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대통령 임기 3년만”…조기 대선의 핵심 변수로 떠오른 ‘개헌’
서로 다른 개헌 손익계산서…여야 1강 김문수·이재명은 소극적 ‘내란 진압’이 우선이라는 李…기득권자처럼 보이면 개헌론에 ‘포위’ 개헌으로 연대도 가능?…與는 ‘국회 견제’, 野는 ‘지방 분권’에 방점
정치권에서 개헌이 본격적인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1987년 이후 약 40년 만에 지금의 헌정체제를 근본적으로 재정비할 적기가 도래했다는 공감대는 분명하다. 87년 체제의 헌법하에서 5명의 전현직 대통령이 구속됐고, 갈수록 커지는 정치권의 갈등과 분열 속에 2017년에 이어 또 한번 현직 대통령이 탄핵될 위기에 처한 만큼 명분 또한 상당하다. 심지어 윤석열 대통령조차 자신의 탄핵심판 최후변론에서 직무에 복귀할 것을 상정해 “임기에 연연하지 않고 개헌과 정치 개혁의 추진에 임기 후반부를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재 정치권의 최대 관심사는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인용돼 조기 대선이 치러질 경우 개헌 이슈가 선거에 핵심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이다. 탄핵 선고 전이지만 이미 다수의 여야 대권 잠룡이 차기 정부에서 반드시 개헌을 해내야 한다고 앞다퉈 나서면서다. 유권자들에게도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개헌이 주요 변수로 작동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반면 개헌 논의를 꺼리는 잠룡들도 있다. 개헌이 대선의 주요 쟁점으로 다뤄지는 게 일부 주자에겐 껄끄러운 상황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한국 정치사에서 개헌론을 꺼내드는 세력은 대부분 상대적으로 약자이거나 국면 전환을 위해서일 때가 많았다. 각각의 다른 이해관계 속에서 개헌 이슈는 과연 차기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까. 개헌론에 대한 입장에 따라 조기 대선 정국에 깜짝 연대나 단일화 가능성도 점쳐진다. 현시점에서 각 여야 잠룡들의 개헌에 대한 입장과 정치권의 분위기를 들여다봤다.
‘임기 3년’ 치고 나간 오세훈·김동연·한동훈
현재 거론되는 대권 잠룡 대부분은 헌법재판소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이 인용될 경우 대권주자들이 개헌을 약속하고 차기 정부에서는 반드시 개헌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국민의힘 잠룡 중에선 오세훈 서울시장, 홍준표 대구시장, 한동훈 전 대표, 유승민 전 의원, 안철수 의원 등이, 야권 잠룡 중에는 김동연 경기지사, 김부겸 전 총리, 김경수 전 경남지사, 이낙연 전 총리,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등이 여기에 포함된다.
반면 여야에서 각종 여론조사 선두를 각각 달리고 있는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개헌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여야를 통틀어 가장 높은 대권주자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는 이 대표는 지난 2월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해 “지금은 내란 극복에 집중할 때”라며 개헌 논의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표명했다. 그는 “지금 현재 개헌 얘기를 하면 이게 블랙홀이 된다. 빨간 넥타이 매신 분들(국민의힘)이 좋아하게 돼 있다”면서 “우리로서는 그 문제를 전면에 내세우는 게 현재 (12·3 비상계엄으로 인한) 어려운 국면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안 될 수 있다. 급하지 않다. 지금은 헌정 질서 회복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여권의 1위 주자로 평가되고 있는 김문수 장관도 2월10일 국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지금의 헌법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개헌 논의에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김 장관은 현행 헌법에 대해 “정말 감격적인 민주화운동의 성과”라며 “문제가 있다면 차근차근 고쳐야지, 국가 전체를 만들어놓고 헌법이 문제라고 하는 건 다시 한번 돌아봐야 한다”고 했다. 선두권 주자 입장에선 개헌 논의에 잘못 휘말리면 뒤따르는 주자들에게 자칫 정치적 공간을 뺏겨 역전의 빌미를 내어줄 수 있다는 분석을 하고 있을 수 있다. 현재 개헌 논의의 주된 분위기가 차기 대통령의 희생에 주목하고 있는 만큼 유력 주자에겐 부담으로 작용할 개연성도 있다.
