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한국 ‘민감국가’ 지정 움직임 왜?…‘핵무장론’, 국제사회 외톨이 자초
‘시류 영합적’ 자체 핵무장론에 침식되는 대한민국 국격·국익 한국의 핵무장 추구, 북핵 인정의 변형이자 ‘김정은의 길’ 자초
트럼프 행정부가 핵 비확산 출발을 선명하게 가져간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는 1기 때인 2019년 2월 미·북 정상의 하노이 회담에서 ‘진정성 있는 비핵화 조치 없이는 제재 완화 불가’로 각인됐다. 2기 들어 미·일 정상회담과 한미, 한·미·일 외교부 장관 회담에서 재확인됐다. 미국 전략자산을 전개하는 확장억제 과시 및 한미의 군사적 상호운용성 강화훈련은 간단없다. 중국과 러시아에는 핵 군축을 제안했다.
미국 에너지부가 한국을 ‘민감국가(Sensitive Countries)’ 리스트에 올리려는 움직임이 확인(3월11일)됐다. 민감국가는 미국의 국가 안보, 핵 비확산, 역내 불안정, 경제 안보 위협, 테러리즘 지원을 이유로 검토 및 승인된다. 중·러를 비롯해 이란, 북한, 인도, 파키스탄, 대만, 이스라엘 등 25개국이 그 대상이며, 미 원자력 인원·시설 접근 및 고등기술 연구 협력에 제약이 따른다. 외국의 핵무기·핵연료 주기 프로그램, 핵물질 안보 등 핵 활동 주시 및 핵심 인프라 보호 임무를 띤 에너지부 정보방첩국이 핵무기 개발·해체 총괄기관인 국가핵안보청(NNSA)과 함께 이 작업을 견고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정보방첩국은 정보공동체에 속해 국가정보장의 지휘를 받으며, 17개 정보기관들과 강하게 연결돼 있다. 일단 결정되고 나면 되돌리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교훈 잊었나…제재 위기 처했던 노무현 정부
왜 지금 미국이 이러는지는 짐작이 간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에도 소동이 있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2000년 핵물질인 고농축 우라늄 추출에 성공한 사실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에서 밝혀졌다. 미국·영국·프랑스 등 상임이사국들은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려 했고, 한국 제재 위기에 처했다. 정부는 외교력을 총동원했다. 뜻밖에도 일본과 독일이 도와주어 불량국가 오명은 피했다(천영우, 2022, 《대통령의 외교안보 어젠다》). 2007년 9월 미 국가핵안보청이 고농축 우라늄 약 4파운드를 모두 수거했다고 발표해 일단락됐었다.
비핵국가의 핵 활동은 미 중앙정보국(CIA) 등의 확인·견제·차단 대상이라는 그 엄혹함을 상기하게 된다. 윤석열 정부 들어 대통령을 필두로 외교·안보라인이 ‘핵무장도 한 옵션’임을 암시하고, 여당의 유력 인사들은 대놓고 주창하며, 일부 싱크탱크와 학자, 우파 성향 언론사가 파당적 이슈 사이클을 만들어 확대 재생산한 후과다.
핵무기는 1945년 이래 단 한 번도 쓰인 적이 없다. 그러다 보니 핵 이론과 주장은 가정이나 조건적 시나리오, 추측에 기반할 수밖에 없고, 강고한 신념체계와 확증편향이 작용한다. 무슨 논리를 댄다고 한들 수긍하겠나 싶지만 담론이 건강해야 정책이 바로 서기에 논점을 몇 개 제기한다.
첫째, 북핵 개발 70년에 대한 한미동맹과 국제사회의 대응 30년은 확장억제와 대북 제재로 수렴해 왔다. 한미의 역대 정부가 치열한 현실 인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일관되게 축적해온 지혜다. 1978년 한미안보협의회(SCM)는 핵우산 제공을 구속력 있는 외교문서에 담았다. 북핵 1차 실험 직후인 2006년 12월 확장억제를 명문화한 데 이어, 2009년 핵우산에다 재래식 타격력, 미사일 방어를 포함하는 모든 범주의 군사 능력으로 그 개념을 확장해 한국이 공격을 받으면 미국은 본토가 공격받는 것과 같은 정도의 전력을 제공하게 됐다. 2023년 4월 한미는 확장억제를 정상(頂上) 수준에서 합의하고, 핵협의그룹(NCG)을 가동하면서 미 핵자산과 한국의 최첨단 재래식을 일체화하는 확장억제로 업그레이드 중이다.
