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초·중순’ 짙어지나…다가오는 헌재의 시간, 무너지는 尹의 논리

“국회의원 끌어내라” “언론사 단전·단수” 14명의 증언들 尹측, 홍장원·곽종근의 신뢰성 공격하며 “사전 공작” 주장하기도

2025-02-14     김현지 기자

대한민국의 운명이 역사적 기로 앞에 놓였다. 헌정사상 처음 내란 의혹으로 탄핵소추된 현직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은 오는 3월 결정될 것이 확실시된다. 이대로라면 2017년 3월 파면된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 이후 8년여 만이다. 두 번의 탄핵 정국이 평행이론처럼 겹쳐지는 상황에서, 두 지도자의 마지막 모습도 같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윤석열 대통령이 받게 될 결정문은 정국의 변곡점이 될 조기 대통령선거 국면과 직결된다.

그 중심에 선 헌법재판소의 시간은 빠르게 흘러왔다. 12·3 비상계엄 사태의 핵심 증인 14명이 두 달도 안 되는 사이 심판정에 섰다. 윤 대통령에게 불리한 증언이 쏟아졌다. “국회 등 헌법기관을 마비시킬 목적 없이 절차와 요건에 부합하는 비상계엄”이라는 윤 대통령 논리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윤 대통령 측 신청 증인조차 비상계엄 선포 이유라는 ‘부정선거 의혹’에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헌재 대심판정을 거쳐 갔고 또 다가올 시간은 어떤 모습일까.

윤석열 대통령이 2월11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7차 변론’에 출석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尹 파면 뒤 5월 조기 대선 가능성 커져

윤 대통령의 파면 여부가 결정되는 시기는 현재로서 불명확하다. 2024년 12월14일 탄핵소추안 국회 가결과 동시에 헌재에 사건이 접수된 지 62일째인 2월13일. 헌법재판소 재판관 8인(정원 9인 중 1인 공석)은 이날 8차 변론기일에서 선고일시를 공지하지 않았다. 다만 2월18일 오후 2시 한 차례 더 변론기일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9차 변론기일에서는 증거조사 등이 이뤄질 예정이다.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은 윤 대통령 측이 요청한 한덕수 국무총리와 홍장원 전 국가정보원 1차장 등 추가 증인들의 채택 여부를 논의하겠다지만, 최종 결정 시기를 못 박지 않았다. 앞선 재판관 평의 결과 한 총리 등의 증인은 기각된 바 있다.

이런 일정대로라면 선고기일은 3월 중 나올 가능성이 크다. 지정된 일정 외에 추가 기일이 잡히더라도 이르면 3월초, 늦어도 3월 중순으로 점쳐진다. 법조계는 재판관들이 결정문을 쓰는 시간과 과거 사건 등을 토대로 “마지막 변론기일 후 2~3주 정도 지나 결정될 것”이라고 예측해 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사건에서는 11일,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우 14일이 걸렸다. 사건 접수일을 기준으로 하면 박 전 대통령은 91일, 노 전 대통령은 63일 만에 탄핵이 인용되거나 기각됐다. 헌재법상 심판사건은 접수일 기준 최장 180일 이내에 선고하도록 돼 있다.

바꿔 말하면 5월 대통령선거 가능성도 있다는 의미다. 윤 대통령의 파면이 확실시되면 조기 대선이 불가피하다. 헌법과 공직선거법은 그 시기를 “선거 실시사유가 확정된 때부터 60일 이내”라고 규정한다. 헌재의 선고일 기준 두 달 내 조기 대선이 치러질 수밖에 없다. 과거 박 전 대통령의 탄핵안 인용(파면) 당시 61일째인 2017년 5월9일 19대 대선이 치러졌다.

“尹, 대통령 고유권한을 남용했다”

현직 대통령이 내란 의혹으로 탄핵소추된 건 헌정사상 처음이다. 내란죄 피고인 신분이 된 현직 대통령도 전례가 없다. 역사상 첫 기록인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정에는 증인 14명이 출석했다(표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진행 현황> 참조). 핵심 인물들은 앞선 변론기일에서 주요 증언을 한 상황이다. 법조계가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한 배경이다. 재판관 8인은 수사기록과 국회 회의록 등 주요 진술이 기재된 공문서도 확보해 파악했다.

