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의 강’ 건너고 ‘3년 임기’ 개헌 카드…오세훈의 승부수
“계엄 반대, 심적으론 이해”…당내 경선에서 ‘배신자 프레임’ 회피 전략 ‘비호감도’ 낮고 ‘중도 확장성’ 크다는 평가 받아…‘명태균 리스크’는 숙제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옳았나. 당신은 탄핵에 찬성하는가.’
정치권의 ‘조기 대선’ 전망에 이 질문은 여권 대선 잠룡들의 첫 관문이다. 이들은 탄핵 찬반을 두고는 입장이 갈려도, 계엄 선포에 대해선 ‘납득 불가’라며 입을 모았다. 그중 한 사람의 발언이 유독 눈길을 끈다. 계속 단서 조항이 붙으면서다. “대통령의 무모한 선택에 동의할 순 없지만, 심적으로는 이해된다. 그래도 버텼어야 했다”고 말한 오세훈 서울시장이다. 서울시에서 윤 대통령이 토로한 ‘여소야대’라는 어려움을 똑같이 겪어본 오 시장의 이런 속내는 ‘대통령감’ 여론조사에서 보수층과 중도층의 심리를 미묘하게 자극하는 모습이다. 강성 지지층에 환호받는 ‘보수의 아이콘’과 비난받는 ‘보수의 배신자’ 사이의 어딘가에 닻을 내리고 있는 그가 여권 내 확실한 대선주자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어떤 카드를 내밀지 지금 정치권은 주목하고 있다.
헌정사상 첫 ‘4선 서울시장’ 기록을 가진 오 시장은 최근 ‘대권 보폭’을 넓히고 있다. 오 시장의 대선 출마설은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이번 계엄·탄핵 국면을 맞아 수면 위로 올랐다. 스스로도 ‘대선 출마 의지’를 묻는 질문에 부정을 하지 않고 있다. ‘계엄 반대-탄핵 찬성’이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도 ‘탄핵 반대’라는 목소리를 크게 내고 있는 강성 지지층을 의식해 단서 조항을 덧붙이는 모습도 눈에 띈다. 오 시장은 강성 보수층에서 거론하는 ‘부정선거’ 의혹에 ‘사전투표를 재고해야 한다’며 일부 공감의 뜻을 내비치는가 하면,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이 필요하다면서도 헌법재판소 재판 과정의 문제점도 비판한다. 헌재 심판에 대해선 ①문형배 헌법재판관 처신 문제 ②재판의 공정성 ③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재판과 대비되는 졸속 재판 등을 연일 지적했다.
중원 노리는 吳…강경파도 배신자의 길도 피해
계엄의 핵심 책임도 거대 야당에 돌렸다. 오 시장은 ‘여소야대’ 윤석열 정부를 보며 2011년 야당이 서울시의회 의석 4분의 3을 차지하던 시절 자신이 겪은 ‘식물시장’의 모습이 데자뷔처럼 떠올랐다고 한다. 당시 ‘오세훈표’ 예산은 줄줄이 잘려 나갔고, 무상급식 조례안도 재의결을 통해 의장이 직권으로 공포했다. 결국 시장직을 사퇴한 후 10년간 야인의 시대를 보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는 언론을 통해 ‘윤 대통령을 심적으론 이해한다’고 토로했다.
