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선 키워드는 ‘전략 국가’…與 대항마들의 반격 전략은 ‘李 때리기’
李, ‘문재인 부채’ 극복하고 ‘국가 역할’ 강조…‘성장-분배’ 두 마리 토끼 노린다 비명계는 ‘개헌’으로 李 포위…김동연 ‘노무현 정신 계승’, 단식 김경수 ‘진정성’ 강조 與 잠룡들은 ‘李 공격’에 사활…내부에선 오세훈-한동훈, 김문수-홍준표 신경전
윤석열 대통령 탄핵 정국이 막바지로 향하는 도중에 대통령 ‘구속 취소’ 변수가 갑작스레 발생하면서 여야 모두 ‘조기 대선’ 키워드를 밖으로 꺼내는 데 신중한 분위기다. 대권 유력 주자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범야권은 대선후보 선출 방법인 ‘오픈 프라이머리(완전 국민경선제)’ 등에 대한 논의는 접어두고 ‘대통령 파면’ 여론전에 집중하고 있다. 여권은 ‘헌법재판소의 이념성’과 ‘탄핵의 위법성’ 등을 주장하면서도 각 후보들 사이에 윤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 셈법을 계산하는 데 분주한 모습이다.
그러면서도 여권 잠룡들은 물밑에선 대부분 ‘탄핵 인용’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대선 캠프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실제 이미 주자들은 그간 탄핵 정국에서의 행보를 통해 각자 ‘대선 비전’ 시그널을 은연중에 드러내왔다. 이들의 공통 시대정신은 ①성장을 필두로 한 글로벌 AI(인공지능) 경쟁 ②미래 먹거리와 일자리 창출 ③탄핵 정국 재현을 막기 위한 정치구조 변화 등이다. 해당 키워드를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 ‘방법론’과 ‘중요도’ 순서에 대해선 각자 다른 로드맵으로 접근하고 있다.
‘개헌’ ‘AI’…잠룡들의 시대정신 선점 쟁탈전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범야권 대권 지지율에서 부동의 1위를 달리는 이재명 대표는 공통의 시대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차기 정권 모델로 ‘전략 국가’라는 키워드에 집중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전 세계적 트렌드와 달리 대한민국만 ‘신자유주의’와 소모적인 ‘이념 전쟁’에 갇혀 있어 10년 넘게 성장을 이루지 못했다는 진단에서다. 결국 글로벌 AI 경쟁 흐름에 올라타 새판을 짜고 주도하려면 ‘국가의 주도적 역할’이 필수라는 판단이다.
해당 기조는 이 대표가 2월10일 국회에서 진행한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경제 살리는 데 이념이 무슨 소용인가. 민생 살리는 데 색깔이 무슨 의미인가”라며 “진보 정책이든 보수 정책이든 유용한 처방이라면 총동원하자. 모두가 함께 잘사는 ‘잘사니즘’을 새로운 비전으로 삼겠다”고 했다. 이어 “성장해야 나눌 수 있고 격차도 줄일 수 있다. 국민의 기본적 삶을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나라, 두툼한 사회안전망이 지켜주는 나라여야 혁신의 용기도 새로운 성장도 가능하다”며 “당력을 총동원해 회복과 성장을 ‘주도’하겠다”고 강조했다.
최근 이 대표는 “민주당은 중도보수 포지션을 맡아야 한다”고 천명하면서 기존 당 이념 정체성을 희석시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이후 정책 면에서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시행 및 가상화폐 과세 유예, 상속세 완화 등을 통해 해당 기조를 실천하고 있다. 특히 그는 2월24일 유튜브 채널 ‘삼프로 TV’에선 1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종합부동산세 과세의 불합리성까지 거론하며 ‘감세’ 관련 전향적 주장들을 가감 없이 쏟아냈다.