윤 대통령의 논리는 이 과정에서 무너지는 모양새다. 12·3 비상계엄 당시 ①국무회의 심의 등 절차상 흠결 ②위헌·위법적 내용의 계엄포고령 ③유일한 비상계엄 견제 수단인 국회 활동 방해 ④헌법기관인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의 병력 이동과 마비 상태 초래 ⑤지체 없는 국회의 계엄 해제 결의 이행 등 ‘내란 목적의 비상계엄’을 뒷받침할 쟁점 부분이다. 비상계엄이 헌법상 대통령의 고유권한일지라도 대통령 권한 남용이 문제라는 게 이번 사태를 바라보는 법조계 중론이다. 윤 대통령은 요건도, 절차도, 대통령 권한 남용도 없는 “헌법과 법률에 따른 비상계엄”이라는 입장을 줄곧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곽종근 전 육군 특수전사령관의 증언은 이와 배치됐다. 윤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장관이 국회의원들을 끌어내라고 지시했다는 취지다. ③번, ④번과 관련한 사안이다. 곽 전 사령관은 “윤 대통령이 의결정족수가 안 됐다고 하니 문을 부수고서라도 들어가 안에 있는 인원을 끌어내라고 했다”고 재차 말했다. 김 전 장관은 150명을 넘으면 안 된다는 취지로 전했다고도 했다. 이는 실수로 켜둔 전투통제실 마이크를 통해 전파됐다. 전파 내용을 직접 듣지 못한 김현태 특전사 707특수임무단장은 별도로 곽 전 사령관에게서 국회의원 관련 지시를 받은 적은 없다고 했다. 다만 “‘150명이 넘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국회에) 들어갈 수 없겠느냐’고 곽 사령관이 물어왔다”고 증언했다.

조성현 육군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도 이를 뒷받침했다. 조 단장은 “지난해 12월4일 0시40분경 상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에게서 ‘본청 내부에 진입해 국회의원을 외부로 끌어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인정했다. 구체적 답변을 피한 이 전 사령관이 당시 윤 대통령의 지시를 받은 것으로 추정케 하는 대목이다. 조 단장은 또 곽 전 사령관의 증언처럼 “비상계엄 해제안 가결 후 병력 철수를 먼저 건의해 승인을 받고 인력을 뺐다”고 말했다. ⑤번과 관련한 윤 대통령의 주장과 달리, 군 지휘관들이 국회 가결에 따라 병력 철수를 먼저 건의했다는 취지다.

①번과 ②번도 다르지 않다. 대통령을 향한 충심(忠心)을 드러낸 김 전 장관은 물론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은 비상계엄 당일 밤 국무회의 절차상 문제를 부정했다. 정상적인 심의를 거쳤다는 것이다. 박안수 계엄사령관 임명 등 안건 논의도 “계엄선포문을 배포했다(김용현)”거나 “테이블 위 선포문으로 보이는 종이를 봤다(이상민)”며 존재했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이는 금세 무색해졌다. 조태용 국정원장이 이와 달리 “선포문을 못 봤다”고 말하면서다. 비상계엄 안건조차 몰랐다는 취지다. 이 전 장관은 ‘내란몰이’ 등 여러 사정을 설명했지만 결론적으로 당시 회의록이 없다고 말했다. 그를 비롯해 조 원장, 신원식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 등은 모두 비상계엄에 반대하거나 우려했다고 전했다.

언론사 통제 등 포고령 내용의 실행 여부도 논란거리다. 검찰 공소장에는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 당일 이 전 장관에게 특정 언론사 등에 대한 단전과 단수를 지시했다는 대목이 담겼다. 이 전 장관은 이를 부인하면서도 이와 관련한 메모를 목격했다고 답했다. 대통령 집무실 원형탁자 위에 있는 ‘소방청장’과 ‘단전, 단수’가 적힌 메모를 봤다는 것이다. 이 내용이 떠올라 소방청장에게 시민 안전 등을 당부하는 전화를 했다고도 증언했다.

비상계엄 사태의 핵심 배경으로 떠오른 부정선거 의혹은 되레 부정됐다. 윤 대통령 측 증인들조차 이에 선을 긋는 모습을 보였다. 윤 대통령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의 병력 투입 등에 대해 부정선거 가능성을 이유로 내비쳤다. 2023년 10월 국정원의 점검 결과 중앙선관위의 PC 서버 일부만 조사했는데도 해킹에 취약한 것으로 조사됐다는 것이 이유다. 그러나 백종욱 전 국정원 3차장은 “점검상태에서는 기술적으로 데이터를 변경할 수 있다”면서도 “부정선거가 아니라 시스템만 점검했기 때문에 결과만으로 부정선거 전체를 보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데이터 변경 등 부정선거가 일어나지 않았다는 취지다.