반대로 후발주자들은 추격을 시도할 주된 전략적 카드로 개헌을 앞세우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최근 여야 잠룡들이 차기 대통령에 한해 임기를 현행 5년에서 3년으로 단축하는 방안까지 꺼내놔 이목을 끌고 있다. 차기 대통령은 3년 안에 4년 중임제 등의 개헌을 이뤄낸 뒤 물러나고, 2028년 차기 총선과 대선을 동시에 치러 대통령과 국회의 임기(4년)를 일치시킨다는 구상으로 자신이 대통령이 된다면 임기 단축 등의 헌신에 직접 나서겠다는 어필이다. 대통령과 국회의 임기를 맞추면 대통령이 좀 더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선거를 같이 치르기 때문에 여소야대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적어지기 때문이다. 선거비용 절감 효과도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소추 이후 가장 먼저 이러한 생각을 꺼내놨던 건 오세훈 시장이다. 오 시장은 지난해 12월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만약 조기 대선이 치러진다면 화두는 개헌이 돼야 한다”며 “개헌을 위해 대통령 임기를 3년으로 단축하는 걸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난 2월 야권의 대권 잠룡인 김동연 경기지사가 더불어민주당 내에선 가장 먼저 차기 대통령의 임기 단축론을 얘기했다. 김 지사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대선주자들이 임기 3년을 약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개헌이란 역사적 소명을 수행하는 다음 대통령은 임기에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사례가 내가 된다면 담대하게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 탄핵소추 이후 국민의힘 당대표직에서 물러났다가 최근 대권 도전을 시사하며 공개 행보를 시작한 한동훈 전 대표도 차기 대통령은 임기를 3년만 한 뒤 물러나야 한다고 못 박았다.
세 사람 외에도 민주당 내 비명계 대권 잠룡인 김두관 전 의원도 차기 대통령 임기 단축을 주장하고 있으며, 같은 당 잠룡 김부겸 전 총리, 국민의힘 대선주자로 평가되는 안철수 의원은 차기 대통령 임기 단축에 동의한다는 의사를 밝혔다. 야권의 대권 잠룡인 이낙연 새미래민주당 상임고문도 차기 대통령의 임기 단축이 ‘차선책’이 될 수 있다고 봤다. 이 상임고문은 2월27일 진행된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새로운 대통령이 새로운 시대를 열었으면 좋겠다”면서 선(先)개헌, 후(後)대선론을 최우선적으로 강조하면서도 차기 정부가 임기 단축을 통해 과도정부 성격을 띠는 방식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했다.
차기 대통령 임기를 단축하되 중임 가능성을 열어주자는 제안도 나왔다. 국민의힘 잠룡인 유승민 전 의원의 주장이다. 그는 한국일보 인터뷰에서 “다음 대통령이 될 사람은 임기 단축 개헌을 하고, 재신임을 받는다면 4년을 더 할 수 있도록 하자”고 밝혔다. 이른바 ‘3+4 개헌론’이다. 앞서 임기 단축을 언급한 잠룡들이 이 같은 중임제 카드에 동의하는지는 불분명하다. 차기 대통령의 희생이라는 의미가 흐려질 수 있다는 점에서 힘을 싣지 않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吳 “의회 해산권·내각 불신임권 필요”
다수의 대권주자가 ‘임기 3년’에 동의하며 논의가 확대될수록 이에 동의하지 않는 주자들에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는 가운데, 개헌론엔 적극 나서면서도 차기 대통령 임기 단축엔 동의하지 않는 의견도 적지 않다. 홍준표 시장은 3월5일 국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수천억원을 들여 정치적 내전 상태에서 대선을 하는데 3년짜리 뽑으라고, 얼마나 대통령이 하고 싶으면 그런 쓸데없는 소리를 하느냐”고 했다. 이준석 의원 역시 3월4일 YTN라디오 인터뷰에서 “대통령이 임기를 3년으로 가져간다 하는 건, 그 대통령은 정책 추진에서 힘도 못 받고 위기 극복하는 데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자인하는 것”이라며 “국민들이 봤을 때는 비겁한 메시지로 보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개헌의 세부적인 내용 및 방향에 대해서도 주자 간 차이가 엿보인다. 우선 대다수 주자는 ‘제왕적 대통령 권력’의 분산 및 축소와 대통령 4년 중임제에는 찬성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김부겸 전 총리 같은 경우는 대통령 임기 단축에는 찬성하면서도 중임에 대해선 “핵심 쟁점이 아니다”며 신중론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하는 것에 대한 논의가 우선돼야 한다는 게 김 전 총리의 입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 전 총리는 분권형 대통령제로 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슷한 맥락으로 김동연 지사는 책임총리제를 얘기했고, 김경수 전 지사는 대통령제와 의원내각제의 절충 형태인 ‘한국형 연합정부(연정)’ 도입을 언급했다. 홍준표 시장은 정·부통령제를 제시하고 있다.