김정은 정권은 6차례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략순항미사일, 전술핵의 핵무력을 증강하며 ‘핵국가’를 기정사실화하고, 협상 의사가 없음을 공언한다. 하지만 흡수통일 두려움과 피포위 의식 속에 체제 내부의 부실은 쌓여간다. 전술핵 배치는 추가 핵실험 없이는 확신하지 못한다. ICBM은 불완전하다. 속이 병든 보디빌더 신세다. 확장억제와 제재 효과의 증거다.
‘핵 잠재력’ 용어 자체를 금기시하는 日
둘째, 지금의 국제 질서는 중국의 부상과 러시아의 수정주의적 행태로 인해 미국이 압도하기는 힘들다. 미·중이 전략 경쟁을 벌이면서 각기 창조하는 제한적 질서(bounded order)에 한국은 위치한다. 그 최전선에 안보와 국익이 걸려 있다. 그런 미·중이 한국이 새 질서를 만드는 것을 용납하겠는가? 미국이 핵비확산조약(NPT) 훼손을 지켜보겠나? 국제 자유주의 질서의 모범국가이며, IT 강국이자 통상국가인 한국, 선진국의 풍요와 자유를 누리는 한국이 핵무장을 추구한다? 북핵 인정의 변형이요, ‘김정은의 길’이다. AI 시대에 최첨단 과학기술을 구가하는 한국에는 구식이다. 한국판 ‘고난의 행군’과 국제사회 외톨이의 자초다. 2030세대와 6070세대의 내셔널리즘에 영합하는 무책임하고 위험천만한 단견이다.
셋째, 핵무장으로 가는 중간 단계로서 핵 잠재력(nuclear latency)을 갖자는 주장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권과 본말의 전도다. 국제사회는 핵확산으로 간주한다. 우라늄농축과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의 핵 주기 프로그램에서 일본만큼의 대접을 못 받는다고 불평을 하면서, 행동은 일본처럼 하지 않는다. 일본은 핵 잠재력이라는 용어 자체를 금기시한다. 비확산 체제를 완벽히 준수하면서 국제사회와 미국의 신뢰를 구축해 가고 있다. 필자는 한미원자력협정 재협상(2015년)을 앞둔 2010년, 조언을 구했던 미 에너지부의 ‘미국 핵미래 블루리본위원회’ 위원인 퍼 피터슨 교수를 기억한다.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미국과 R&D(연구개발)를 하고 소통하면서 믿음을 쌓아가면, 훗날 원하는 핵 주기 프로그램을 얻을 수 있다”
확장억제 설명에는 냉전기 영국 국방부 장관을 지낸 데니스 힐리의 발언이 인용된다. “미국의 보복 능력에 대한 신뢰 중에서 5%는 소련 억제에, 95%는 유럽인을 안심시키는 데 사용된다.” 억제에 대한 한국 내 우려는 연합되고 조율된 억제태세를 만들어가면 해소된다. 그리고 억제는 절제와 협상 촉진을 포함한 개념이다.
미국은 거대한 관료제 국가다. 대통령과 장관이 정책 결정자임은 분명하나, 미국 조야에 도도히 흐르는 본류(mainstream)를 직시하는 게 현명하다. 미국의 동의와 지지, 국내가 단합된 상태에서 억제와 외교 해법을 동시에 가동해 김정은 위원장의 태도 변화를 천천히 끈기 있게 유도해 가면 북핵은 제어할 수 있다. 핵 보유의 강점과 그로 인한 전략적 불안정, 천문학적 기회비용 등 그 약점을 동일 선상에 놓고 봐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