김용빈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은 자체 보안 시스템이 일부 적용되지 않은 상태에서 모의 해킹이 진행됐다고 반박했다. 보안 점검 진행 당시 국정원이 해킹툴(해킹 도구)을 설치했을 때 보안관제 시스템에서 자동 차단됐다는 것이다. 신원식 안보실장 역시 중국의 국내 선거 개입 가능성 등에 대해 “외교적 문제”라거나 “가능성을 전제로 한 질문”이라며 답변을 거부했다.

 

“홍장원, 민주당 의원에게 7차례 인사 청탁”

윤석열 대통령 측은 자신에 대한 불리한 증언의 신뢰성을 무너트리려 하고 있다. 홍장원 전 1차장이 집중 대상이 됐다. 홍 전 1차장은 비상계엄 선포 후인 지난해 12월3일 밤 윤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싹 다 잡아들여라’ ‘방첩사를 도와라’ 등의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여인형 전 사령관이 이후 체포 명단을 불러줬다고 했다.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 측과 여권은 12월4일 새벽 홍 전 1차장이 국정원 출신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문자메시지를 나눈 사실을 문제 삼았다. 홍 전 1차장이 이날 오후 조태용 원장에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통화를 권유한 사실도 꺼냈다. 정치적 중립성이 의심된다는 취지다.

나아가 야권과의 ‘사전 탄핵 공작’이라는 게 윤 대통령과 여권 일각의 시각이다. 홍 전 1차장의 해임 통보 직후인 지난해 12월6일 ‘정치인 체포 지시’ 보도가 나오면서 내란몰이가 시작됐다는 게 그 이유다.

자연스레 ‘홍장원 메모’에도 의구심을 드러냈다. 메모 출처인 여 전 사령관과 홍 전 1차장의 통화 시점(12월3일 밤 11시6분)을 두고 “당시 상황과 맞지 않다”고 반박한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조 원장도 힘을 보탰다. 홍 전 1차장이 통화 당시 국정원 공관 앞 공터에서 체포명단을 적었다고 했지만, 폐쇄회로(CC)TV 확인 결과 사무실에 있었다고 밝히면서다.

조 원장은 “홍 전 1차장의 메모나 증언의 신뢰성에 강한 의문을 가진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보좌관에게 “직접 확인했다”며 홍 전 1차장이 직접 포스트잇에 쓴 1차 메모, 자신의 보좌관에게 이를 건네고 다시 쓰게 한 2차 메모, 비상계엄 다음 날 보좌관에게 ‘(2차 메모를 봤으니) 기억나는 대로 다시 써달라’며 작성케 한 3차 메모, 이 위에 덧대 쓴(가필, 加筆) 4차 메모로 분류했다. 조태용 원장은 또 “홍장원 전 1차장이 지난 정부 국정원에 재직했던 야당 의원에게 7차례 인사 청탁을 했다”라고 증언했다. 그는 해당 의원이 박지원·박선원 의원 중 한 명이라는 취지로 답변했다. 이로써 홍장원 전 1차장이 민주당 쪽과 사전 소통했을 가능성에 이목이 집중됐다.

이 밖에 곽 전 사령관이 국회 국방위에서 야권에 회유당했다는 주장 등이 제기됐다. 윤 대통령의 발언 기회조차 일부 제한한 헌재 재판관들의 절차 진행을 지적한 이영림 춘천지검장의 주장에 동조하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큰 맥락의 사실관계 자체는 흔들리지 않는 듯하다. 김용현 전 장관과 여인형 전 사령관의 탄핵심판정 증언과 조지호 경찰청장의 수사기관 진술 등을 종합하면, 김 전 장관은 비상계엄 당일 계엄포고령 위반 가능성이 있는 명단을 여 전 사령관에게 알려줬다. 이후 여 전 사령관은 이날 밤 10시30분경 조 청장에게 이를 공유하고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명단의 목적과 관련해서는 견해가 엇갈리지만 명단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인정되는 분위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