단서 조항이 늘어났어도 오 시장의 입장은 변함없다는 게 참모진의 설명이다. 오 시장의 측근으로 꼽히는 한 인사는 통화에서 “오 시장이 계엄을 반대한다는 생각은 똑같다. ‘윤 대통령도 할 얘기가 있을 테니 이야기의 장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로 탄핵소추에 찬성했던 입장도 그대로다”며 “누군가에겐 뜨뜻미지근한 태도로 보일 수 있어도 현재 오 시장이 생각한 가장 합리적인 결단”이라고 말했다. 한 서울시 핵심 관계자는 오 시장의 강성 보수층을 겨냥한 발언과 관련해 “오락가락 행보가 아니라, 정치인으로서 당 지지층과 주류 세력이 갖는 저변의 정서에 대해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이런 스탠스는 ‘탄핵의 강은 건넜지만 최소한의 선을 지킨다’는 ‘합리적 노선’을 선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중도·보수 지지층을 모두 고려하겠다는 취지다. 실제 여권에서 오 시장은 ‘당심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중도 확장이 가능한’ 여권 대선주자로 꼽혀왔다. 여기에 900만 인구의 서울을 표밭으로 갖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실제 2022년 지방선거에서 그는 여당이 패한 지역에서도 중도층의 교차투표를 받아 서울 전 지역에서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만약 조기 대선이 열린다면 오 시장의 낮은 비호감도는 그의 가장 큰 무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여론조사 업체 리서치뷰가 1월29~31일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차기 대선주자 가운데 ‘절대로 찍고 싶지 않은 사람’을 물은 결과 오 시장은 8%라는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해당 조사에선 이재명 대표가 40%로 가장 높았고 김문수(13%), 홍준표(11%), 오세훈(8%), 한동훈(7%), 이준석(6%)이 뒤를 이었다. 이후 한국갤럽이 2월11~13일 실시한 여론조사에선 반대(지지 비의향+절대 반대) 기준으로는 이준석(78%), 한동훈(72%), 홍준표(68%), 오세훈(61%), 김동연(60%), 김문수(58%), 이재명(53%) 등의 순이었다.
재창당 준하는 ‘보수 혁신’ 카드…중도 확장 노려
‘중도 확장성’이란 수식어가 붙은 오 시장은 어떤 카드를 내밀까.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①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대통령 임기 단축’ 개헌을 화두로 끌어올리고 ②인재 영입을 통해 외연을 확장하며 ③결과적으로 당의 ‘내란 옹호’ 오명을 벗기고 재창당에 준하는 혁신 수순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먼저, 오 시장이 구상한 권력 형태는 ‘기득권 내려놓기’에서 시작된다. ‘대통령 4년 중임제’ 구상은 그동안 정치권에서 수없이 제안된 개헌론이다. 하지만 오 시장이 생각한 시점은 좀 더 파격적이다. 그는 앞으로 선출될 21대 대통령 임기부터 적용될 수 있도록 자신의 임기를 현행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할 수 있는 후보자가 나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이런 입장은) 오 시장이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분산하기 위해 계속 생각해온 구상이다. 대통령 임기는 5년, 국회의원과 지방자치단체장은 4년인데 이 주기를 서로 맞춰야 한다”며 “그러려면 사실상 1년 후 2026년 지방선거에 맞춰서 (대통령 임기를) 줄이는 게 제일 맞지만,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따라서 지방선거는 ‘중간평가’라고 생각하고, 3년 후인 2028년 총선과 맞추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 시장의 시나리오가 실현되면 차기 대통령은 2028년 예정된 23대 총선까지 3년만 집권한다. 그다음 대선은 총선과 함께 치르게 된다. 단 오 시장은 스스로 ‘임기 3년’ 개헌안을 제7공화국의 문을 열 승부수라고 보고 있지만, 주변에서 ‘임기를 끝까지 한 게 없다’ ‘권력의지가 약하다’는 비판도 나온다는 전언이다. 조기 대선 국면에 따라 오 시장이 만약 2월28일 이전에 사퇴하면 4월에 보궐선거를 해야 하지만, 5~6월 사퇴하면 바로 직무대행 체제가 된다. 정치권에 따르면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이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선 대선일로부터 30일 전에 사퇴해야 한다.
인재풀도 모색하는 분위기다. 실제 계엄·탄핵 정국 이후 오 시장은 현역 의원을 포함해 여의도 정치권 및 다양한 진영으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여권 관계자는 “현재 오 시장의 속내를 궁금해하는 인사들한테서 연락이 많이 온다”며 “그들 중엔 흔히 중도나 중도진보로 분류된 사람들도 있고, (오 시장 역시) 거부감 없이 소통하고 있다. 오 시장도 시정에서 약자와의 동행 등 전통적인 진보 어젠다를 추진해 왔듯 (진보진영의) 철학에 관심을 갖고 있다”고 부연했다.
‘오세훈표’ 비전은 14인의 고문단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오 시장은 지난해 7월 정치·외교와 행정·법조·언론계 등 각 분야 전문가 그룹이 포진한 서울시 시정고문을 위촉한 바 있다. 시정 현안과 비전·목표·전략에 관한 조언 기구를 두겠다는 취지다. 여기엔 서울시 대변인 출신인 국민의힘 이창근 당협위원장과 시의원을 거쳐 서울시 시민소통기획관을 역임한 김철현 경일대 특임교수, 국제·외교 분야에서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사무처장을 거친 남성욱 고려대 교수, 정종호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등이 이름을 올렸다.