여기엔 ‘문재인 정부’의 부채를 일부 극복하겠다는 의도도 포함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후보에게 단 0.7%포인트 차로 낙선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와 ‘종부세 반감’은 물론 ‘탈(脫)원전 기조’로 중도층과 보수층의 마음을 열지 못한 것이 패착이라는 분석도 나온 바 있다. 이 대표 측 관계자는 “지금의 이재명 대표가 얘기하는 부분들이 ‘가장 이재명다운’ 모습들”이라며 “오히려 문재인 정부 때가 정치 성향 그래프상 진보 쪽으로 많이 치우쳤을 때다. 이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근 민주당에서 구상하는 ‘신(新)에너지 전략’ 등 각종 로드맵도 그 일환으로 풀이된다. 실제 민주당 지도부와 전략 파트는 ‘원전-재생에너지’ 투트랙 믹스(조합) 기조 속에서 미래 게임체인저로 꼽히는 ‘SMR(소형모듈원전) 전략 육성’ 방침도 함께 구상하고 있다. 이 같은 에너지원 확보 전략이 실현되는 데 필요한 ‘자금’과 ‘규제 보완’은 각각 ‘50조 첨단산업 국부펀드’와 ‘메가 샌드박스’ 규제 완화 정책으로 뒷받침하겠다는 방침이다.
해당 전략들은 이 대표가 천명한 ‘K-엔비디아’ 등 AI 분야부터 산업 정책 전반의 성장을 이끌어낼 초석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미래 먹거리와 일자리는 물론 ‘기본사회’ 분배에 필요한 부(富)를 만들어내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민주당 전략 파트의 설명이다. 미래경제성장전략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언주 최고위원은 시사저널에 “우리가 갖고 있는 부를 극대화하는 것”이라며 “이런 부분들이 잘돼야 일자리도 생기고, 인적자원이나 교육 측면까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 대표가 그리는 집권 후 청사진도 결국 해당 로드맵들을 총망라한 ‘선(先)성장-후(後)분배’ 대형 프로젝트다. 이를 몽골기병처럼 추진하기 위해 이 대표도 ‘전략 국가’ 모델을 통해 자신이 직접 퍼즐을 맞추고 ‘다시 대한민국’을 이끌겠다는 각오다. 여기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산업화’와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선 기조였던 ‘준비된 대통령’ 모델도 참고했다는 전언이다. 이와 관련해 전략위 차원에서도 슬로건으로 “다시 빛나는 대한민국” “국가의 전략 투자” 등을 고심하며 국가 주도 성장에 방점을 찍는 분위기다.
언론을 통해 거론되는 ‘이재명 경선 캠프’ 핵심 인사들의 기조에서도 비슷한 결의 공통분모가 엿보인다. 선거대책위원장으로 거론되는 윤호중 민주당 의원은 11년 전 출간한 저서 《한국경제 3.0 시대로 가자》를 필두로 그간 ‘신자유주의 타개’와 ‘신성장동력’에 방점을 찍어왔다. 캠프 실무를 주도할 총괄본부장 하마평에 오르는 강훈식 민주당 의원은 국회 연구단체 유니콘팜을 이끌며 ‘스타트업 전략 육성’과 ‘규제 개선’에 집중하고 있다. 이 같은 전략 실현을 위해 국가에 힘이 필요한 상황에서 ‘개헌’은 집권 후 과제상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높다.
반면 ‘이재명 대항마’로 꼽히는 다른 주자들은 ‘개헌’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개헌을 각자 자신들의 대표 콘텐츠로 끌어와 비명(非이재명)계 구심점 역할을 선점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최근 이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대선과 동시에 ‘원포인트 개헌’을 하고 2026년 지방선거 때 전반적인 2단계 개헌을 하자”고 공개 제안했다. 김동연 경기지사도 “개헌은 블랙홀이 아니라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드는 관문”이라며 “권력구조, 경제, 임기 단축 등에 대한 개헌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기에 김동연 지사는 ‘노무현 계승’을 키워드로 내세우며 이 대표와의 비전 차별화에 본격 나섰다. 구체적으로 자신이 노 전 대통령 재임 시절 작성한 ‘비전 2030 보고서’ 실무 책임자였던 점을 언급하며 “새로운 버전의 비전 2030을 실천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또 노 전 대통령이 임기 중반에 제안했던 ‘대연정’을 경제 분야로 특화해 경제 위기를 돌파하겠다는 의지도 함께 드러내고 있다. 대표적 ‘친노(親노무현)’ 적자로 꼽히는 김경수 전 지사도 윤 대통령 석방에 맞서 ‘단식’ 카드를 꺼내며 ‘진정성’에 호소하는 모습이다.
