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의 선택지로 ‘핵무장 카드’ 확보 필요…美에도 좋을 ‘다양한 시나리오’ 준비해야” 

[인터뷰] 이근 서울대 교수가 말하는 ‘핵 카드’론…‘펜타곤 넘버3’ 구상과 일맥상통 “북·중·러 맞설 한일 ‘우호적 핵 분업’ 협력 가능…‘日 핵 능력, 韓 미사일’ 분담 방안도” “트럼프-김정은 만나도 ‘빅딜’ 없을 것…한미동맹 외 다양한 외교 수단 강화해야”

2025-03-30     강윤서·김종일 기자

“트럼프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충격적이다? 그는 너무 예측 가능하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3월21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다른 진단’을 내놨다. 이 교수는 관세전쟁 등 트럼프가 오랫동안 ‘예고했던’ 수많은 사안에 대해 한국 정치권 등의 대책이 부족했던 것이지 트럼프는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시즌2’를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 속에서 끌고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변수도 있었다. 계엄·탄핵 사태라는 국내적 불확실성은 미국이 한국을 바라보는 데 불확실성을 키웠다. 불확실성은 불신을 키운다. 바이든 행정부의 ‘민감국가’ 지정 조치를 트럼프 행정부가 이어받으면서 불확실성은 더욱 증폭됐다. 지금 한국이 맞은 위기적 상황에 대해 다른 진단을 내놓은 이 교수가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내놓은 해법은 무엇일까.

이 교수가 제시한 방안은 크게 세 단계였다. ①트럼프를, 트럼프의 의도를, 트럼프의 방향성을 ‘사실’을 토대로 파악하라 ②타성에 젖은 이론적 접근법에서 벗어나 창의적으로 외교·안보 전략을 구상해 ‘다양한 카드’를 마련하라 ③국가 간 협력 ‘우선순위’를 명확히 하고, ‘강대국’이라는 목표 아래 ‘시장 경쟁력’을 확대하라.

특히 이 교수는 이 과정에서 다양한 시나리오 속 다양한 핵 카드를 확보해 미국과의 협상 범위를 넓혀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한적 상황’ 속에서만 가동 가능한 시나리오겠지만, 한국과 일본의 ‘우호적 핵 분업’ 협력 카드도 고려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구체적으로 일본은 ‘핵 능력’을 맡고, 한국은 ‘핵 이동’을 담당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고 했다. 예컨대 전쟁 상황이 급박할 때 일본이 신속히 확보한 핵탄두를 한국 미사일에 탑재하는 방식이다. 창조적으로 다양한 핵 카드를 확보해야 한다는 이 교수의 이런 구상은 미 ‘펜타곤 넘버3’인 엘브리지 콜비 국방부 정책차관 지명자가 밝힌 생각과도 일맥상통한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시사저널 박정훈

① 트럼프를 파악하라…“군사력보다 시장이 더 중요한 수단”

트럼프가 예측 가능한 인물이라고 평가하는데.

“그렇다. 트럼프 1기 행적을 보면 2기 행정부도 예측 가능하다. 대외 정책은 물론 대내 경제정책과 관련해서도 너무 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무역적자 해결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되지 않으면 다자 무역협상을 거부하고, 불공정 행위를 한다고 간주되는 국가엔 높은 관세를 책정할 것이다. 이는 사실상 예상됐던 위험한 시나리오였고, 트럼프 2기 출범 후 그대로 흘러가고 있다.”

국내에선 ‘트럼프는 예측 불가’라는 인식이 많은데.

“문제를 회피하는 태도다. ‘트럼프 리스크’를 예측할 때 우리에게 굉장히 불리하고 무역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가 있었지만, 사실상 받아들이기 싫었던 것이다. 예측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트럼프 자체를 비난하고 싶었던 것 아닐까.”

현재 미국의 대외 정책 좌표를 어떻게 보나.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이 최근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다음 달부터 상호관세 부과를 예고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의 무역이 공정해지려면 기준선을 재설정한 뒤 타국과 잠재적인 양자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 이는 미국 입장에서 굉장히 합리적인 주장이다. 1945년 이후 미국이 주도한 세계 질서에서 유럽과 일본, 한국 등 세계 각국은 성장했다. 하지만 지금 미국은 재정적자와 무역적자, 대규모 실업 등을 감당하면서까지 이 질서를 책임질 이유가 없다고 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금의 세계 질서에서 ‘손 떼겠다’가 아니라 ‘이제부터 스스로 더 부담하라’고 선포한 것이다.”