풀리지 않는 ‘명태균 리스크’는 넘어야 할 산
‘애매모호한 안정감.’ 오 시장의 중도 확장성이 크다는 평가 뒤엔 그의 노선이 ‘뚜렷하지 않다’는 비판도 따른다. 이에 따라 당내 경선 통과가 오 시장에게도 가장 큰 숙제라는 분석이 많다. 중앙정치는 초선에 불과해 그간 당내 조직력을 충분히 구축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국민의힘은 경선에서 당원 투표 50%와 여론조사 50%를 합산해 최종 대선후보를 결정한다. 책임당원의 약 40%가 영남에 몰려 있는데, 강성 당원들 사이에선 탄핵에 찬성하는 오 시장에 대한 ‘배신자’ 프레임이 남아있다는 관측도 있다. 여기에 윤 대통령의 구속 이후 강경 보수층의 결집이 깨지지 않는 가운데 탄핵 반대 여론이 강한 ‘집토끼’들을 잡을 수 있을지도 관건이다.
여권 잠룡들의 활동 폭이 넓어지면서 입지 확보가 어렵다는 비판도 있다. 헌재의 윤 대통령 탄핵심판 결과가 3월 중 나온다는 전망 속에 여권에선 ‘팬덤’을 쥔 한동훈 전 대표를 포함해 어림잡아 10여 명의 잠재 후보군이 꿈틀거리는 분위기다. 여기에 여권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김문수 장관의 신드롬이 여권 지도부로도 확산하면서 긴장감을 조였다. 2월19일 김 장관이 참석한 국회 노동 개혁 토론회에는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과 권성동 원내대표 등 지도부를 포함해 당 소속 의원(108명) 중 절반이 넘는 58명이 참석했다. 앞서 2월12일 오 시장의 ‘대선 출장식’ 같았던 개헌 토론회 참석 인원(48명)보다도 많은 세를 과시한 것이다.
오 시장은 ‘패를 까볼 때까진 모른다’는 입장이다. 앞서 그는 지난달 TV조선 시사 프로그램 《강적들》에 나와 계엄·탄핵 정국 이후 김 장관에 밀리고 있는 자신의 지지율에 대해선 “막상 선거가 본격화되면 제 지지율이 갑자기 오르는 경향이 있다”며 “(202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도) 초기 여론조사에서는 늘 3~4위였는데, 결국 25개 자치구 425개 동에서 압승을 했다”고 말했다. 또 당내 경선에 약하다는 평가에 대해 “저는 생각이 많이 다르다. 지난번 이준석 당대표 선출 당시 TK와 PK에서 전략적 선택이 있었는데, 우리 당도 영남에서 전략적 선택이 시작됐다”고 반박했다.
다만 유권자 입장에서도 ‘까봐야 하는 패’ 명태균 게이트가 남아있다. 이른바 ‘황금폰’에 담긴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오 시장의 관계성이 언론을 통해 파편적으로 공개되는 상황에서 수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진 의혹이 사그라들지 않을 분위기다. 오 시장은 ‘악의적 보도’를 취합해 고소·고발에 나서며 명씨의 일방적 주장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를 표출했지만 민주당이 합세한 정치적 리스크의 파장이 어디까지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조기 대선이 현실화하면 캐스팅보터가 될 ‘2030 지지층’이 여전히 약점이라는 지적도 있다. 최근 공개된 여론조사에서 20대, 30대는 성별에 따라 선호도가 엇갈리는 추세다. 가령 여성의 경우 ‘계엄 반대, 탄핵 찬성’ 입장을 중심으로 이재명 대표 등 야권 지지율이 더 높은 반면, 남성의 경우 가상 양자 대결에서 여권 주자를 더 지지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오 시장 측도 2030 지지율이 낮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분위기다. 이와 관련해 한 서울시 고위 관계자는 “오세훈표 시정 정책에서 기후동행카드, 손목닥터9988 등 청년층을 위한 사업이 꽤 많았고 추진력도 있었지만 홍보가 부족했다. 정확히 2030세대의 제도라고 짚을 만한 성과는 아니라는 점에서 반성이 필요하기도 하다”고 말했다.
※ 기사에 인용한 여론조사의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