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기의 과유불급] 이재명, ‘DJ식 국민통합’ 정치로 바꿀 때

2025-04-05     전영기 시사저널 편집인

권력의 성질과 사용법을 다룬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엔 윤석열과 이재명을 연상시키는 대목이 있다. “군주는 여우와 사자에게 배워야 한다. 사자는 함정에 속수무책이고 여우는 늑대에 속수무책이다. 함정을 알아채기 위해 여우가 되어야 하고, 늑대를 겁주기 위해 사자가 되어야 한다. 현명한 군주는 불리하거나 존재 이유가 사라진 약속은 지킬 필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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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수능란한 변신…윤석열과 생존게임에서 이겨

4월4일 파면된 윤석열 전 대통령은 수가 뻔히 읽히는 오만과 고집불통의 일방향 권력만 행사하다 함정에 빠져버린 사자 신세가 됐다. 반면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때로는 교활한 여우처럼, 때로는 늑대를 후려치는 사자처럼 능수능란한 변신을 무기로 윤석열과의 생존게임에서 승리했다.

국회의원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노라 약속하고는 정작 체포동의안이 상정되자 동전 뒤집듯 말을 바꾼 것도 마키아벨리의 지침과 일치하고, 지난해 총선 때 보였던 무자비한 공천학살은 사랑보다 두려움을 안기는 군주가 오래간다는 권력론에 부합한다. 약속 위반, 거짓말, 공포정치는 어느덧 이재명의 특성으로 인식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8년 전 4월의 문재인 후보를 반면교사로 삼으면 좋을 것 같다. 내우외환에 흔들리던 야당 대표 문재인에게 박근혜 탄핵은 가뭄의 단비였다. 탄핵 정국의 주도권을 잡아 국민적 인기가 치솟고 진영의 신뢰가 붙게 되자 그는 국민통합과 적폐청산,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러 다녔다. 조기 대선에서 압승한 문 전 대통령이 집권 제1 과제로 국민통합을 내세웠다면 모르긴 몰라도 정권 재창출에 실패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정치의 수단에 불과한 적폐청산을 제1 실천과제로 수행하는 바람에 온 나라를 5년 내내 ‘네 편 내 편’으로 찢어놨다. 이로 인해 국민통합이라는 정치의 목표는 실종됐다. 일단 시작한 적폐청산이 검찰 칼날과 함께 춤을 추자 누구도 멈춰 세우지 못했다. 한국 정치가 경제와 번영을 기획하기보다 이념 과잉과 진영 전쟁으로 날이 새고 지는 나라로 굳어진 건 문재인 시대에서다.

따라서 차기 대권을 꿈꾸는 이 대표가 문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않았으면 한다. 사실 현재 이재명에겐 2017년의 문재인과 비교하면 훨씬 두터운 비토 인구층이 존재한다. 지금 국민의힘이 당시 여권 후보들의 분열 출마와 달리 단일 후보를 세워 출마시킨다면 이재명의 꿈은 깨질 수도 있다.

그의 정치행태와 인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이른바 ‘이재명 포비아’ 현상은 본인도 잘 알고 있을 터다. “이재명이 입법권력에 이어 행정권력까지 갖게 되면 도대체 어떤 괴물이 탄생할 것인가. 앞으로 두 달간 (조기 대선에서) 이런 포비아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가 이 대표의 숙제가 될 것(진중권 광운대 특임교수)”이라는 지적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달라지기 어렵다. 그러나 어떤 특정한 사건을 겪으며 변하는 사람도 없지 않다. 이쯤에서 이 대표가 개인과 진영에 복무하는 정치인을 넘어 국민 전체를 상대하는 국민통합형 지도자로 캐릭터를 확장했으면 한다. 사람들의 포비아가 사라질 때까지 반복해서 일관성 있는 행동으로 변화를 증명하시길.

 

여당이 단일 후보 세우면 李 대권 꿈 깨질 수도

최근 이 대표는 국민의 먹고사는 문제를 중시한다는 이른바 ‘먹사니즘’을 강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비현실적인 내용도 꽤 있지만 문재인식 이념 투쟁과는 방향이 반대라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작고한 김대중(DJ) 전 대통령은 집권 과정에서 군부 비토 그룹이 꿈틀거릴 정도로 좌파 이념이 우려됐으나 실제 통치에 임하자 시장원리를 철저히 따르고 정보화 시대를 여는 등 국민 생활 향상에 집중했다. DJ는 요즘 진보 대통령이라기보다 국민통합을 이뤄낸 대통령으로 재평가받고 있다. 이재명 대표가 실패한 과거 청산 정치를 버리고 김대중식 국민통합 노선을 실천하길 바란다. 

전영기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