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원 2세의 ‘헛발질’에 창업주 시름도 깊어진다
남승우 창업주 은퇴 후 전문경영인 체제로 매출 첫 3조 돌파 2세 회사 올가홀푸드는 자본잠식…천문학적 상속세도 ‘골치’
풀무원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회사다. 사실상 창업주인 남승우 전 총괄사장(현 풀무원재단 이사장)이 2017년 은퇴하면서 자녀가 아니라 전문경영인인 이효율 대표(현 이사회 의장)에게 경영을 맡겼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풀무원 ‘사원 1호’로 입사해 34년간 자리를 지킨 원조 ‘풀무원맨’이다. 편법적인 방법으로 2세나 3세에게 회사를 승계하는 데 혈안이 돼있는 재계에 큰 울림을 줬다는 평가를 받았다.
물론 전문경영인 체제 초기만 해도 잡음이 적지 않았다. 당장 실적이 내리막길을 걸었다. 이 대표 취임 첫해인 2018년 풀무원의 매출과 영업이익은 각각 2조2270억원과 42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대비 매출은 소폭 상승했지만, 영업이익은 23.7%나 감소했다. 이듬해에도 영업이익은 306억원으로 27.1%나 줄어들었다. 이 대표 취임 초기 1만8000원을 오르내리던 회사 주가는 2020년 3월 7000원대까지 떨어졌다. 이 대표의 자질론이 회사 안팎에서 불거졌던 이유다. 일부에서는 “오너인 남 전 사장이 경영에 다시 복귀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까지 나왔다.
풀무원 관계자는 당시 시사저널에 “2018년부터 해외사업의 방향을 바꿨다. 현지에서도 반응이 좋은 만큼 실적 턴어라운드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주가 폭락과 관련해서도 이 관계자는 “대주주인 국민연금의 포트폴리오 조정 과정에서 주가가 크게 하락했다”면서 “주주총회 의결을 거쳐 액면분할을 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소유와 경영 분리 선언의 이면 보니…
회사 측의 설명대로 풀무원 실적은 2020년 들어서면서 회복세로 돌아섰다. 2021년부터 3년 연속 매출이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고점이던 2017년을 넘어섰다. 지난해에는 실적 상승 폭이 더 컸다. 매출이 사상 처음으로 3조원을 돌파했다. 영업이익 역시 921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는 영업이익 ‘1000억 클럽’에 가입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주요 증권사들도 풀무원의 목표 주가를 잇달아 상향 조정했다. 장지혜 DS증권 애널리스트는 “K푸드에 대한 관심 증가로 해외에서 외형이 많이 성장했다. 특히 미국과 중국에서 매출이 크게 증가했다”면서 “해외사업 매출 비중 역시 2019년 15%에서 2024년 20%로 확대되면서 수익성 개선이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지난해 국내 식품 업계가 원자재 가격 상승과 내수 부진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과 비교된다.
무엇보다 풀무원은 올해부터 2기 전문경영인 체제를 가동한 상태다. 공채 출신인 이우봉 대표가 1월1일부터 총괄CEO에 취임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풀무원의 성장을 이끌었던 이효율 대표는 이사회 의장으로 경영에서 한발 물러났다. 신임 이 총괄CEO는 풀무원의 4대 핵심 과제로 지속 가능 식품 확장과 글로벌 시장 확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강화, 푸드테크를 통한 미래 대응 등을 제시한 상태다. 자녀가 아니라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맡긴 남승우 전 총괄사장 입장에서는 부담을 덜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남 전 총괄사장에게는 여전히 ‘손톱 밑 가시’ 같은 존재가 있다. 장남인 남성윤 풀무원 USA 영업본부장의 거취가 그것이다. 남 본부장은 현재 그룹의 모태 회사 격인 올가홀푸드의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올가홀푸드는 유기농 제품 유통회사로, 2014년 풀무원아이씨로부터 지분을 넘겨받았다. 문제는 이 회사의 적자가 매년 쌓이고 있다는 점이다. 남 전 사장은 2015년부터 6차례에 걸쳐 자신이 보유한 풀무원 주식 640만 주를 회사 자금 차입을 위한 담보로 제공했다. 전체 주식(2173만5780주)의 29.4%로, 담보 설정금액은 504억원에 이른다. 그럼에도 올가홀푸드의 경영 상황은 여전히 호전되지 않고 있다.
올가홀푸드는 2023년 처음으로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했다. 매출은 833억원으로 전년 대비 6.0% 증가했고, 영업이익은 9억원으로 적자에서 흑자로 전환했다. 이 회사가 영업이익 흑자를 기록한 것은 처음 감사보고서를 공개한 2005년 이후 18년 만이다.
하지만 이미 적자가 누적될 대로 누적된 상태다. 2023년 말 기준으로 올가홀푸드의 부채총계는 455억원으로 자산총계(204억원)를 두 배 넘게 웃돌고 있다. 순자산(자본총계)은 -251억원으로 자본잠식에 빠진 상태다. 일시적인 흑자로 꼬인 실타래를 풀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풀무원 측은 “남 본부장이 올가홀푸드 지분을 모두 해소해 전문경영인 체제로 확실히 정리될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하지만 남 본부장은 오히려 94.95%에서 100%로 지분율을 끌어올리면서 그 배경이 주목된다.
천문학적인 상속세 문제 어떻게 풀까
재계 안팎에서는 남 전 사장이 소유와 경영의 분리를 선언한 것이지, 지분 상속을 포기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 주목한다. 남 전 사장은 현재 풀무원 지분 51.84%를 보유하고 있다. 이 지분을 2세에게 정상적으로 승계하기 위해서는 천문학적인 증여세가 들어간다. 이 때문에 올가홀푸드를 키워 주력 회사인 풀무원의 지분을 매입하는 등 승계 과정에서 어떤 식으로든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시각이 재계에서 꾸준히 제기돼 왔다.
실제로 남 전 사장은 2017년 경영권 승계를 앞두고 자신이 가진 풀무원 지분 10%를 공익재단인 풀무원재단에 기부하겠다고 공언했다. 하지만 8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 약속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배경에는 천문학적인 증여세 폭탄에 대한 부담이 있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해 풀무원 관계자는 “친환경 유통 업계가 최근 동반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올가홀푸드의 경우 그룹의 모태 회사로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적자지만 정리하지 못하고 있다”면서도 “올가홀푸드는 풀무원과 얽힌 지분 관계가 전혀 없다. 이 회사를 통한 2세 승계 또한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다. 앞으로도 현재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유지할 계획”이라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