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의 ‘사저 정치’ 가능성은? “‘정치인 윤석열’은 끝까지 갈 것”

서초동으로 돌아가는 윤석열 전 대통령, 강성 지지층 업고 경선에 영향력 행사할까 김문수·한동훈에 관심 쏠려…‘탄핵 찬반’ ‘尹과의 거리’가 與 경선 최대 변수

2025-04-05     이원석 기자

764일. 4월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채우지 못한 남은 임기(2027년 5월9일까지)다. 2022년 5월10일 청와대를 나와 용산에 대통령실, 한남동에 관저를 마련하며 임기를 시작한 윤 전 대통령은 3년이 채 되기 전, 1060일 만에 용산과 한남동 모두에서 짐을 빼게 됐다. 그는 대통령 취임 전 원래 거주했던 서울 서초동 아크로비스타로 돌아가 자연인의 삶으로 복귀하게 됐다.

일각에선 윤 전 대통령의 불복 가능성도 거론됐다. 윤 전 대통령 측은 탄핵 선고 직후 헌재 판단에 대해 “참담한 심정”이라며 “법리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며 완전히 정치적인 결정”이라고 평가했다. 윤 전 대통령은 선고 2시간30분여 후 짧은 입장문을 내고 “그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일할 수 있어 큰 영광이었다”며 “많이 부족한 저를 지지해 주시고 응원해 주신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린다. 기대에 부응하지 못해 너무나 안타깝고 죄송하다”고 밝혔다. 차분한 메시지지만, 헌재 판결에 대한 승복 여부를 명확히 밝히지 않았다고도 읽힐 수 있는 등 다의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는 발언이라는 평가가 많다.

서울구치소에서 석방된 윤석열 대통령이 3월8일 서울 한남동 관저 앞에서 차량에서 내려 지지자들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尹 “기대 부응 못 해 죄송”…승복 선언 없어

윤 전 대통령은 파면됐지만 정치권의 시선은 새롭게 서초동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이 이른바 ‘사저 정치’에 나설 것이란 관측이 나오면서다. 윤 전 대통령은 취임 이후에도 관저 공사에 약 6개월이 소요되면서 서초동이 정치권의 주목을 받았는데, 3년여 만에 다시 서초동으로 시선이 쏠리는 셈이다.

“‘대통령 윤석열’이 물러나더라도 ‘정치인 윤석열’은 끝까지 갈 것”이라는 한 국민의힘 지도부 관계자의 전망은 의미심장하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국민의힘 당대표를 지내며 윤석열 당시 후보를 가까이에서 경험했던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 역시 윤 전 대통령이 탄핵 인용 이후 ‘아주 강한 공격모드’로 사저 정치에 나설 것이라며 “저는 대통령에 대한 확신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런 전망이 나오는 데는 몇 가지 근거가 있다. 우선 윤 전 대통령을 받드는 강성 보수층이 형성된 환경이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하반기 10~20%대 지지율로 보수 지지층 상당수로부터도 외면받으며 정치적 수세에 몰린 바 있다. 그러나 12·3 비상계엄 이후 탄핵 정국에서 오히려 지지율이 급등하면서 보수 지지층들 속에 입지를 바로 세웠다.

역설적으로 보이는 이러한 현상은 윤 전 대통령 개인의 행위보다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중심의 거대 야당에 대한 거부감과 약 8년 전 보수진영이 겪은 탄핵 트라우마의 영향으로 촉발됐다는 분석이 많다. 물론 윤 전 대통령이 그 현상을 온몸으로 받아들이면서 호응했고 시너지가 났다. 그는 여러 차례 입장문을 통해 지지자들을 ‘국민’ 자체로 치환하며 독려했다. 윤 전 대통령의 성원에 힘입은 지지자들은 연일 한남동 관저 앞을 지켰고, 급기야 윤 전 대통령의 구속 결정에 지지자들이 법원을 습격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정치권은 윤 전 대통령과 지지층 간 이 같은 강한 유대가 앞으로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윤 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를 주도해온 전광훈 목사의 자유통일당은 헌재 선고 직후 “부당한 결정이므로 인정할 수 없다”면서 ‘시민 불복종 투쟁’을 전개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강성 보수층의 움직임이 윤 전 대통령이 향후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반으로 작용할 수 있어 보인다.

