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中 견제 위해 ‘주한미군 역할’ 조정 시사…한국에 ‘안보 청구서’ 내미나
‘동맹에 부담 떠넘기는’ 美 국방부 새 전략…“北 대응은 한국이 알아서” 중국의 대만 점령 저지 명시…유사시 주한미군 동원 가능성 높아져
모자이크와 퍼즐은 조각의 호환성에서 차이가 난다. 퍼즐은 한 조각만 없어도 전체 그림을 완성할 수 없다. 정교한 조각이 모두 제자리에 있어야 그림이 완성된다. 반면 모자이크는 비슷한 색과 모양을 가진 조각들로 구성되어 있어 조각이 일부 없더라도 전체 그림을 만드는 데 큰 문제가 없다. 그리고 조각마다 반드시 정해진 자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비슷한 다른 조각들로 서로 자리를 바꾸어도 전체 그림의 모양을 갖출 수 있다. 미군은 2016년부터 모자이크 개념을 차용해 ‘미래 전투수행방식’을 발전시키고 있다. 바로 ‘모자이크전(Mosaic Warfare)’이다.
모자이크와 퍼즐의 조각을 전투기 편대나 특수작전부대와 같은 전투 수행의 최소 단위인 전투모듈(module)로 본다면 퍼즐은 조각들이 정해진 위치에 정확히 들어가야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는 ‘고정형 모듈’로 이루어진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반면 모자이크는 전투 수행 상황에 따라 전투모듈이 다양하게 역할을 수행하며 자리를 옮겨도 전쟁이라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호환형 모듈’로 이루어진 게임으로 볼 수 있다. 인공지능과 4차 산업혁명의 초연결 과학기술을 활용해 전투모듈을 고정된 역할에 묶어두지 않고 전장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이 조각을 빼서 저기에 위치시키고, 저 조각을 빼서 여기에 위치시키며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작전을 수행하는 방식을 모자이크전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中 견제에 한국 참여하라는 압박 커질 우려도
모자이크전은 일단 전투 수행과 직결된 전술적인 차원에서 논의되는 개념이다. 하지만 3월29일 워싱턴포스트에 단독 보도된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의 ‘임시 국가 방어 전략 지침’을 보자면 이제 미군이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전략적인 차원에서도 모자이크전 개념을 활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지침에 따르면 미군은 인력과 자원의 제약을 고려해 여타 지역에서의 위협을 감수할 것인데, 유럽과 중동·동아시아 동맹들이 각각 러시아·이란·북한과 같은 위협을 억제하는 데 주된 역할을 담당하도록 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호환성 좋은 동맹이라는 조각을 미군의 빈자리에 끼워넣으며 비용은 최소화하고 안보 효과는 유지해 보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특히 지침은 중국을 유일한 ‘추격하는 위협(pacing threat)’으로 간주하고 중국의 대만 점령 시도를 거부하면서 동시에 미국 본토를 방어하는 것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했다. 경우에 따라 대만해협에 위기가 발생하면 주한미군을 한반도에 붙박이 조각으로만 고정해 두지 않을 가능성이 커지는 것이다. 주한미군의 빈자리는 한국군이 대신해 모자이크의 조각 역할을 하며 북한 위협을 억제해야만 한다. 그래야 미국의 군사적 영향력과 동맹국들의 안보가 유지되는 큰 그림 모자이크가 완성된다.
워싱턴포스트 보도에 대해 한국 국방부는 3월31일 “미 국방부 공식 입장이 나오거나 확인된 사항이 아니다”면서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하는 것이 주한미군의 가장 큰 역할이고 그것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동아시아와 인도·태평양 지역의 안보를 위해 주한미군이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해 한반도 밖에서도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은 미국에서 오래전부터 지속됐다는 점도 변함이 없다.
미국은 전략적 유연성을 통해 2만8500명 수준의 주한미군을 다양한 전장에 투입하고 싶어 했다. 2006년 참여정부 당시 한미 양국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합의한 바도 있다. 이를 물릴 만한 명분도 현재로서는 불분명하고, 트럼프 행정부의 태도로 보았을 때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 요구는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이 요구는 한국에 대한 국방비 증액 압박으로 이어질 공산도 크다. 북한 위협에 대한 한국의 자체 대응 능력을 제고하기 위해 국방비 인상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다. 방위비분담금도 덩달아 요구할 수 있다.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을 한국이 원하는 수준으로 조정해줄 테니 대신에 방위비분담금도 늘리라고 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선거 캠페인 당시에 한국을 머니머신(money machine·현금인출기)이라고 부르며 방위비분담금으로 100억 달러(약 14조원)를 제시한 바 있다. 2026년도에 예정된 방위비분담금 1조6000억원의 약 10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美 안보 클럽에 계속 있으려면 회비 더 내라”
이번 헤그세스 장관의 지침에 ‘임시’라는 단어가 붙어있어서 이것이 얼마나 구체화할지는 앞으로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미국이 주도하는 안보 클럽에 계속 속해 있으려면 ‘회비를 더 내라’는 기조는 결코 바뀌지 않을 전망이다. 동맹국이라면 미군이라는 조각과 최대한 동기화된 수준과 능력을 갖추고 모자이크를 함께 구성해야지 호환이 안 되는 조각은 곤란하다는 입장은 앞으로도 수시로 나올 전망이다.
우리가 이를 압박으로만 받아들인다면 어두운 전망이 되겠지만 기회로 활용하겠다고 나선다면 어두운 전망도 긍정적인 미래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미군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독자 핵무장을 제외하고는 자체 국방력을 키우기 위해 무엇이든지 하겠다는 명분 확보와 공간 창출도 가능한 때다.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을 위한 평가가 계속 진행 중인데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위협에 한국이 직접 대응하라며 조속한 전환을 추진할 수 있다는 분석도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물론 준비가 덜 된 전작권 전환은 재앙이 될 수도 있고, 독자 핵무장을 안 한다면 북한의 핵위협을 재래식 전력을 통한 대량응징 보복으로 막아야 하는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존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미사일인 현무5 이상의 능력 확보 추진, 미군으로부터 첨단 모자이크전 수행 방식 전수와 한국군 교리 현대화 등 자강을 추구한다면 새로운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때마침 비슷한 입장에 처한 유럽도 유럽 재무장(ReArm Europe)을 주창하며 앞으로 4년간 8000억 유로(약 1270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밝혔는데 한국 방산 업계에는 기회가 아닐 수 없다. 항공기는 프랑스, 지상무기는 독일이 한국 방산업체들보다 강세를 보이고 있으나 이외 미사일, 무인기, 함정 등에서는 전반적으로 한국 방산 업계가 가성비 면에서 유럽 국가들과 접촉면을 더욱 확대할 수 있다. 창칼을 녹여 낫과 쟁기를 만들어 쓸 수 있는 태평성대라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어찌하겠는가. 시절이 바뀌었으니 다음 태평성대를 기다리며 자강과 생존을 모색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