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우산 안보’ 확인한 이시바, ‘1조 달러’ 투자 챙긴 트럼프

방위비 지출·대미 투자·LNG 수입 확대 약속한 일본 이시바, ‘일본의 공헌’ 강조하고 ‘아베 유산’ 활용

2025-02-16     박대원 일본 통신원

미국을 방문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2월7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첫 정상회담을 가졌다. 회담에서 미·일 정상은 서로 간의 개인적 신뢰관계를 구축하는 한편 경제와 안보 두 분야의 미·일 연대를 확인했다. 또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의 실현을 위해 상호 협력하고 미·일 관계의 새로운 황금시대를 추구해 나가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 미·일 정상회담에서 이뤄진 주요 협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경제 분야에서 이시바 총리는 일본이 대미 직접투자에서 5년 연속으로 최대 투자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일본의 대미 투자로 약 100만 명의 고용이 창출되고 있다며 경제 분야에의 ‘일본의 공헌’을 강조했다. 또, 미국의 대일 적자가 감소 추세에 있음을 지적하고 대미 투자를 1조 달러 규모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시도와 관련해서도 일본제철에 의한 ‘매수’가 아닌 ‘투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US스틸은 경영자 및 노동자 등을 유지해 미국 기업으로서 존속할 것”이라고 설명함으로써 트럼프의 긍정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결국,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 계획에 대해 매수가 아니라 큰 투자라는 점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회담에서는 알래스카산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및 공동개발에 대한 논의도 이뤄졌다. 무역적자 축소와 화석연료 증산을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은 대일 LNG 수출을 통해 대일 무역적자를 줄여나가고 싶다는 의향을 밝혔다. 이 외에도 관세 적용 문제, 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에서의 협력 강화 등에 대한 논의가 진행된 것으로 전해진다.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적자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의 옵션으로 다수 국가에 ‘상호 관세’를 부과한다는 방침이다.

2월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워싱턴DC 백악관 동부 회의실에서 열린 공동 기자회견에서 선물을 전달하고 있다. ⓒ연합뉴스

트럼프 “日 방위 위해 美 방위력 100% 활용”

이시바 총리는 안보 분야에서도 일본의 공헌을 강조했다. 먼저 일본의 미국산 방위 장비 조달액이 트럼프 행정부 1기와 비교해 약 3배 늘었으며, 일본 국내에 미국의 인도·태평양군 연료의 41%를 보관하고 있다는 점을 환기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샀다. 이를 기반으로 이시바 총리는 미·일 안보조약 제5조가 센카쿠열도에도 적용된다는 점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의 확인을 얻어냈다. 공동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인 일본의 방위를 위해 미국의 억지력 및 방위력을 100% 공여하겠다”고 발언한 것도 이번 정상회담의 주요 성과로 거론된다. 

또 양국 정상은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 등 해양에서의 군사활동을 강화하고 있는 중국을 의식해 “힘이나 위압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고 의견 일치를 보았다. 회담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에 대한 공동대처 및 북한에 의한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 필요성도 논의됐다. 특히 납북 피해자 문제와 관련해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아베 전 총리가 특히 해결에 관심을 보였다”고 언급하는 등 대일 배려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논의를 기반으로 미·일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 및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한·미·일 협력을 강조하는 문구가 삽입되었다. 

한편, 예상과 달리 미·일 정상 간에는 주일미군 주둔 경비 부담 관련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이와야 외무상은 “이시바 총리가 최근 일본의 방위 노력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해 (트럼프 대통령의) 이해와 평가를 얻은 것으로 생각된다”고 밝혔다. 이시바 총리가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2%까지 증액하겠다는 기시다 내각의 방침을 계승하고 있는 점에 대해 높은 평가를 얻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경제, 안보 두 분야에서의 일본 공헌을 강조하며 양국 간 긴밀한 협력 추진을 위한 우호적인 분위기 조성에 성공한 이번 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일본 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지고 있다. 귀국 직후인 2월10일 실시된 자민당 간부회의에서 이시바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외교, 안보, 경제 문제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모리야마 히로시 자민당 간사장은 “양국이 함께 손을 잡고 폭넓은 분야에서 협력하는 것이 세계 평화와 안정으로 이어진다는 인식을 공유한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고 평가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의 노다 요시히코 대표도 “미·일 안보조약 제5조가 오키나와현 센카쿠열도에 적용된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회담 성과를 높게 평가했다. 

2월7일 이시바 일본 총리(왼쪽)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워싱턴 백악관에서 회담을 하고 있다. ⓒKyodo 연합

‘北의 완전한 비핵화’ 미·일 공동성명에 명시

여야를 막론하고 미·일 정상회담 성과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이뤄지고 있는 한편, 아쉬움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먼저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직후인 2월10일 모든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관세 25%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것과 관련, 1조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및 알래스카산 LNG 수입 확대를 약속하고도 일본을 관세 적용 대상국에서 제외한다는 확약을 얻어내지 못했다는 점이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시바 총리는 2월12일 열린 참의원 본회의에서 “정상회담 시점에 (철강 및 알루미늄 제품에 대한 관세 적용) 논의는 없었다”며 미국 측의 구체적 조치 내용 및 일본에의 영향을 충분히 살피며 일본 기업이 관세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도록 요청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국제문제를 둘러싼 협의 부족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도쿄신문은 2월11일 사설을 통해 이번 미·일 정상회담이 무난하게 이뤄졌다고 하면서도 정상 간 협의 의제가 ‘양국 간 실리와 관련된 문제’에 치우친 경향이 있다며 지역 분쟁이나 환경 문제, 인권 문제 등 국제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여러 과제에 대해 미·일 정상 간 구체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점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했다. 

미·일 정상회담 직후 실시된 NHK의 여론조사에서는 이시바 내각에 대한 지지율이 소폭 상승한 44%로 나타났다. 다만 ‘정상회담 실시로 향후 미·일 관계가 어떻게 될 것으로 보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응답이 65%로 나타났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미·일 첫 정상회담에서 과거 아베·트럼프 회담의 통역을 맡았던 외무성의 다카오 스나오 미일지위협정실장이 통역으로 배석하는 등 아베 전 총리의 유산이 적절히 활용됨으로써 성과를 낼 수 있었으나 향후 미·일 관계에서는 이시바 총리의 역량이 주요한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