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산불의 주범은 ‘빠른 불’과 ‘비화(飛火)’ [김형자의 세상은 지금]

빠르게 움직이고 번지는 산불과 공중으로 날아다니는 불씨, 진화 어렵게 해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산불에 취약한 환경 만들어…산불 위험 더 커질 것

2025-03-28     김형자 과학칼럼니스트

“바람이 이렇게 원망스러운 건 처음이다.” 좀처럼 불길이 잡히지 않는 경북 의성군 산불 진화에 동원된 한 소방관의 하소연이다. 3월21일 경남 산청군에서 발생한 산불은 강풍을 타고 경북 의성과 울산 울주 등으로 번지며 3월27일 기준 아직도 잡히지 않고 있다. 벌써 일주일째 산불이 이어지며 국민은 충격에 빠졌다.

이로 인한 피해 또한 엄청나다. 의성·울주·김해·안동·청송·옥천·영양·영덕 등 지역의 산불 피해 면적은 3월27일 오전 기준 약 3만6000ha로 늘었고, 26명이 사망하는 인명 피해도 발생했다. 이번 피해 규모는 역대 최악으로 기록된다. 지금까지 가장 큰 규모의 산불은 2000년 4월 강원 강릉·동해·삼척·고성을 덮친 산불로, 2만3794ha의 산림이 소실되었다. 2022년 3월엔 경북 울진에서 시작해 강원 삼척까지 번졌던 대형 산불이 2만523ha를 태웠다. 현재 정부는 대형 산불이 발생한 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고 산불 진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피해는 갈수록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이렇게 오랫동안 산불이 꺼지지 않고 계속 타오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한 산불은 29건이다. 이 가운데 대형 산불은 대부분 경상남북도에 집중되어 있다. 이 지역의 산불이 장기화한 것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건조한 날씨와 평년보다 적은 강수량, 고온, 강풍 등 기후 요인을 비롯해 ‘빠른 불(Fast fires)’ 현상이 더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3월25일 경북 안동시 남선면 마을에서 주민들이 야산에 번진 산불을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화재 확산 속도가 화재 규모보다 훨씬 중요

경상남북도 대형 산불의 공통적 특징은 ‘빠른 불’이다. 빠른 불은 단기간에 빠른 속도와 광범위한 확산력으로 큰 피해를 일으키는 산불을 뜻한다. 빠르게 움직이고 번지는 산불은 가장 위험한 산불이다. 과학계에 따르면, 최근 전 세계에서 발생하는 산불은 ‘빠른 불’이 방향성을 주도하며 큰 피해를 입히고 있다고 한다.

빠른 불 연구의 대표적 인물은 미국 콜로라도대 제니퍼 볼치 교수다. 볼치 교수팀은 위성 데이터를 사용해 2001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 본토에서 발생한 6만 건 이상의 화재 증가율을 분석했다. 각 위성 픽셀에 일련의 계산을 적용하는 최첨단 알고리즘을 사용해 각 화재가 활성화된 각 날짜에 대한 경계를 식별하고 기록해, 그 결과를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연구팀의 분석 결과, 특히 미국 서부와 동부 일부 지역에서 산불이 증가했다. 또 서부에서는 20년 사이 하루에 가장 빠르게 확산된 화재의 평균 산불 규모가 2.5배 증가했다. 볼치 교수는 이러한 산불을 ‘빠른 불’이라 부르고, 지구촌에서 일어나는 대형 산불의 특징으로 이 ‘빠른 불’을 지목했다. 특히 빠르게 번지는 불길보다 마치 도깨비불처럼 먼저 불씨를 공중으로 빠르게 날리는 비화(飛火)는 소방관이 개입하기도 전에 다른 곳으로 불이 옮겨붙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수십, 수백m 건너까지 불씨를 옮기는 비화는 산불 진화의 가장 큰 장애물로 꼽힌다.