여권 주자들을 중심으로 의회 권력의 축소 방안도 거론된다. 대통령제의 문제뿐만 아니라 21대, 22대 국회에 걸쳐 나타났던 거대 야당의 문제점에 대해 지적하면서다. 오세훈 시장은 대통령의 의회 해산권과 국회의 내각 불신임권으로 상호견제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안철수 의원은 대통령과 국회의 권한을 모두 축소해야 한다고 했다. 홍준표 시장은 “무자비한 국회의 입법 폭력을 방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홍 시장은 2월7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사태를 두고 대통령 중심제의 폐해라고 얘기하는데, 이해가 안 된다. 대통령이 구속됐는데 무슨 대통령 중심제의 폐해인가”라며 “대통령의 권한과 국회의 권한이 제대로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방 분권 방향의 개헌도 강조되고 있다. 안철수 의원과 김부겸 전 총리 등이 지방 분권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개헌의 타임테이블은 개헌 투표 시기, 실시 시기 등에서 주자별로 차이가 났다. 가장 빠른 타임테이블을 주장하고 있는 쪽은 차기 대선에서 곧바로 개헌 투표를 함께 하자고 주장하는 이낙연 상임고문이다. 김경수 전 지사는 차기 대선에서 여야 합의가 가능한 선에서 1단계로 먼저 개헌을 하자고 제안했다. 이 외에도 결선투표제, 중·대선거구제 도입 등 선거제 개편에 대한 얘기도 나오고 있다. 다만 대다수 주자가 세부적으로 모든 개헌의 내용을 밝히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추후 각 주자가 권력구조 개편, 선거제, 개헌 시기 등에 대해 좀 더자세한 내용의 개헌 구상을 밝힐 것으로 전망된다.
원로도 비명계도 이재명에 ‘입장 촉구’ 압박
대권 잠룡들뿐 아니라 정치권 원로들도 개헌을 촉구하고 있다. 전직 국회의원 모임인 대한민국헌정회 정대철 회장을 중심으로 모인 정계 원로들은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선(先)개헌-후(後)대선 일정을 제안해 오기도 했다. 3월4일엔 여야 정치 원로 9인(정세균·박병석·김진표 전 국회의장, 정운찬·김황식·이낙연·김부겸 전 국무총리, 정대철 헌정회장과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 서울대 국가미래전략원(강원택 교수) 주최 토론회 ‘정치 원로 개헌을 말하다’에서 한목소리로 정치권에 빠른 개헌을 공개 촉구했다.
이 자리에선 최대 유력 잠룡이면서도 개헌에 대한 분명한 뜻을 밝히지 않고 있는 이재명 대표를 겨냥한 발언도 여럿 나왔다. 김종인 전 위원장은 “지금 개헌을 할 수 있는데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할 사람은 민주당 대표와 민주당 국회의원들”이라며 “이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개헌에 동참하지 않으면 개헌이라는 것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했다. 정대철 헌정회장도 “사실 오늘 토론할 필요도 없다”며 “여러분이 압력을 가해서 이 대표 한 사람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개헌과 관련해 이 대표를 향한 압박은 안팎으로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동연 지사, 김부겸 전 총리, 김두관 전 지사 같은 당의 비명(非이재명)계 인사들은 최근 잇따라 이 대표에게 개헌에 대한 의지를 밝혀달라고 촉구하고 있다. 김두관 전 지사의 경우는 이 대표에게 (대통령이 될 경우) 임기 2년 단축에 동참하라고 공개 요구하기도 했다.
다만 이러한 압박들이 이 대표의 입지나 행보에 영향을 미칠지는 미지수다. 이 대표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한 민주당 관계자는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최근 여론조사 등을 보면 지금 당장은 개헌에 집중할 때가 아니라는 여론도 적지 않다. 현시점에서 가장 중요한 건 내란에 대한 분명한 정리인데 이 대표를 견제하는 사람들이 억지를 쓰고 있다”며 “무엇보다 이 대표는 개헌에 반대하지 않는다. 지난 대선을 포함해 개헌에 대한 방향을 지속적으로 밝혀왔고, 차차 자세한 구상들을 밝히게 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