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포위전략’이 흔들린다…한덕수의 ‘헌법재판관 임명’이 불러온 나비효과
정국의 중심에 재소환된 ‘윤석열’…대행의 ‘대통령 몫’ 임명은 전례 없는 초유의 일 韓, ‘안정’과 ‘균형’에 방점…국민의힘 내부에선 “‘개헌 대 反개헌’ 전선 흐트러져”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4월8일 조기 대선 정국이 펼쳐진 정치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한 대행은 4월18일 퇴임을 앞둔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 후임으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명했다. 그간 미뤄왔던 마은혁 헌법재판관, 마용주 대법관 임명과 함께였다.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명해 임명된 재판관으로, 대통령이 지명·임명권을 행사한 인물들이다.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임명한 것은 전례가 없는 초유의 일이다.
韓 대행, 尹 탄핵심판 전에 이미 임명 결심 굳혀
핵심 쟁점은 크게 3가지다. 바로 ①권한의 적절성(‘대통령 몫’인 헌법재판권 임명 권한을 권한대행이 과연 갖고 있는지) ②인사의 적절성(이완규 처장은 12·3 사태 연루 의혹으로 고발당한 상황인데 과연 재판관으로 적정한지) ③입장의 적절성(‘소극적 권한’ 행사가 대행으로서 취해야 할 자세라면서 지난해 12월 마은혁·조한창·정계선 재판관에 대한 임명을 보류했던 한 대행이 이번에는 정반대로 ‘적극적 권한’ 행사를 한 게 과연 적절한지) 등이다.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한 대행은 이런 논란을 충분히 예견하면서도 자신의 선택을 밀어붙였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결정이 나오기 전부터 3명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겠다는 뜻을 주변 핵심 참모들에게 밝히고, 법적 검토는 물론 정치적 파장 등에 대한 숙고를 해왔다고 전해진다. 한 대행은 3월24일 직무복귀 이후 자신과 오랫동안 신뢰관계를 쌓아왔던 법조인, 언론인, 시민사회 원로 등에게 조언도 구했다. 결심을 굳히고 나서는 몇몇 여권 고위 관계자에게 이런 의사를 전했다.
복수의 한 대행 핵심 측근에 따르면, 특히 한 대행은 윤 전 대통령이 직무정지가 아닌 궐위 상태가 되면 국정 운영의 ‘안정’과 ‘균형’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권한 행사를 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왔다고 한다. 옳고 그름의 문제를 떠나 한 대행 입장에서 보면,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국회 추천 몫 마은혁 후보자와 함께 대통령 몫으로 보수 성향 이완규·함상훈 후보자를 임명하는 것이 국정의 ‘안정’과 ‘균형’을 가져오는 결정이었던 셈이다.
정치권에서는 한 대행이 12개 혐의로 5개 재판을 받고 있는 이재명 민주당 전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겨냥했다는 해석도 있다. 이 전 대표가 만약 대통령이 된다면 ‘재판은 중단되는가, 계속되는가’라는 헌법 제84조를 둘러싼 논란이 지속될 텐데, 그 판단을 헌재에 구하게 될 가능성이 큰 만큼 보수 성향이 강한 헌법재판관을 미리 임명했다는 분석이다. 한 대행의 권한 행사는 실제 정치권에 큰 후폭풍을 야기했고, 여권에서는 ‘한덕수 차출론’마저 솔솔 흘러나오고 있다. 한 대행 자신은 국민의힘 원로 등 주변의 대선 후보 추대론에 대해 손사래를 치고 있지만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에선 명시적으로 출마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문제는 한 대행이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나비효과처럼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한 대행의 이번 결정이 조기 대선 초반 정국에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정적 영향이 크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게 터져 나오고 있다. 한 대행은 이번 결정에 대한 정치적 파장을 분명 고려하고 검토했지만, 그 시나리오는 대부분 야당의 반발과 대응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여권 일각에선 ‘한덕수 차출론’도 솔솔
취재에 따르면, 이번 대선에 출마했거나 준비 중인 대선주자들과 그 캠프들을 중심으로 한 대행의 재판관 임명으로 ①중도층 포섭 차질(윤 전 대통령과 계엄이 정국에 재소환되는 효과) ②국면 전환 시도 차질(개헌 정국으로 프레임을 전환하려던 전략에 차질) ③이재명 포위 전략의 차질(개헌으로 이 전 대표를 포위해 압박하려던 시도에 차질) 등의 부정적 영향이 생겨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권 내부에는 6월3일 조기 대선이 다가오면 올수록 윤 전 대통령과 점점 더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견을 가진 인사가 적지 않다. 특히 ‘탄핵 찬성파’로 분류되는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와 오세훈 서울시장 등은 ‘계엄의 강’과 ‘탄핵의 강’을 건너지 않고서는 선거의 키를 쥐고 있는 중도층 표심을 사로잡을 수 없다는 계산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한 대행의 결정은 다시금 정치권에 윤 전 대통령과 계엄을 소환했다는 평가를 많이 받고 있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한 대행의 인사에 윤 전 대통령이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대중의 인식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이완규 처장이 12·3 사태에 연루됐다는 의혹도 계엄을 대중에게 재차 환기시키는 효과를 내고 있다.
