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시론] 사법부는 왜 사조직에 둔감한가
올 1월 우리법연구회가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과 관련해 격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국민의힘 원내대표 권성동은 1월30일 “헌재가 민주당식 독재에 제동을 걸어야 하지만 문형배 헌재 소장 권한대행과 정계선·이미선 재판관 모두 우리법연구회 출신으로 오히려 공정성 논란을 키우고 있다”며 심판 회피를 촉구했다.
다음 날 헌법재판소 공보관 천재현은 “대통령 탄핵심판 심리 대상은 피청구인(윤석열)의 행위가 헌법이나 법률에 위배되는지와 그 위반 정도가 중대한지 여부”라며 “이에 대한 판단은 헌법과 법률을 객관적으로 적용해 이뤄지는 것이지 재판관 개인 성향에 의해 좌우되는 건 아니다”고 했다. 옳은 말씀이지만, 논란을 잠재우기엔 턱없이 모자란 답변이라는 생각이 든다. 국민의힘의 헌재 비판에 동의하지 않지만 따져볼 건 따져보자.
우리법연구회의 탄생 배경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한겨레 논설위원실장 권태호가 잘 지적했듯이, “우리법연구회는 1987년 민주화 이후에도 노태우 정부가 전두환 시절의 김용철 대법원장을 다시 대법원장으로 임용하려 하자, 소장파 판사 335명이 반대하고 나선 것에서 비롯됐다. 이후 보수적인 법원 내에서 ‘진보적’ 목소리를 내왔다.”
이해하는 정도를 넘어 박수를 쳐줘도 좋을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은 1987년이 아니며 그로부터 30년 넘는 세월이 흘렀다는 사실이다. 우리법연구회는 2018년 해체되었기 때문에 논란의 대상에서 벗어날 만도 한데, 2011년 출범한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법연구회의 후신으로 여겨지고 있는 바람에 논란이 그치지 않는다.
며칠 후엔 국제인권법연구회가 논란의 중심이 되었다. 2월4일 문재인 정부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사건과 관련해 ‘하명 수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주심 판사가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라는 게 ‘문제’가 된 것이다. 공식적으론 아무 문제가 없지만, 관련 기사의 댓글은 국제인권법연구회에 대한 격한 비난 일색이다. 이런 일이 벌써 몇 번째인가. 지겹다!
이런 비난에 대해 ‘재판관 개인 성향’을 따지는 건 부당하다는 반론은 무책임하다. 마키아벨리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의 겉모습을 보지만 당신의 본질을 인지하는 자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했다. 어떻게 보이느냐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재판관의 경우엔 더욱 그렇다. 오해의 소지를 없애 공정하며 믿을 만하다는 이미지나 느낌을 줘야 한다.
판사가 특정한 정치적 성향을 갖는 건 불가피하다고 해서 그걸 온라인 활동을 통해 마구 드러내는 게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다. 그럼에도 과거 문형배의 경우처럼 그게 용인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이는 국제인권법연구회가 특정한 정치적 성향을 갖고 있다고 여겨지는 사조직임에도 용인되고 있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민간 영역인 대기업에서조차 금기시되는 일이 왜 사법부에선 가능할까? 혹 자신의 공정성을 과신하는 법조특권주의 때문은 아닐까? 사법고시 합격 이후 이 사회가 부여하는 온갖 특혜의 홍수 속에서 갖게 된 특이체질 말이다.
대법원장 조희대는 2023년 12월5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국제인권법연구회 문제가 지적되자 “법관은 그런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모임을 절대 하지 않아야 한다”고 말했다. 옳은 말씀이다. 하지만 대법원장에겐 사조직을 금지시킬 수 있는 힘이 없는 것 같다. 집단 전체가 공유하는 법조특권주의 습속 때문일 게다. 자꾸 논란을 낳는 특권을 과감하게 내려놓고 신뢰 회복을 위해 애쓰는 사법부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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