직장 내 괴롭힘 문화, 이제는 끝까지 밝혀져야 한다”고 말했다.

같은 방송 기상캐스터 출신 방송인 배수연씨도 SNS 계정을 통해 “마음이 너무나도 아프다”며 “내가 MBC를 나오던 그때도 그랬었지. 그들의 기준에서 한낱 프리랜서 기상캐스터였던 나의 목소리에는 누구 하나 전혀 귀 기울여주지 않았다”고 적었다. 이어 “너무나도 사랑했던 일과 일터였지만 그때 그곳의 이면을 확실히 알게 됐었다. 지금은 좀 달라졌을 줄 알았는데 어쩜 여전히 이렇게나 변함이 없다니”라고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이번 사건은 MBC 자체 진상조사, 고용노동부 특별근로감독, 경찰 수사 등에 따라 진상이 좀 더 자세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에 따라 후속 조치와 사법처리 등이 뒤따를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