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미 시론] 운명의 3월 앞에서
군복을 입은 어떤 장성이 내 옆에 있었다. 비상계엄(非常戒嚴)에 연루된 국군 방첩사령관인지 수도방위사령관인지 알 수 없으나, 무섭고 두려웠다. 가위에 눌린 듯 답답해하다 잠에서 깨어났다. 아, 꿈이었구나. 다행스러워하면서 내가 왜 이런 해괴한 꿈을 꾸었을까? 이유를 알고파 정신을 다듬어 유추해 보았다. 요새 텔레비전을 너무 많이 보았나. 엊그제 밤인가 새벽에 법률방송에서 중계하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을 보다 잠들어 그런 사나운 꿈을 꾼 것 같다고 나는 결론을 내렸다. 아, 무엇이든지 분석해야 직성이 풀리는 이 먹물 냄새를 언제 빼려나.
요새 법률방송을 자주 시청한다. 법률방송의 좋은 점은 ①광고가 거의 없다 ②싸구려 오락프로와 드라마가 없어 좋다 ③함재봉의 《한국인의 탄생》처럼 재미있고 유익한 프로그램이 많다. 조선 후기와 근현대사 인물들, 법률방송을 보기 전까지는 내가 그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던 개화승(開化僧) 이동인(李東仁·1849년~1881년)의 이야기가 특히 재미있었다. 생몰연대조차 불확실한, 그런 미천한 출신의 사람이 일찍이 개화사상(開化思想)에 눈떠 김옥균의 도움으로 일본으로 밀항해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주역들을 만나고, 귀국해 고종에게 성냥을 비롯한 신문물과 세계 정세를 전해 주었다는 놀라운 이야기. 1881년 통리기무아문(統理機務衙門) 참모관에 임명되어 신사유람단(紳士遊覽團) 파견을 기획한 사람이 이동인이었다니. 개화파의 선구였던 그가 암살되지 않았다면 우리 역사는 어떻게 흘러갔을까. 이 흥미진진한 역사 드라마를 강연하는 함재봉 교수의 뛰어난 식견과 전달력에도 나는 감탄했다. ‘한국인의 탄생’을 시청하며 나는 한국-일본-중국 세 나라의 역사가 얼마나 밀접한 관계 속에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전개되었는지 새삼 알게 되었다.
좀 더 많은 사람이, 특히 젊은이들이 우리 역사에 대해, 아시아 역사에 대해 좀 더 폭넓은 시각으로 깊이 있는 공부를 하기 바란다. 역사를 알아야 인간이 보인다. 역사를 알아야 특정 상황과 현실에 대한 올바르고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된다. 바야흐로 유튜브 전성시대, 짧은 동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이 많다. 내게도 유튜브 방송을 하라고 권하는 지인들이 있지만 기계치라 나홀로 방송은 엄두도 못 낸다. 물론 나도 유튜브를 보며 시대의 우울을 잊는다. 내가 좋아하는 LG 트윈스 야구선수들의 근황, 미국 전지훈련 모습과 식사 장면을 담은 동영상을 보며 낄낄 웃다가 가끔 ‘좋아요’도 누른다. 야구가 없어 심심하고 지루했던 겨울이 끝나가고 있다.
3월. 운명의 3월이 저만치 다가오고 있다. 우리 현대사의 분수령이 될 3월에 무슨 일이 일어날까. 사법부는 어떤 판단을 할 것인가. 몇 년 전에 고은 시인과의 소송을 앞두고 전화통화를 했던 어느 친구가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법부는 우리 사회 최후의 보루야. (재판) 걱정하지 마. 영미야. 다 잘될 거야.” 법원은 나처럼 힘없는 사람들이 의지할 수 있는 우리 사회 최후의 보루라는 그녀의 말을 믿고 나는 싸웠고 소송에서 승리했다. 돌이켜보면 득보다 실이 많은 재판이었지만, 다 끝나 후련하다. 현 시국에 대해 나도 할 말이 없지 않지만, 하지 않으련다. 정치와 아무 관계없는 글, 스포츠에 대한 글을 써도 매우 정치적이고 험한 댓글이 달리는 나라. 댓글이 겁나, 일일이 응답하기 귀찮아 할 말도 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었다. 이처럼 분열되고 천박해진 대한민국을 바꿀 지혜로운 판결이 나오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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