윤 전 대통령의 사저 정치 가능성의 또 다른 배경으로는 ‘필요의 측면’도 거론된다. 탄핵심판에서 정치적 타격을 입은 윤 전 대통령은 이제 비상계엄 관련 내란 우두머리 혐의 재판을 마주해야 한다. 비상계엄을 선포할 수밖에 없었다는 당위성을 피력하며 혐의를 전면 부인하고 있는 윤 전 대통령은 자기 변호를 위해 여론의 지지를 필요로 할 것으로 보인다. 윤 전 대통령이 서초동 사저에서 여론전에 나설 것이라는 예측에 무게가 실리는 또 하나의 이유다.

국민의힘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가운데)과 권성동 원내대표(왼쪽) 등 당 지도부가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인 4월4일 국회에서 열린 비상대책위원회의에 참석해 있다. ⓒ연합뉴스

尹心에 쏠릴 시선…누구를 밀까, 막을까

윤 전 대통령의 영향력은 향후 여당 내 대권주자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나타날 것이란 관측이 많다. 이른바 ‘윤심(尹心·윤 전 대통령 의중)’의 재등장이다. 윤 전 대통령 취임 이후 윤심은 당내 선거, 전국 선거, 재보궐선거를 가리지 않고 등장해 그때마다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윤 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와 윤심의 지배력은 대체로 비례했다. 임기 1년 차 윤 대통령의 위상이 강력했던 2023년 초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선 타 후보에 비해 지지율이 저조했던 김기현 당시 후보가 윤심에 힘입어 당대표에 최종 선출됐다. 반면 지난해 윤석열 정부 심판 성격이 강했던 총선에서 쓰라린 패배를 기록한 직후 치러진 7월 전당대회에선 윤심의 지원을 받은 원희룡 당시 당대표 후보가 힘을 쓰지 못했다.

현재는 윤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지지층이 결집해 있는 만큼 윤심이 강력하게 작동할 환경은 마련됐다고도 볼 수 있다. 이미 어느 정도 윤심이 작용하고 있다고 볼 만한 대목도 있다. 차기 대권주자 지지율을 조사하는 여론조사에서 윤 전 대통령을 적극 옹호해온 김문수 고용노동부 장관이 몇 달째 여권 내 선두를 유지하고 있으며, 윤 전 대통령과 각을 세운 잠룡들은 후순위로 밀려나 있다. 윤 전 대통령이 직접 드러내지 않았더라도 지지층이 일찌감치 윤심과 동화돼 움직이고 있다고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윤심이 아직 직접 드러나지 않았다는 지점은 변수다. 일각에선 윤심이 현재 보수층이 지지를 보내고 있는 김문수 장관뿐 아니라 다른 잠룡에게로 향할 수 있다는 설도 나돈다. ‘탄핵 반대파’ 중 원희룡 전 국토교통부 장관, 홍준표 대구시장 등의 이름이 거론된다. 다수의 윤심 주자가 교통정리를 통해 현재 김 장관에게 향해 있는 강성 보수층의 지지를 온전하게 가져갈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분석이다.

사실 윤심의 등장은 이미 예고된 바 있다. 정치권에 따르면 구속 상태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있던 윤 전 대통령은 면회 온 친윤(親윤석열) 측근 인사들에게 ‘만약 차기 대선이 이뤄지면 ○○○이 대통령이 돼야 한다’ ‘국민 추대 후보로 갈 것’이라는 취지의 말을 했다고 한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 이후에도 계속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전망의 가장 직접적인 근거이기도 하다. 윤 전 대통령이 직접 ‘○○○’을 지목하고 나선다면 향후 당내 경선 과정에서 판세가 크게 요동칠 수 있어 보인다.