트럼프는 현실주의자인가.

“현실주의자가 아닌 ‘현타’주의자가 더 정확한 표현이다. 각 국가가 현실을 자각할 수 있도록 냉정하게 ‘현실 자각 타임’을 일깨우고 있다. 그럼에도 대다수 국가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점차 경고 수위가 높아졌고 결국 미움을 받게 됐다.”

가자지구 개발·점령, 그린란드의 미국 편입 등 상상을 초월하는 구상을 내놓고 있다.

“그에게 군사력은 수단일 뿐이지 목적이 아니다. 트럼프가 자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를 ‘시장경제’로 접근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진짜 목적은 미국의 시장을 확충해 ‘우리 것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북한을 관광지로 개발하겠다는 구상과 일맥상통하다. 트럼프는 모든 걸 시장 논리로 접근해 해결하기 때문에 오히려 전쟁과 거리가 멀다. 자유주의 국제 질서에 가장 깊이 발을 담근 사람이다. 다수의 학자가 이를 정반대로 해석하고 있다는 게 안타깝다.”

2019년 6월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남측 자유의집에서 회담하고 있다. ⓒ연합뉴스

② 협상 카드 최대한 확보하라…“핵무장도 독창적으로 접근”

자체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트럼프는 거래를 중시한다. 우리가 알아서 핵 카드를 포기하기보다는 트럼프에게 이익이 되는 거래를 통해 급변사태 시 핵무장을 받을 수 있도록 아이디어를 고안하자는 입장이다. 외교에선 협상 카드를 ‘살라미 전술’로 많이 가질수록 우리에게 유리하다. 그러기 위해선 핵 카드를 배제하지 말고 우선 트럼프의 핵 안보 전략을 먼저 확인한 뒤 이에 맞춰 설득 전략을 짜야 한다. 한국도 일본 수준의 핵 능력을 보장받으면 좋겠지만, 미국의 신뢰가 낮은 지금 상황에선 그 논리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

실현 가능성이 있는 핵무장 시나리오가 있다면.

“제가 제안했던 방안 중 하나는 일본과의 안보협력이다. ‘제한적 상황’ 속에서만 가동 가능한 시나리오겠지만, 이른바 한국과 일본의 ‘우호적 핵 분업’ 협력 카드다. 구체적으로 일본은 ‘핵 능력’을 맡고, 한국은 ‘핵 이동’을 담당하는 시나리오다. 가령 최악의 상황이 현실화되기 직전 일본이 확보한 핵탄두를 한국 미사일에 탑재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된다면 양국 입장에선 핵보유국이 연관된 전시 상황이 발생할 경우 서로 빠르게 억지력을 확보할 수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핵무장을 수용할 수 있을까.

“트럼프 행정부에서 국방차관에 지명된 엘브리지 콜비를 주목해야 한다. 그는 한국의 핵무장에 비교적 열려 있는 인물로, 핵 안보 차원의 구상이 제 생각과 유사한 부분이 있다. 미국이 미사일 방어 개선, 중국 압박 등 모든 노력을 동원해도 북핵 억제의 한계에 봉착한다면, 한국의 핵무장도 고려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핵무장을 용인할 수밖에 없는 시점은 대만 사태 등으로 미·중 간 일촉즉발 상황이다. 그 상황에서 확장억제를 제공하는 건 ‘아메리카 퍼스트’에 맞지 않다고 판단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트럼프는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러시아와의 핵전쟁을 회피하겠다는 표현을 한 바 있다.”

한국의 핵무장이 한반도를 넘어 큰 파장을 일으키지 않을까.

“최근 프랑스가 유럽의 자체 안보 강화를 위해 자신들이 유럽에 핵우산을 제공하겠다고 나섰다. 아시아에선 민주주의 국가 중 핵을 가진 나라가 없다.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아시아에서도 한국과 일본이 논의를 이끌어야 하지 않느냐는 근본적인 의문도 제기해야 한다고 본다.”

미국이 핵무장론을 의식해 ‘민감국가’ 조치를 내렸다는 분석도 있다.

