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안보’는 또 어찌할 것인가

2025-03-14     김재태 편집위원

윤석열 정부 들어서 10년 만에 부활한 국군의날 행사는 두 번 연달아 막대한 예산을 들여 성대하게 치러졌다. 건군 76주년을 맞은 지난해 10월1일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관람 무대에서 시가행진을 지켜보던 윤 대통령의 표정은 득의만면했고, 시종 흐뭇한 미소가 가시지 않았다. 이 행사에 뿌듯함을 느끼기는 대통령만의 감정은 아니었던 듯하다. 그로부터 엿새가 지난 10월7일, 나중에 계엄군의 주력 부대로 참여했던 이진우 수방사령관은 자신의 휴대전화 속 메모에 이런 글을 남겼다. ‘보수층 결집의 마중물이 됐다고 평가된다’. 이는 검찰 수사 결과 밝혀진 내용으로, 군 지휘관이 지켜야 할 중립 의무를 한참 벗어나 대놓고 정치색을 드러낸 표현이다.

그의 말대로 대규모 국군의날 행사가 실제로 국내 보수층을 결집시키는 데 유효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윤석열 정부가 군에 큰 관심을 갖고 많은 공을 들여왔던 점만큼은 부정하기 어렵다. 병사 월급을 올려주고, 심지어 군 부사관들과도 골프 라운딩을 함께하며 그들로 하여금 “로또에 당첨된 것 같은 기분”(김용현 전 장관의 국회 발언)이 들게 하는 ‘시혜’를 베풀기도 했다. 그 부사관 중에 계엄 당시 핵심 역할을 한 707특임단 소속이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은 이제 와 돌아보면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윤석열 대통령이 비상계엄 해제를 선언한 지난 4일 오전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시사저널 최준필

하지만 그렇게 군의 사기를 높여주리라는 기대를 주었던 윤 대통령이 그들을 배신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외부의 적에 맞서 나라를 지킨다는 숭고한 사명감으로 고강도 훈련을 견뎠던 군인들의 총부리를 엉뚱하게 내부로 향하게 했고, 평온하던 시민들의 일상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그리고 수도권에 위치한 주요 특수부대원들이 영문도 모른 채 국회와 선관위 등으로 몰려간 그 순간 대한민국 국방은 큰 공백을 드러내며 여지없이 흔들렸다. “안보는 보수의 강점”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내 왔던 보수 정권이 스스로 안보 체계를 훼손하고, 국방의 의무를 위해 헌신하던 많은 군인을 기만한 셈이다. 만약 그때 북한의 기습 도발이라도 일어났다면 어찌 되었을까를 생각하면 온몸이 저릴 만큼 섬뜩해진다. 평시에 전투 지역이 아닌 국가기관으로 출동하라는 명령을 난데없이 받은 일선 군인들의 당혹감은 당시 그들끼리의 긴박한 통화에서도 여실하게 드러난다. “이건 뭐 지옥도 (따로) 없고, 뭐 떼로 이렇게 갑작스럽게 하면 어떡합니까?” “뭘 노린 거죠. 지금? 대통령이?” “몰라. 우린 뭐 군인이니까.” 계엄 당일에 선후배 관계인 대령급 지휘관들이 주고받았다고 언론을 통해 알려진 녹취 발언들이다.

계엄으로 인한 군의 혼란과 내상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군인들이 그날 이후 겪고 있는 정신적 고통 또한 상당하다. 그 실상은 국방부가 최근에 일부 부대 장병 등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신건강 평가 결과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계엄 후 두 달 사이에 특전사 소속 중·상사 계급의 희망전역이 급증했다는 소식도 불길하긴 마찬가지다. 게다가 국방 주무부처 장관 자리는 여전히 비어있고, 얼마 전에는 사상 초유의 공군 전투기 오폭 사고까지 일어나면서 군의 기강에 대한 우려가 더 커져 있는 상태다.

탄핵 찬반으로 갈린 민심이나 계엄 이후 한없이 깊은 나락으로 빠져든 경제를 정상화하는 것 못지않게 이제는 군의 사기와 기강을 되살려 안보를 다잡아 세우는 일도 시급하다. 한국에 든든한 우군 역할을 해왔던 미국은 트럼프 시대를 맞아 군사동맹마저 언제든 거래 테이블에 올려놓을 태세다. 그만큼 불안을 부추기는 요소가 곳곳에 도사려 있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과제는 너무 많고, 그 모두가 빠짐없이 막중하다. 

김재태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