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정당이 될 것인가, 붕당이 될 것인가

2025-04-11     김재태 편집위원

‘격노’로 시작해 비상계엄이라는 시대착오적이고 반헌법적인 마지막 격노로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윤석열 전 대통령이 마침내 파면되고, 국민의힘은 그의 몰락과 함께 여당의 지위를 잃었다. 그렇다고 국민의힘과 그의 관계가 끝난 것은 아니다. 그는 출당되지 않았고 탈당하지도 않았으며, 곧 있을 대선에 대해 입을 닫을 생각 또한 없어 보인다.

ⓒ사진공동취재단

윤 전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소추된 후 당시 여당이었던 국민의힘은 사퇴한 한동훈 대표를 대신해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는 길을 택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지금까지 그 비상대책위원회에는 ‘비상(非常)’도, ‘대책’도 없었다. 비상한 상황을 타개하려는 혁신의 노력은커녕 이전 상태를 유지하려는 의지로 가득 차 비상대책위원회가 아닌 ‘수구대책위원회’라는 인상만 강하게 내비쳤다. 그럴 바에는 처음부터 비상대책위원회라는 간판을 내걸지 않는 게 나았을 것이다. 미래를 향한 비전은 도외시한 채 현실에만 침잠해 광장의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과 손잡고 세력 다툼에 힘을 쏟은 모습은 전체 국민을 위해 일해야 마땅한 정당과는 거리가 먼 ‘붕당(朋黨)’의 이미지에 가깝다.

그렇다 보니 국민의힘은 탄핵 열차에 탄 대통령을 정신없이 뒤따르면서 아주 멀리 나아가 버렸다. 대통령 파면과 함께 열린 대선의 길로 돌아오기에는 많이 숨차고 기진하다. 먼저 갔던 길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려 손에 든 보따리마저 빈약하다. 설상가상으로 헌재의 파면 결정 이후 광장에 모인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마저 “배신자 국민의힘은 해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상황이다. 권영세 비대위원장이 지난 설 연휴에 극우 유튜버들에게 선물을 보내는 등 각별하게 쏟은 정성들마저 이쯤이면 꽤 무색해질 판이다.

방향 설정 착오 못지않게 국민의힘의 발목을 잡는 것은 또 있다. 심상치 않은 내부 사정이다.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 사이의 앙금이 가라앉을 기미는 보이지 않고, 당 주류 세력은 김상욱 등 탄핵 찬성파 의원들을 내치지 못해 여전히 좌불안석이다. 그러면서도 그간 윤 전 대통령에 대해 때론 극구 감싸고 때론 어정쩡한 태도를 보여온 비대위원장과 원내대표 등 지도부에는 재신임의 박수를 아낌없이 보냈다.

‘붕당’의 이미지를 떨쳐내지 못한 데서는 더불어민주당도 전혀 당당할 수 없는 처지다. 국민의힘이 대선을 앞두고 분열 위기 속에서 스스로의 불안을 드러내고 있다면, 민주당은 반대로 과한 일사불란함으로 인해 오히려 대중의 불안을 불러들이고 있다. 이재명 전 대표가 일단 사법 리스크에서 어느 정도 발을 뺏지만 그를 중심으로 한 일극 체제에 대한 포비아(공포) 수준의 불안감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다. 단일대오로 뭉쳐 움켜쥔 입법권에 더해 행정권까지 독차지하는 상황에 대한 두려움은 여권을 넘어 대중에게까지 넓게 뻗쳐 있는 상태다.

‘끼리끼리’에 최적화된 붕당의 폐해를 이제껏 우리는 지칠 만큼 오래, 많이 보아 왔다. 아무리 정당의 설립 목적이 정권 획득에 있다고 하지만, 그 목적이 수단과 방법의 부당함까지 다 변호해줄 수는 없다. 정권 획득에만 매몰돼 민주적 절차, 다양한 내부 의견 수렴을 위계 혹은 강압적 분위기로 막아서며 붕당이 되기를 고집한다면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갈 것이 빤하다. 안에서 새는 민주주의가 밖에서 새지 않을 리 없다. 정당의 결속은 결국 지도부나 당내 주류가 아닌 국민의 마음을 향해 이뤄져야만 지속력을 얻을 수 있다. “국민의힘도, 민주당도 너무 자기 당만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일부 중도층 유권자의 말을 대선을 앞둔 양당은 깊이 새겨들어야 한다.

김재태 편집위원