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文 탈원전’ ‘尹 친원전’ 모두 NO…이재명, SMR 전략 육성한다
원전-재생에너지 ‘투트랙’으로…‘국부펀드’로 몸집 불리고 ‘메가 샌드박스’로 규제 혁파 에너지 새판 짠다…AI 시대 올라타 ‘에너지 자립’ 추구하며 국가 ‘미래 먹거리’ 육성 이언주 “SMR, 굉장히 큰 시장…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SMR 만들어 제일 많이 팔아야”
“우리 당은 이미 ‘탈(脫)원전’ 기조에서 벗어난 지 오래다. 무엇보다 우리는 한 번도 탈원전이라는 얘기를 한 적이 없다. 사실상 문재인 정부 때도 탈원전 기조는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당시 원전을 폐쇄한다고 하면서 각종 논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슈만 집중됐을 뿐이지 탈원전 기조와 관련한 가시적 결과물은 없었다. 단순 정치적 레토릭 측면이 강했다.”(이언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겸 미래경제성장전략위원장, 3월4일 시사저널 인터뷰 중)
민주당이 차기 대권 유력 주자인 이재명 대표를 필두로 ‘성장’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하면서, 그간 당내에 암묵적으로 이어져온 원전 등 에너지 정책 기조를 놓고 ‘성장통’을 겪는 모습이다. 일단 민주당 지도부와 전략 파트는 문재인 정부부터 이어져온 ‘탈원전’ 기조와 거리를 두는 대신 ‘원전-재생에너지’ 투트랙 믹스(조합) 기조로 방향타를 돌린 모습이다. 여기에 에너지 산업정책 자금을 뒷받침할 ‘국부펀드’ 로드맵을 짜는 동시에 AI(인공지능)·에너지 분야 ‘메가 샌드박스’ 규제 완화도 예고하며 기존 진보진영과 다른 방식으로 ‘성장 플랜’ 퍼즐을 하나씩 맞추고 있다.
이처럼 민주당이 전향적으로 변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 세계적으로 4차 산업혁명 돌풍이 부는 상황에서 한국도 이념 대신 글로벌 경쟁을 위한 ‘새판’을 짜야 한다는 절박성이 당 지도부에 확산되면서다. 이 대표도 해당 기조를 통해 ①정무적으로는 ‘중도보수’ 산토끼를 확보하고 ②전략적으로 ‘AI 시대’ 흐름에 올라타며 ③정책적으로 국가 ‘미래’ 먹거리를 육성하는 소위 ‘일타 삼피’ 효과를 기대하는 모습이다. 이 같은 전략을 효율적으로 실현하는 취지에서 이 대표는 국가 역할을 강화하는 ‘전략 국가’를 차기 정권의 모델로 눈여겨보고 있다는 전언이다.
민주당 전략 파트가 내세우는 ‘에너지 믹스’ 기조는 문재인 정부에서 드라이브를 걸었던 ‘탈원전’도, 윤석열 정부의 ‘친(親)원전’도 아닌 새로운 패러다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이언주 최고위원은 인터뷰에서 탈원전은 물론, 이미 예정된 신규 원전 외에 원전을 추가 건립하는 방식의 ‘친원전’ 전향 가능성에도 선을 그었다. 원전에 대한 국민 수용성도 낮고, 대형 원전을 많이 짓는 시대는 지났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면서 “어느 한 에너지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안 된다. 재생에너지와 원전 에너지에 같이 투자하는 ‘투트랙’으로 믹스해서 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했다.
실제 지난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 기조를 내비치며 에너지와 산업계로부터 질타를 받은 바 있다. 신규 원전 건설을 포기하거나 노후 원전의 수명 연장을 막는 것에서 나아가, 이미 건설 중이었던 원전마저 멈춰 세우면서다. 그 대표적 사례가 영덕원전이다. 토지 보상이 30% 가까이 진행된 사업이 전격 중단되면서 관련 여파는 극심하게 이어졌다. 이는 결국 윤석열 정부로 이어지는 정권 교체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 요인 중 하나로 분석된 바 있다.