산불이 번지는 속도가 빨라지면 비상 대응, 대피 계획, 지역사회 대비에 어려움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볼치 교수는 “우리는 화재의 피해 규모로 대형 화재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만, 우리 집과 지역사회를 보호하려면 화재가 얼마나 빨리 움직이는지 인식하고 대비해야 한다”고 말한다. 인프라를 보호하고 효율적인 대피를 조율하는 데 화재의 확산 속도는 화재의 규모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게 볼치 교수의 설명이다.

성묘객에 의한 실화로 추정되는 의성 산불 또한 볼치 교수가 언급한 ‘빠른 불’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기상청에 따르면 3월22일 의성에서 최대 순간풍속 초속 17.9m에 이르는 강풍이 불면서 불길이 빠르게 확산됐다. 평균 풍속은 초속 7.5m에 달했다. 3월21일 처음 산불이 발생했던 산청 지역의 최대 순간풍속은 초속 17.1m였다.

그렇다면 ‘빠른 불’은 왜 이렇게 증가했을까. 빠르고 강력한 산불이 늘어난 대표적 원인으로는 기후변화에 따른 고온 건조한 환경이 지목된다. 대구기상청에 따르면, 의성의 대표 관측지점인 의성군 의성읍 원당리의 올해 1월 강수량은 7.4㎜로, 평년 1월 강수량(15.5㎜)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2월 강수량 역시 4.8㎜로, 평년(22.6㎜)의 21% 수준에 그쳤다.

 

바싹 마른 산림은 작은 불씨에도 취약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은 최근 ‘대형 산불의 증가, 진단과 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2011~20년 한반도는 평균기온 상승과 함께 강수량 감소가 지속돼 건조한 환경이 만들어지면서 산불 피해 건수와 면적이 모두 증가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기후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건조한 환경과 가뭄, 돌발적인 강풍의 결합은 전 세계 어디서나 빠른 불을 일으키고 있는 요인으로 추정한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기후변화에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따른다는 것이다.

한국은 해양성 기후 특성상 봄철엔 일시적으로 건조하고 바람이 강해진다. 기상청은 봄철에는 한반도 남쪽에 자리 잡은 고기압이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고, 반시계 방향으로 도는 북쪽의 저기압과 맞물리면서 강한 서풍이 불어오는데, 이 바람이 높은 산을 넘으며 고온 건조해진다고 밝혔다. 이를 ‘푄현상’이라고 한다. 푄현상은 산 밑으로 불어 내려간 공기가 산을 넘기 전보다 건조하고 기온이 높아지는 것이다.

3월20일 기상청은 서풍이 태백산맥과 소백산맥을 넘어가는 과정에서 바람의 속도가 배가되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당분간 강원 영동과 경북 동해안에 순간풍속 초속 20m 안팎의 강풍이 계속 불 것이라고 예보했다. 현재 경상남북도 지역에는 연일 건조 특보가 발효 중이다. 더구나 3월22일 의성의 최고 기온이 25.2도, 23일은 26.4도로 초여름 수준의 높은 기온을 보인 데다 강풍까지 맞물려 산불이 빠르게 확산되었다고 볼 수 있다.

푄현상과 함께 최근 평년보다 적었던 비로 인해 한국의 산림은 바싹 말랐다. 화약고나 다름없는 바싹 마른 봄철 산림에 등산객이나 주민들이 혹여 실수로 작은 불씨라도 일으키거나 제대로 확인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는 대형 산불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결국 건조한 낙엽층과 활엽수·침엽수로 밀집된 말라버린 식물들이 산불의 불쏘시개 역할을 한 셈이다.

기후학자들은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산불에 취약한 환경을 만들어 향후에도 산불 위험이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기후변화가 더 많은 산불을 일으키고, 폭염을 부르고, 건조한 환경을 만들고, 그로 인해 다시 산불이 잦아지고, 산불에서 발생하는 많은 이산화탄소는 또다시 기후변화를 가속화하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어쩌면 진짜 기후 악당은 초대형 산불일지도 모른다. 우리 삶의 터전을 위협하는 산불이 일상이 되기 전에 기후변화를 늦추기 위한 탄소중립 노력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