“매우 신중히 접근해볼 문제다. 자체 핵무장은 주권적인 이슈이자 한미동맹과 밀접한 사안이다. 만약 미국이 이를 민감국가 지정 원인으로 검토했다면 미국의 국가안보회의(NSC)나 국방부 등에서 한국 외교부나 국가정보원 등 어떤 경로를 통해서라도 경고하지 않았겠나. 세부적인 내용은 사실 확인을 해봐야겠지만, 정치인들이 진영논리에 따라 침소봉대하는 태도는 멈춰야 한다. 그런 행태는 결국 미국에 레버리지를 제공하고 국익을 깎아버리는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민감국가 지정을 해제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신뢰 회복이 급선무다. 탄핵 국면의 마무리, 정국 안정화와 동시에 한미동맹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외교 기조를 보여줘야 한다. 또 민감국가 지정의 구체적 이유가 보안 사고라면 이를 빠르고 확실히 통제하려는 태도를 보여 불확실성을 제거해 줘야 한다.”

트럼프-김정은의 빅딜이 가능하다고 보나.

“트럼프와 김정은이 다시 만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보지만 ‘빅딜’은 없을 것이다. 북한은 지난 회담 때 미국한테 당했던 기억이 아직 생생할 것이다. ‘톱다운 방식’ 협상의 한계를 분명히 실감한 양국이다. 이번에 만남이 이뤄져도 김정은은 호락호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실무진 차원의 구체적 핵 협상에서 타결이 이뤄질 가능성은 희박하다. 트럼프 또한 이를 예상할 것이기에 김정은과의 친분 과시용 등 상징적인 만남 수준에서 회담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있다.”

관세전쟁에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나.

“트럼프의 관세전쟁은 ‘보호무역 차원’보다는 ‘경제 제재’다. 무역적자 국가로부터 적자를 줄이거나, 선도 사업과 제조업을 미국으로 끌어오려는 구상이다. 따라서 우리도 한미 경제관계 전반에서 관세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미국의 대중 전략 경쟁에서 한미 관계가 굉장히 중요한 역할이고, 현대자동차와 같이 미국에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투자에 신경 써야 한다.”

 

③ 고래가 헤엄치는 바다로 가라…“5대 강대국을 목표로”

윤석열 정부 외교정책에 대한 총평을 한다면.

“한미, 한일 관계를 잘 관리한 것 외에 외교 업적은 없다. 이 두 관계마저 ‘북·중의 위협을 막아내겠다’ 수준의 안보적 접근만 있었다. ‘시장의 시대’라는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외교정책을 발전시키지 못했다. 정부는 통상과 기술협력은 물론 미래 선도 산업의 차원에서 글로벌 선두주자가 될 수 있게 이끌어야 하는데 연구개발(R&D) 예산은 되레 깎아버렸고, 구체적 협력 투자 대책도 부족했다.”

현재 가장 필요한 외교·안보 좌표는 무엇일까.

“강대국의 길로 가기 위해 동맹 및 외교관계의 ‘순서’를 정립하고, 우리에게 필요한 ‘외교 수단’을 확실하게 확보해야 한다. 제일 중요한 축은 한미동맹이다. 이게 제일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에겐 한미동맹 다음의 외교 수단이 없다. 현시점에서 우리가 주도하는 다자협력기구가 없다. 안보와 기술 측면에서 한미동맹에 대한 의지를 재확립한 후, 한일 간 안보협력 공간을 확장시키고, 한·미·일 삼각협력을 안정화시켜야 한다. 이후 G7(주요 7개국) 플러스 가입과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동맹) 참여,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 가입 등을 통해 다양한 외교 카드를 쥐어야 한다. 순서상 이들과의 협력이 우선되고 그를 바탕으로 중국, 러시아와의 경제협력을 통해 시장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한국이 강대국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강대국 사회에서 생존하기 위해선 우리도 강대국이 되는 것밖에 답이 없다. 그 길은 ‘시장’에서 시작된다. 현재 세계 1위 강대국은 미국, 2위는 중국, 그 뒤로 유럽과 일본이 있지만 유럽의 하강으로 인해 한국이 들어갈 공간이 열려 있다고 본다. 중국의 기술력이 급성장하고 있지만 리더십의 한계도 극명하다. 유럽의 경우 디지털 경제에서의 경쟁력이 저물고 있고, 극우정당의 등장으로 고립주의 체제가 고착화하고 있다. 여기서 우리의 공간이 열린다. 한국이 전근대적 이념정치에서 벗어나고 정치적 안정기에 강대국 비전을 수립해 잘 이륙한다면 충분히 강대국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