특히 지금은 AI가 전 세계적 트렌드로 떠오르면서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전력 확보가 절실한 시점이다. 하지만 한국은 생산된 전력을 연결하는 송배전망이나 데이터센터 숫자가 충분치 않은 구조적 약점을 갖고 있다. 여기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관세 정책부터 최대 산유국인 중동에 대한 기조까지 바꾸며 전 세계적 에너지 공급 상황도 불확실해지고 있다. 에너지를 수입에만 의존하면 성장 리스크가 커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결국 한국도 세계적 흐름 속에서 변화의 기로에 자연스럽게 놓이게 된 것이다.
이재명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 내부에서도 이 같은 상황 인식과 공감대를 대체적으로 이뤘다는 전언이다. 이언주 최고위원은 “(지도부 내부에서도)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대체적 흐름은 에너지 믹스가 불가피하다는 데 공감하고 있다”며 “지금은 우파 에너지와 좌파 에너지를 가릴 상황이 아니다. 전력망 확충이 절실한 상황에서 서로 싸우다가 몇 년이라는 시간을 보낸 만큼 지금은 우리에게 마지막 기회의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표 측 관계자도 시사저널에 “탈원전은 아예 원전을 폐쇄하겠다는 것 아닌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나 우리 당도 원전을 아예 안 쓰겠다는 말을 한 적이 없다”며 “우리 입장은 계획돼 있는 원전 사업은 그대로 진행하되, 추가적 에너지는 재생에너지 위주로 개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계파색이 옅은 지도부 소속 민주당 의원도 “지금은 시대적으로 변화가 필연적인 상황”이라며 “집에서 완전히 이사 가는 것은 안 되지만, 집을 상황에 맞게 리모델링해 확충하는 것은 오케이”라고 말했다. 보수진영에서 내세우는 친원전 기조를 그대로 따르는 것은 반대하나, 상황에 따른 유동적 기조 조정엔 동의한다는 취지다.
SMR 투자에도 집중…‘新성장 전략’ 윤곽
이처럼 민주당은 원전 기조는 ‘중립’을 유지하는 한편, 성장에 필요한 ‘추가 에너지원 확충’에 전방위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모습이다. 그 일환으로 주목되는 에너지가 원전의 상위 버전인 SMR(소형모듈원전)이다. SMR은 기존보다 작은 용량과 모듈식 설계를 채택한 원자로 발전으로 미래 산업의 ‘게임 체인저’로도 불린다. 이언주 최고위원은 SMR에 대한 당 차원의 전략 육성 방침을 밝혔다. 그는 “SMR에 대한 투자를 계속 이어가야 한다. 그래서 원전 예산도 삭감 없이 다 반영했지 않나”라며 “SMR은 세계적으로도 큰 시장이다. 한국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SMR을 만들어 전 세계에 제일 많이 팔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에너지의 전략 육성을 위해선 많은 자금 확보는 물론, 규제 손보기도 자연스레 수반돼야 한다. 이를 민주당 전략위 차원에서 각각 ‘국부펀드’와 ‘규제 완화’ 정책으로 뒷받침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국부펀드는 최근 이재명 대표도 ‘국민펀드’라고 직접 명명할 정도로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민주당 전략위에선 전력산업기반기금(전력기금) 등 정부에서 방치하거나 목적과 다르게 쓰는 펀드를 한데 모으는 방안까지 논의하며 ‘국부펀드 로드맵’ 구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또 AI·에너지 등 첨단 전략산업 분야와 밀접한 지역에 대해선 소위 ‘메가 샌드박스’ 방식의 파격적 규제 완화도 적용하겠다는 방침이다.