“내가 李 잡을 적임자”…‘尹과의 거리’는 고심
여권 주자들도 ‘대통령 임기 단축’을 비롯한 개헌 키워드에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책 출간 등을 통해 공통 시대정신 키워드를 자신이 주도했다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려는 행보도 이어가고 있다. 또 ‘이재명 저격수’ 이미지를 선점하기 위해 연일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정책노선 일관성 부재’ 등 약점을 겨냥해 공세를 집중하는 모습이다. 특히 3월26일 예정된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2심 선고를 계기로 ‘반(反)이재명’ 여론을 본격 결집시킬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오세훈 시장은 ‘KOGA(Korea Growth Again·다시 성장하는 대한민국)’를 슬로건으로 내세우며 이 대표와의 ‘비전·정책’ 경쟁에 사활을 거는 모습이다. 앞서 이 대표가 거론한 ‘성장론’에 대한 맞불 격이다. 또 오 시장은 이 대표가 ‘기본소득’을 천명했을 당시엔 자신의 ‘안심소득’을 어필한 바 있다. 전 국민에게 균등한 소득을 지원하는 기본소득과 달리 안심소득은 형편이 어려울수록 더 많이 지원하는 이른바 ‘선별적’ 복지 정책이다. 그는 해당 기조를 이어 이번에도 약자 지원책을 포함한 ‘5대 동행’ 성장 비전을 제시할 계획이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도 ‘국민이 먼저입니다’라는 슬로건을 책 제목으로 내세웠다. 당초 그는 윤 대통령의 30년 지기 검찰 동료였던 만큼 ‘윤석열 황태자’라는 이미지가 강했다. 하지만 법무부 장관 이후 정치권에 뛰어들며 탄핵 정국이 오기까지 ‘기득권’에서 ‘도전자’로 이미지를 탈바꿈한 모습이다. 여기에 ‘이재명 때리기’에도 집중하며 자신이 취약한 강성 지지층 표심도 호소하는 모습이다. 그는 이 대표를 겨냥해 “한국에서 가장 위험한 인물”이라고도 저격했다.
반대로 여권 내 강경파로 분류되는 주자들은 더욱 보수 지지층을 결집하는 행보로 이목을 끌고 있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자신의 정치·행정 관록을 바탕으로 ‘한국미래 100년 설계자’를 표방하고 있다. 특히 그는 해당 책에서 최근 현실정치 상황에 대한 비판에 방점을 찍으며 현 정국을 초래한 인사들을 강력 규탄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재명 대표와 한동훈 전 대표를 겨냥해 연일 발언 수위를 높이고 있다. 반대로 윤 대통령에 대해선 ‘탄핵 반대’에 힘을 싣는 등 친소 관계를 적정선에서 유지하는 모습이다.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은 윤 대통령을 적극 엄호하며 콘크리트 지지층에 어필하는 모습이다. 그는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을 판가름할 헌재를 겨냥해 “헌법 재판이 아닌 정치 재판”이라며 어느 주자들보다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직 대권 출마를 공식 선언하진 않았으나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권 내 선두 경쟁을 할 만큼 존재감이 올라간 상황이다. 이에 김 장관 측근들도 고무돼 있다는 전언이다.
특히 여권 경선 구도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정치 성향 포지션별로 ‘대척점’에 있는 주자가 아닌 ‘비슷한 성향’의 상대 주자를 더욱 견제하고 있는 점이다. 이를테면 외연 확장 가능성이 큰 중도보수 포지션에선 오세훈 시장과 한동훈 전 대표가 물밑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반대로 콘크리트 강성 지지층을 발판으로 삼고 있는 홍준표 시장은 김문수 장관을 향해 연일 견제구를 던지는 모습이다. 홍 시장은 김 장관을 향해 “김 장관이 경선에 들어오면 자신이 최고령 꼰대 이미지를 벗고 중도보수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고 저격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