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5월 방중 추진…‘트럼프 불확실성’ 대비해 접촉 늘리는 중·일
정부 간 교류 넘어 양국 여당 간 협력 강화…재계·언론계도 교류 확대 美中 고래 싸움 대비하는 日…‘터진 새우 등’ 되지 않으려면 日 배워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친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이르면 5월 중국을 찾아 시진핑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하는 걸 검토하고 있다. 작년 11월초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중국의 대일 접근이 눈에 띄게 나타나는 가운데, 방중을 통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박차를 가하겠다는 것이다. 실제 방미를 마치고 귀국한 이시바는 “다음은 중국”이라며 방중 추진에 대한 의욕을 드러냈다. 2019년 12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방중한 이후 일본 총리의 중국 방문이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이시바의 중·일 관계 개선 의향이 명확하게 나타나는 대목이다.
트럼프 만난 이시바 “다음은 시진핑의 중국”
트럼프 당선 직후 페루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실시된 중·일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전략적 호혜 관계’를 추진해 ‘포괄적이며 안정적인 관계’ 구축을 약속했다. 이후 중국 정부는 단기 체류 일본인에 대한 비자 면제 조치를 재개함으로써 중·일 관계 개선을 위한 선제 조치를 취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해 12월말 이와야 다케시 외무상의 중국 방문 당시 일본을 방문하는 중국인 관광객에 대한 비자 발급 요건을 완화하겠다는 방침을 밝히며 중국 측 조치에 화답했다. 비자 발급 요건 완화 방침 발표에 대해 여당인 자민당 내에서 “당과의 협의가 불충분했다”며 연이어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상황은 해당 결정이 여당 내 합의보다는 중·일 관계 개선을 희망하는 이시바 및 그 측근들의 의향을 반영한 조치임을 시사한다.
트럼프 2.0 시대를 맞아 중·일 관계 개선 움직임은 정부 간 교류에 그치지 않고 여당 및 초당파적 의원 교류, 경제계 교류, 언론계 교류 등 각종 분야의 교류 활성화로 나타나고 있다. 먼저 자민당 모리야마 히로시 간사장과 공명당 니시다 마코토 간사장은 지난 1월 중순 중국을 방문해 자민당·공명당·중국공산당에 의한 ‘일중 여당 교류 협의회’를 개최했다. 6년3개월 만에 이뤄진 협의회에서 리창 중국 총리는 중·일 양국 여당이 “양국의 장기적이며 근본적인 이익을 지키는 것을 출발점으로, 국민과 역사에 책임을 지는 태도하에서 정확하고 강력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며 중·일 여당 간 협력을 강조했다. 또 방중 의향을 드러낸 이시바의 방중을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다. 모리야마 간사장은 1월 중순 방중 직후 중국과의 우호 관계를 지향하는 초당파 의원 모임인 ‘일중 우호 의원연맹’ 회장으로 선출됐다. 취임 기자회견에서 모리야마 간사장은 의원연맹 대표단의 중국 방문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여당 간 교류에 이어 양국 간 초당파적 의원 교류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다.
경제계 교류도 확대되고 있다. 일본제철(옛 신일철주금)의 신도 고세이 대표이사 사장이 이끄는 일중경제협회 및 일본 재계 대표 단체인 게이단렌, 일본상공회의소 방중 대표단은 2월16일 중국을 방문해 허리펑 부총리 등 중국 정부 관계자와 면담했다. 시진핑 주석의 측근으로 중국의 재정·금융 등 경제 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허리펑 부총리는 “보호주의·일국주의가 대두하고 있다. 일본 재계 대표단의 방중이 양국과 세계의 경제무역 왕래를 촉진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경제계 인사들의 방문을 환영했다. 신도 단장은 중국 측과의 회담에서 중·일 경제 협력 추진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철강 등 소재, 태양광 패널, EV(전기자동차) 등 공업 분야에서의 과당경쟁과 지나치게 염가인 수출품 증가는 통상 마찰을 초래하며 기업의 실적 악화, 이노베이션 및 신규 투자의 의욕 저하를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며 중국 제조 기업의 과당경쟁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이에 왕원타오 중국 상무부장은 “미국에 의한 관세 추가 조치는 세계를 향해 있다. 중·일이 손잡을 필요가 있다”며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한 국제적 규범을 유지하기 위한 중·일 간 의사소통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처럼 재계 주요 인사들이 방중해 중국 정부 관계자와 회담을 갖고 있는 것에 대해 마이니치신문은 중국 정부가 대표단 방중을 크게 환영하며 “일본 경제계에 추파를 던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면 지지통신 등 일부 매체에서는 리창 총리가 아닌 허리펑 부총리와의 회담이 주선된 것과 관련해 “허리펑은 시진핑 측근이지만 당 ‘최고지도부’엔 해당하지 않는다”며 “양국의 경제 격차가 커지는 가운데 중국에서의 일본의 존재감 저하를 반영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신도 단장은 “중국이 일본을 경시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고 반박했다.
“중국이 일본 경제계에 추파 던지고 있다”
언론계에서도 교류 확대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일본 교도통신의 미즈타니 도오루 사장과 중국 신화사의 푸화 사장은 2월17일 도쿄에서 회담을 갖고 상호 교류·협력을 심화해 중·일 민간 교류 촉진과 상호 신뢰 증대를 위해 노력함으로써 중·일 관계의 안정적이며 장기적인 발전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측이 각종 분야에서 일본과의 관계 개선 의향을 나타내고 있는 것과 관련해 일본의 주요 매체들은 중국 정부가 미·중 관계의 전망이 불투명한 가운데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바라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중·일 관계 개선을 통해 미·일 관계 공고화를 견제하는 한편 트럼프 시대의 불확실성에 대비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중국 측은 최근 활성화되고 있는 일본과의 교류의 장에서 미·일 관계를 견제하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예를 들어 지난 2월 미·일 정상회담에서 이시바와 트럼프가 중국의 동중국해 및 남중국해에서의 힘에 의한 ‘일방적인 현상 변경 시도’에 반대한다는 점을 명확히 밝힌 것과 관련,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의 한 간부는 방중한 일본 경제계 주요 인사들에게 ‘중국에 대한 발언을 주시하고 있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진다. 왕원타오 상무부장도 “일본이 미국의 압력을 받아 반도체 수출 규제를 하고 있다”며 경제 분야에서의 미·일 공동보조에 대한 불쾌감을 드러냈다.
일본은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아 ‘자유롭고 열린 규범에 기반한 국제 질서’ 유지를 위한 미국의 관여를 확보하기 위해 미국과의 긴밀한 의사소통을 하는 한편, 미국의 일방적인 행동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에 대비하기 위해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꾀하고 있다. 미·중이라는 고래 사이에서 한국이 ‘터진 새우 등’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와 같은 일본의 동향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신도 단장은 미·중 관계, 미·일 관계, 중·일 관계 사이에서 밸런스를 취하고 싶다는 심경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