결국 원전 기조부터 에너지원 확충과 여기에 필요한 자금 확보나 제도 보완 해법을 망라한 민주당표 차기 정권 ‘신(新)성장 로드맵’ 윤곽이 드러난 셈이다. 해당 전략을 통해 이 대표가 노리는 효과는 세 가지로 관측된다. 일단 전략적으로는 국가적 차원에서 AI 시대 흐름에 올라타 글로벌 경쟁의 판에 뛰어드는 것이다. 실제 이 대표는 AI 진흥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위원장직까지 맡는 것은 물론, ‘K-엔비디아’ 공개 토론까지 여권에 제안하며 ‘AI 선봉장’을 자처하고 있다.
또 이 대표 자신이 차기 정권을 잡을 경우 제시할 ‘잘사니즘’ 정책 비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선제적으로 모으는 효과도 있다. 구체적으로 미래 먹거리 육성을 통해 ‘국가-정부-국민’ 모두가 잘사는 ‘삼각편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이 최고위원은 “국부펀드를 비롯한 전략을 통해 우리가 갖고 있는 부(富)를 극대화하는 것”이라며 “이런 부분들이 잘돼야 일자리도 생기고, 인적자원이나 교육 측면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에너지 믹스’로 중도-보수 두 마리 토끼 노려
이는 결국 조기 대선을 앞둔 상황에서 성장 가치를 중시하는 ‘중도보수’ 지지층을 설득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이 대표도 최근 연일 “민주당은 중도보수 포지션을 맡아야 한다”고 메시지를 내며 ‘캐스팅보터’ 중도층 표심 잡기에 집중하고 있다. 물론 당내 기존 진보진영으로부터 ‘정체성 문제’ 지적도 받고 있으나, 실제 각종 여론조사에선 중도층 표심이 민주당 쪽으로 움직이는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특히 리얼미터 조사(2월26~28일 전국 유권자 1506명 대상, 95% 신뢰수준에 표본오차 ±2.5%p,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결과 차기 대선주자 적합도에서 이 대표의 대권 지지율은 46.3%를 기록하며 30%대 박스권을 탈피했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이 대표와 당 지도부에서 최근 집중하고 있는 차기 국가 운영 모델은 ‘전략 국가(가칭)’로 확인됐다. 조기 대선 정국에서 유권자들을 효과적으로 설득하고, 집권 후 로드맵을 몽골기병처럼 추진하는 바탕이 될 수 있어서다.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시사저널에 “조기 대선 국면이 본격 진행되면 그때 경선 캠프에서 비전 네이밍(이름)을 확정하겠지만, 최근 주로 거론되는 키워드는 ‘전략 국가’ 모델”이라며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화’ 모델은 물론,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마가(MAGA·Make America Great Again·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슬로건 등을 참고해 국가를 ‘투자자’ 마인드로 전략 육성하겠다는 취지”라고 강조했다.
다만 국가가 강한 주도권을 행사한다는 것은 곧 차기 대통령에게 막강한 힘이 실린다는 의미와 일맥상통하는 만큼, 여권에선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비호감도 등 약점을 고리 삼아 ‘지도자 자질 문제’ 공세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야권 내부에서도 비명(非이재명)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대비한 플랜 B가 필요하다(김두관 전 의원)”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는 곧 국가 리스크로 비화될 것(이낙연 전 국무총리)” 등 이 대표를 향한 공세가 거센 상황이다.
이 대표는 비호감도를 낮추는 대신 강점을 키우고 강조하는 방식으로 난관을 돌파하겠다는 전략이다. 특히 윤 대통령 탄핵 선고 후 조기 대선까지 시간도 별로 남지 않은 만큼, 당 전략 파트에선 이 대표의 약점을 수비하는 대신 ‘돌파력’ ‘행정력’ 등 강점을 호소하는 방향으로 큰 틀의 전략을 짜고 있다. 당 지도부 핵심 관계자는 “이 대표는 ‘전략성’ ‘목표 지향성’이 강점”이라며 “지금의 글로벌 경쟁 시기는 이 같은 강점을 바탕으로 한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한 때다. 이를 국민들에게 어필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