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문 열리는 공매도, 국내 증시 변곡점 될까
주식 하락 우려에 “상관성 찾기 어려워”…무차입 공매도도 원천 방지 최종 목표는 MSCI 선진국 지수 편입
주식을 보유하지 않은 상태에서 빌린 주식을 팔고, 차후에 주식을 사들여 갚을 수 있다. 바로 공매도란 투자 기법이다. 주가가 현저히 떨어질 것이란 전망이 들 때, 비싼 가격에 팔고 나중에 싼값에 사들여 되팔면 더 큰 이익을 누릴 수 있다. 공매도 제도는 법 테두리 내에서 허용됐지만, 오랜 기간 개인투자자들에게 공분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빌리지도 않고 주식을 먼저 파는 무차입 공매도가 엄연한 불법임에도 국내 증시에서 횡행했기 때문이다. 이를 감시할 시스템조차 없었다. 2023년 11월 외국계 금융사의 불법 공매도가 적발되면서 국내에선 전면 금지됐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공매도가 3월31일부터 전면 재개된다. 국내 증시에 상장된 2700여 개 전 종목에서 공매도가 가능해진다. 2023년 11월 금융 당국이 공매도 금지 조치를 내린 지 1년4개월 만이다. 이번 공매도 금지 조치는 벌써 4번째다. 2008년 10월 글로벌 금융위기, 2011년 8월 유럽 재정위기, 2020년 3월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공매도가 금지됐다.
벌써부터 투자자들은 공매도 전면 재개 이후 국내 증시 하락을 우려하고 있다. 일부 고평가 업종이나 종목은 주가 하락 모멘텀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특히 수급상 유가증권시장보다는 코스닥에서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무차입 공매도 완벽히 방지할 수 있나
다만 과거 3번의 공매도 재개 이후 주가 흐름을 살펴보면 공매도 재개와 주가의 연관성을 찾기 어렵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신현용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과거 공매도 재개 사례를 분석해 보면 업종별 공매도 강도와 수익률 사이의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며 “이번 역시 지수와 업종 등에서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내 증시 전반적으로는 외국인 수급이 개선되면서 상승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매수(롱)와 매도(숏)를 동시에 활용하는 롱숏 전략처럼 공매도를 활용해 보유 주식 가격 하락 위험을 헤지하는 전략을 구사하는데 공매도가 가능해지면 매수 포지션을 늘릴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조창민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공매도 거래 비중은 외국인 증시 거래 비중과 상관관계가 있다”며 “공매도 거래가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외국인 수급 회복 및 외국인의 수급 영향력이 확대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공매도 재개 여부보다 더 중요한 것은 법망을 벗어난 불법 공매도를 막을 수 있느냐의 문제다. 2023년 11월 공매도가 전면 금지된 이후 정부와 금융 당국은 무차입 공매도 방지를 위한 법령 개선 및 전산 시스템 개발에 나섰다. 제도도 손질했다. 공매도를 하는 법인과 주문을 수탁받는 증권사는 무차입 공매도 방지 시스템 구축이 의무화됐다.
전산 시스템은 기관투자가가 구축해야 하는 ‘자체 잔고 관리 시스템’과 한국거래소에서 전체 거래를 검증하는 ‘중앙점검시스템’ 등 두 축으로 구성된다. 자체 잔고 관리 시스템은 기관의 잔고를 실시간으로 확인하면서 계좌별로 보유 잔고 범위 내에서 매도 주문이 나가도록 자체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한국거래소는 투자자들의 대차거래잔고-매매내역 간 비교로 무차입 공매도 실행 여부를 적발할 수 있는 공매도 중앙점검시스템(NSDS)을 구축했고 3월31일부터 가동한다. 이전까지는 잔고에 보유 중인 주식 수보다 많은 주문을 넣고 나중에 나머지 부족해진 주식을 빌리는 방식의 무차입 공매도는 적발하기 어려웠다. 이제는 종목별 잔고 정보와 대차거래 정보를 한국거래소에 2영업일 이내 제출해야 한다. NSDS가 잔고 정보와 매매 내역을 대조·분석해 각 매도 거래의 잔고 초과 여부를 탐지할 수 있어 적발이 가능하다.
잔고 관리는 독립된 부서의 견제·감시를 통한 내부 통제뿐 아니라 NSDS의 증빙 요구 등 이중 감시를 받기 때문에 수기로 거래하는 방식의 무차입 공매도라도 감시망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금융 당국의 설명이다.
MSCI 지수 편입 통해 투자 늘린다
정부와 금융 당국의 결정에는 공매도 재개가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의 필수 조건이기 때문이다. MSCI 지수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사에서 만든 주가지수로, 글로벌 시장에서 많이 사용되는 벤치마크 지수다. MSCI 지수는 세계 각국 증시를 경제 규모·개방성·투명성 등 기준에 따라 선진국과 신흥시장, 프런티어 시장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우리나라는 신흥시장으로 분류돼 있다.
중국과 인도 등의 기업들이 MSCI 신흥시장 지수에 들어오면서 매 분기 지수 변경 때마다 국내 기업들이 중국이나 인도 기업 대비 유동시가총액에서 밀리면서 지수에서 제외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이는 수급상으로도 국내 증시에 악재가 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를 바꾸려면 국내 증시가 MSCI 선진국 지수에 편입돼야 한다. MSCI 선진국 지수를 추종하는 전 세계 자금은 16조 달러에 달하며, 추종 자금은 대부분 장기 자금이기에 투자금 이탈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낮다고 알려져 있다.
MSCI 선진국 지수에 편입되려면 관찰대상국 지위를 1년 이상 유지한 뒤 심사를 거쳐야 한다. MSCI는 2009년부터 2014년까지 우리나라를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지만, 2015년부터는 제외했다.
그동안 MSCI 선진국지수 편입의 발목을 잡아온 것은 공매도가 아니라 국내 외환시장 개방이었다. MSCI는 뉴욕이나 런던 같은 외국에 역외 원화시장을 개설해 24시간 원화가 거래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요구해 왔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거부해 왔다. 그러나 한·미 금리 역전에 환율이 고공행진하며 달러 수급 개선이 필요해지자 정부는 태도를 바꿨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 원-달러 외환시장 거래시간을 기존 오전 9시~오후 3시30분에서 오전 9시~새벽 2시로 연장하고 해외 투자자들의 접근성 제한을 푸는 등 사실상 외환시장을 개방했다.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의 최대 난관이었던 외환시장 접근성 문제가 해소되면서 남은 핵심 과제는 공매도 전면 재개였다고 볼 수 있다. MSCI는 매년 6월에 시장 재분류를 한다. 국내 증시가 MSCI 선진국 지수에 편입되려면 일단 관찰대상국으로 지정된 다음에 1년 후부터 심사를 거쳐야 한다. 관찰대상국 지정 여부는 오는 6월 결정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