한 대행은 재판관 임명의 배경을 밝히면서 ‘윤석열’이라는 이름을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정치에서 중요한 것은 사실 자체보다는 대중의 인식이다. 국민의힘의 한 핵심 인사는 “‘처세의 달인’으로 불리던 ‘무색무취’형 한 대행이 윤 전 대통령과 일정한 교감 없이 이런 결정을 했다고 여기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문제는 윤 전 대통령이 다시금 대중의 머릿속에 들어왔다는 점이다. 중도층을 사로잡아야 하는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결코 득점 요인이 아니다”고 했다.
‘개헌 대선’이라는 새 프레임으로 국면 전환을 빠르게 시도하던 국민의힘 전략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우려도 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을 찬성하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은 상황에서 개헌론을 통해 ‘탄핵 책임론’이나 ‘정권 심판론’이라는 구도에서 벗어나는 것은 물론, 당과 대선주자들의 대대적인 개헌론 띄우기로 개헌 논의에 소극적인 이 전 대표를 압박하려는 노림수도 녹아있었다. 이 전 대표를 ‘정치 개혁에 반대하는 반개헌 세력’에 가두겠다는 의도였다. 우원식 국회의장과 민주당 비명(非이재명)계에서도 개헌을 고리로 이 전 대표를 압박하는 양상이었기 때문에, 국민의힘의 ‘개헌 대선’ 구도에 이 전 대표 측은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었다.
실제 이 전략은 국민의힘 입장에서 매우 효과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개헌 대 반개헌’ 구도가 자연스레 ‘이재명 대 반(反)이재명’ 구도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개헌론은 국민의힘이 ‘계엄 옹호 정당’이라는 야당 공세를 희석할 수 있는 이슈이면서 국민의힘 주자들이 이 전 대표와의 차별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이슈다. 국민 대다수는 개헌을 개혁적 의제로 인식하고 있다. 입법권력을 쥔 이 전 대표가 행정권력까지 가지면 안 된다는 논리는 이 전 대표를 지지하지 않거나 지지를 유보하는 유권자들에게는 전달성과 파괴력이 상당할 수 있다.
하지만 한 대행이 월권 논란 등을 무릅쓰고 재판관 임명을 강행하면서 이런 전략이 다소 꼬이게 됐다는 분석이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에서 전략통으로 꼽히는 한 관계자의 분석이다. “한 대행의 이번 결정은 ‘이재명이 싫어서’ 투표를 포기하거나 여당을 찍으려던 적잖은 중도층과 무당층에게 ‘정권 심판론’을 재가동시키는 나비효과를 낼 수 있다. 일부 유권자들에게 ‘윤석열 파면이 끝이 아니구나’라는 인식을 주고 있다. 그렇게 국면 전환 효과는 상쇄되고 있다. 아울러 비명계가 개헌 공세를 할 정치적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 ‘지금은 이재명을 흔들 때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민주당 지지층을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우원식 의장이 개헌 후퇴 선언을 한 것은 민주당 지지층이 돌아섰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