윤심이 ‘네거티브’ 방식으로 등장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특정 후보는 안 돼’라는 식으로 윤 전 대통령의 의사가 표출될 가능성이다. 이와 관련해 한동훈 전 대표 측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대통령으로서 당무 개입의 리스크가 존재한 만큼 그동안 윤심은 간접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제는 윤 전 대통령이 자연인 신분이 된 만큼 오히려 직접적이고도 적극적으로 자신의 의중을 표현할 것이란 전망이다.

 

與-尹의 동거 계속될까…차기 당권이 바로미터

윤심이 어떤 형태로 나타나든지 간에 위헌적 통치 행위로 파면된 대통령의 영향력 행사에 대한 평가가 여권 안팎에서 강하게 나올 것으로 보인다. 이 지점에서 깊은 고민에 빠질 수밖에 없는 건 국민의힘이다. 6월 조기 대선 정국에서 국민의힘이 이른바 ‘탄핵의 강’을 건널지, 그 강에 뛰어들지를 선택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간 탄핵 정국에서 국민의힘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에 대한 평가를 미루며  보수층의 결집 흐름을 최대한 이어가려는 모습을 보였다. 우선 집토끼를 지키는 선택을 한 것으로 해석됐다. 8년 전 탄핵 때와 같은 분열 상황만은 막아야 한다는 트라우마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전략이 나름 먹혀들었단 자평도 있다. 그러나 탄핵 인용으로 결론 난 시점에 같은 기조로 대선을 치를 수 있는가는 다른 문제란 지적이 당내에서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민의힘 다선의원은 “단순히 지지층만 바라보고 정치를 할 수 없다.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고, 그만한 정치적 책임도 있는 만큼 이제는 뒤로하고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지금까지 여당의 태도에 대해 사과하고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대선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 다른 여당 초선의원도 “대선주자들이 윤심에 기대면 안 된다. 주자들과 당 지도부가 나서서 윤심과 거리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탄핵된 대통령이 더 이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겠냐는 상식적인 전망도 있지만, 실제 당내 시각은 당 밖과는 괴리가 있어 보인다. 국민의힘 지도부의 한 관계자는 “확장성을 얘기하지만, 대선에서 이기기 위해 더 중요한 건 분열하지 않는 것”이라며 “오히려 윤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당이 똘똘 뭉쳐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의원이 적지 않다”고 당내 분위기를 전했다.

현재 국민의힘 내 일부 유력 주자 사이에선 대권보다는 당권에 더 초점을 맞추는 행보가 많다는 관측도 이런 분위기와 결이 맞닿아 있다. 탄핵 직후 대선 승리는 사실상 어렵고, 당 내부에서 비상계엄과 탄핵에 대한 판단을 두고 극명한 시각차가 존재하는 만큼 내부적으로 격렬한 싸움이 벌어질 것이란 전망에서다. 그 과정에서 윤심이 등장하거나, 윤심을 활용하는 인사들, 세력들이 나타날 공산이 크다는 우려다. 탄핵 정국에서 윤 전 대통령을 적극 옹위하는 행보를 보인 나경원·윤상현 의원이 각각 당대표와 원내대표 주자로 거론되는 것도 이러한 흐름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윤 전 대통령 파면 직후 일단 고개를 숙였다. 권영세 비상대책위원장은 “안타깝지만 국민의힘은 헌재의 결정을 무겁게 받아들이며 겸허하게 수용한다”며 사과의 메시지를 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대선 승리를 위해 모든 차이를 털어버리고 하나로 뭉치자”고 당내 화합을 강조했다. 그러나 곧바로 당내에선 ‘탄핵에 찬성한 의원들을 조치해야 한다’는 탄핵 반대파의 목소리가 새어 나온다. 과연 여의도와 서초동은 앞으로 같이 갈 수 있을까. 여의도와 서초동의 시계가 따로 돌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